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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의 편지>청춘의 기차는 떠나지 않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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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7월26일 16시29분

작성자

  • 김동률
  • 서강대학교 교수. 매체경영. 전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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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먼 북소리’를 읽으면 불현듯 가고 싶은 나라가 있다. 그리스다. 서너 달 머물렀던 미코노스 섬을 소재로 한 여행 에세이다. 책에서 그는 그가 만났던 게으르고 황당한 그리스인에게 대해 애정과 비판을 거세게 쏴 부쳤지만 산토리니의 명징한 햇빛을 기억하는 나는 늘 그리스를 꿈꾼다.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과는 대조적으로 몰락을 거듭해 온 나라가 그리스다. 그러나 그리스는 두 명의 걸출한 세계적인 가수를 낳았다. 한 명은 나나 무스쿠리이고 또 한 명은 아그네스 발차다. 

 

아그네스 발차는 독보적인 메조소프라노다. 메조는 소프라노의 그늘에 가려 애시 당초 유명해지기 쉽지 않은 음역, 그러나 그녀의 매력적인 중저음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기차를 타고 전선으로 떠나는 연인과의 이별을 그린 노래는 일약 그녀를 세계인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발차가 국내에도 유명해진 것은 신경숙의 베스트셀러 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가 한몫했다. 책의 곳곳에 “기차는 8시에 떠나네” 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옛날 비둘기호라는 기차가 있었다. 역(驛)이란 역은 모두 서는 완행열차. 속도가 매우 느려 간혹 날쌘 청년들은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 내리거나 올라타는 묘기를 부리기도 했다. 열차는 그 당시 통일호나 새마을호를 만나면 지나갈 때까지 역에서 한참동안 기다려야 했다. 싼 운임 내고 탄 설움을 톡톡히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비록 느리고 허름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다. 대처로 통학하던 십대들의 설레임과 재잘거림이 담겨 있었고, 달걀과 푸성귀를 담은 광주리를 이고 아들, 딸집으로 가던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그들이 사라지자 비둘기호도 사라졌다. 수년전 통일호마저 없어진데 이어 두 달 전 새마을호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젊은 날, 비싼 새마을호 타기가 쉽지 않은 탓에 얽힌 추억도 많지 않은데 운행종료 소식에 마음이 허전하다. 퍼내고 퍼내어도 고갈되지 않은 것이 추억이라 인간은 이처럼 시시때때로 과거를 떠올리게 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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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7월26일 16시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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