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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개방 극대화로 경제·사회 전반의 혁신 유도 - 프랑스 ‘디지털 공화국법’, Why and How? <상>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3월10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3월11일 13시34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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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프랑스의 디지털경제, 경쟁국들에 뒤지고 있다’는 뼈저린 반성

 

4차 산업혁명이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된 지도 이미 3년이 지났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 박근혜 정부도 모두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받아들여 한국경제를 혁신하고 나아가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천명하고 그런 방향으로 국정을 펼쳐 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아예 대통령 직속의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런 의지를 더욱 강력하게 피력한 바 있다. 이러한 정부의 의지 표명 덕분일까? 4차 산업혁명은 정부의 국정과제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열리는 어떤 세미나에 가든 4차 산업혁명이란 개념이 빠져서는 논의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이제 한국 국민이라면 4차 산업혁명의 내용을 잘 모르더라도 피할 수 없는 변화의 방향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더욱이 우리나라 ICT 관련 제조업의 발전 수준이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하고 초고속통신망을 필두로 한 ICT인프라도 (최근 5G기술의 도입까지 포함하여)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하고 있기에, 한국 국민들은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을 그 어떤 나라보다도 가장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과연 한국사회가 얼마나 4차 산업혁명을 받아들이고 있을까? 적어도 우선순위로 삼았던 한국경제 더욱 좁게는 한국 산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의 변화를 수용하는 새로운 산업들이 대부분 기존 산업들의 격렬한 반대로 탄생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 일쑤인 반면에, 미국, 중국 등에서 이러한 신산업들이 태어나 이른바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유니콘 기업들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만 접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나라 기존 주력산업들에 종사하는 많은 제조업 공장들에 ICT 기술을 접목하는 이른바 ‘스마트 공장’ 사업도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에 의한 스마트 공장 추진 수준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일반 국민들의 삶을 직접 크게 바꿀 것으로 기대해 온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등의 기술도 다른 선진국이나 경쟁국에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만 산업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진 나라인 만큼 산업과 관련한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들 그리고 대표적인 기업들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언급한 분야들에서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몇몇 분야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들도 올리기 시작한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우리 개개인의 생활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하는 질문에는 아직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는 것 같다. 궁극적으로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려면 국민 개개인이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대비하여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나아가 4차 산업혁명이 한국사회를 변화시킨다면 개개인에게 어떤 기회와 도전이 오게 되는지를 알아야 하겠지만 이런 일을 하는 노력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개인의 생활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은 우리 정부가 데이터 경제라고 부르기 시작한 빅데이터, AI, 클라우드 등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을 주도할 주체들은 정부 부처, 관련 대기업 혹은 공공기관들이고, 개인들은 이들 큰 경제 주체들이 이용할 정보를 만들어내는 수동적인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 가운데 자신의 개인정보라는 데이터가 활용되어 남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안겨준다는 막연한 인식 속에서 개인정보의 보호라는 사회적 가치와 새로운 산업이 가져올 경제적 가치가 충돌하면서 좀처럼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에 따른 프랑스 사회 전반의 변화를 염두에 둔 개혁입법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가 지난 2016년 오랜 숙의 끝에 제정한 「디지털 공화국법 (Loi pour une République numérique)」은 지금의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이 법의 취지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아쉽게 느껴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에 대비한 프랑스 사회 전체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있고 데이터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정리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은 물론 유럽 선진국들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쓰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표현보다는 디지털 전환 (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쓰며 향후의 변화를 주도하는 주요 기술로서 언급하고 있는 IoT, 빅데이터, 5G, 인공지능 (AI), 클라우드 등의 기술들이 디지털 전환을 가져오는 기술이므로 이 용어가 4차 산업혁명의 변화 내용을 더 잘 인식시켜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이 법의 제정을 준비한 프랑스 정부는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François Hollande) 대통령 정부였고 에마뉘엘 마크롱 (Emmanuel Macron) 프랑스 현 대통령이 당시 경제부 장관으로서 이 일의 책임을 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디지털화를 주도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간주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및 혁신 담당 장관 (Secretaire d’État) 역할을 한 악셀 르메르 (Axelle Lemaire)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누가 주도 했든 프랑스 사람들은 그 당시까지 프랑스 경제와 프랑스 사회가 미국은 물론 이웃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도 디지털 전환을 맞을 준비에 매우 뒤떨어져 있고, 그래서 프랑스 경제가 점점 더 뒤처지고 있다는 뼈저린 반성을 하고, 이 일을 시작하였음은 분명하다.

 

이와 같이 프랑스 경제, 사회가 앞서가는 나라들을 빠르게 따라잡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준비했다는 점에서도 시사점이 크지만, 법 제정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들은 물론 모든 프랑스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철저히 했고, 프랑스 국민들 전체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추진했다는 점이 더 주목할 점이라고 판단된다. 더욱이 그 이후에 일어나고 있는 프랑스의 변화도 괄목할 만한 모습이기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글은 프랑스의 디지털 공화국법 제정 취지, 제정 과정, 제정 주요 내용, 그리고 제정 이후의 프랑스의 변화 (산업환경의 변화) 등의 순서로 전개해 나가기로 한다.

 

핵심 내용은 ‘데이터 개방’… 정부·공공기관은 예외 없이 적용, 민간의뢰 데이터도 대상

 

프랑스 디지털 공화국법의 핵심은 역시 ‘데이터 개방’ 문제이다. 개방된 데이터의 범위가 넓을수록 더욱 의미 있는 빅데이터가 형성되고 이를 인공지능을 동원하여 분석할 수 있게 되어, 관련 기업들은 물론 일반 개인들 특히 (학술) 전문가들에게 새로운 분석과 연구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프랑스 정부는 법 제정 초기부터 정부 및 공공기관이 생성하는 데이터는 예외 없이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더 나아가 정부 및 공공기관 등이 의뢰하거나 이들과 관련한 사업을 통해 민간 기업들이 생성하게 되는 데이터조차도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들 민간 기업들 가운데는 금융기관, 의료기관 등도 들어 있으므로 이들을 이용하는 개인의 신상정보도 포함된다는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들을 개방하는 원칙을 분명하게 세우고, 개인정보의 개방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권리 침해 문제를 꼼꼼히 검토하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까지 포함하여 공개할 수 있는 데이터들을 지칭하는 이른바 ‘공익 데이터 (des données d’intérêt général)’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다른 나라들보다 한 발 앞선 수준의 데이터 개방을 추진하는 데 성공하였다.

 

결국 프랑스는 디지털 전환의 핵심 내용을 데이터의 적극적인 개방과 이를 경제적 (혹은 사회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통해 프랑스를 이른바 ‘디지털 공화국’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취지를 가지고 이 법을 제정하려 했던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법의 이름으로 ‘디지털 사회’보다는 ‘디지털 공화국’이라는 용어가 채택되었다는 사실인데, 프랑스는 이 법 속에 프랑스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울 당시에 추구한 프랑스 공화국의 3대 기본정신인 ‘자유 (liberté)’, ‘평등 (égalité)’, ‘박애 (fraternité)’의 정신을 녹여 넣고자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먼저 자유의 정신은 데이터의 개방을 가능한 한 극대화하여 프랑스 경제에 자유경쟁의 가능성을 더욱 불어넣고자 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다음으로 평등의 정신은 이들 데이터를 개인 연구자들은 물론 관심을 가진 개인들도 서비스 플랫폼을 활용하여 얼마든지 자유로우면서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자 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박애의 정신은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 즉, 인터넷에 대한 접근성 수준을 프랑스 전역 (프랑스 해외 영토 포함)에서 똑같이 되도록 하고, 장애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비슷한 수준의 데이터 이용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어지는 법 제정 과정의 논의 속에서도 이들 내용들이 모두 다루어졌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점이다.

 

이러한 노력이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은 이 법을 제정하는 목적이 결코 관련 기업들이 데이터 활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국민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데이터 사용의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것을 인식하게 만드는 데에도 있다는 점을 알게 함으로써 이 법의 제정 과정에 프랑스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는 점일 것이다.

 

법률 제안·수정·개선의 모든 과정에 관심 있는 프랑스 국민들 직접참여 국론결집

 

프랑스에서 디지털 공화국법 제정의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집권당은 사회당이었지만 이 입법 취지에는 좌우 이념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 정당들과 국민들이 공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리하여 경제부 안에 디지털 및 혁신 담당 특별 장관실이 설치되고 이 부서가 모든 논의의 플랫폼 역할을 하도록 하였고, 이후 법 제정과정 전체에 걸쳐 이 부서와 이 부서를 지휘한 르메르 장관이 책임 있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법의 제정은 여느 프랑스 다른 법들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즉, 국무회의를 거쳐 프랑스 양원의 독해 과정을 거친 후의 최종 표결 과정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법률 공표를 통하는 식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모든 과정에서 르메르 장관은 질의, 응답 및 그 이후의 수정 과정까지 책임 있는 역할을 하였다.

마지막 표결은 거의 만장일치라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러한 결과는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법 제정 전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은 물론 국민들의 참여를 통해 지속적으로 법안을 수정하고 개선하는 작업이 지속되었고 이 모든 과정들이 공개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정 과정에서 시사점이 가장 큰 점이 바로 이 법안 제안, 수정, 개선의 과정에 프랑스 국민들 중에서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직접 의견을 개진하면서 참여하게 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우선 법안을 만들기 이전에 프랑스 정부가 2011년에 설치한 국가디지털위원회 (CNNum: Conseil national du numérique) 내에 ‘디지털 야망 (Ambition numérique)’이라는 특별조직을 두고 이를 젊은 디지털 분야 사업가 한 사람과 전문가 한 사람이 지휘하게 하여 오랫동안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집하게 한 후에 그 결과를 이용하여 법안을 만들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2014년 10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지속된 의견 수렴 과정을 요약하면, 4개 주제, 26개 세부 토픽으로 나눈 인터넷 상의 논의에 총 5,000명이 참여하여 총 17,678개의 의견을 제출하였고, 나아가 4개의 주요 도시들을 순회하며 공청회를 열고 70여 차례의 릴레이 워크샵을 가지는 성과를 올린 바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정부가 법률 초안을 만든 이후에도 정부 및 의회의 심의 과정을 거치기 전에 디지털 및 혁신 담당 특별 장관실 책임 아래 동 초안을 3주간 공개하여 모든 이해 당사자들, 전문가들 및 일반 국민들까지 다시 한 번 검토하게 하였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2차 의견 수렴 과정에서는 무책임한 의견 개진을 막기 위해 이용자 헌장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의 신분을 정확하게 밝히고 참여하게 했다는 점일 것이다. 2015년 9월 26일부터 10월 18일까지 3주간에 걸친 의견 수렴 과정에서 법 조항이나 의견에 대한 도합 14만7천 건의 찬반 투표, 조항이나 내용에 대한 제안과 수정 의견 8천 5백건 정도가 있었는데, 총 참여자는 21,329명에 이르렀다.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은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Vincent Reverdy라는 사람으로 총 175건의 의견을 개진하였고, 2,200건의 찬반투표에 참여한 바 있는데, 의견 개진 사이트에서 개별 의견 제출자의 프로필을 누르면 참여 상황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결과 정부가 만든 법률 초안에 5개의 새로운 조문이 추가되었고, 총 90개의 조문 수정이 이루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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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3월10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3월11일 13시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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