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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민의 東窓> ‘동여니’는 줏어온 자식?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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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8월06일 17시09분
  • 최종수정 2018년08월22일 12시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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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들 만 해도 형제자매들이 보통 대여섯 명은 넘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들로부터 이런 놀림을 받고 마음의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너는 다리 밑에서 줏어 왔어!”

요새 청와대 내 일부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대하는 것을 보면 그런 놀림을 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총리가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경제문제를 상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특히 일자리 대란이 나타나고 있는 판국에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리고 몇 번이고 만나 서로 협조하고 격려하는 게 국정수행의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그런데 6일로 예정됐던 김 부총리의 삼성그룹 이재용부회장과의 회동을 두고 사전에 청와대 일부에서 제동을 걸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의아스럽기 짝이 없었다.  6일의 삼성전자 방문은 예정대로 이뤄지긴 했지만.

 김부총리의 재벌기업총수 면담은 삼성그룹이 처음이 아니라 지난해 12월부터 LG그룹 구본준 부회장을 시작으로 올해 1월 현대차그룹 정의선 부회장, 3월 최태원 SK그룹 회장, 6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을 차례로 회동한데 이은 것이었는데 유독 삼성과의 만남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를 보면 더욱 황당하기 그지없다. “정부가 재벌에 투자와 고용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지난 3일 이런 내용의 한겨레신문 보도에 대해 청와대는 ‘구걸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삼성의 투자계획 발표 등과 관련해 김 부총리를 만류한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삼성그룹은 6일 발표키로 했던 100조원규모의 투자계획 발표를 뒤로 미루기로 한 것이 그 증좌다.

 

김 부총리는 3일의 한겨레 보도에 대해 그날 저녁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삼성전자 방문 계획과 관련해 의도하지 않은 논란이 야기되는 것은 유감”이라면서 “정부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대기업에 의지해 투자·고용을 늘리려는 의도도, 계획도 전혀 없다”고 개인입장을 밝혔다. 정부 부처장관이 언론 기사와 관련해 개인입장을 발표한 것도 전례가 드문 일이지만 경제정책에 간섭하는 청와대 일부 인사들에 대해 불쾌한 입장을 노출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김 부총리의 행보에 대해 청와대가 제동을 거는 이유는 청와대 인사들의 ‘삼성 알레르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현 정부의 우군이라 할 수 있는 일부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정부가 삼성에 투자와 고용확대에 손을 벌리면 국정농단 응징과 재벌개혁이라는 목표가 느슨해 질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있다는 해석이 많다. 더구나 김 부총리는 그동안 청와대 핵심 참모들과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인상’ 등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표출해왔기 때문에 이번 ‘구걸 논란’이 더욱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경제정책 총괄책임자가 대기업을 만나 협조를 구하는 것이 ‘저자세’이고 ‘구걸’인가? 일자리는 정부가 만든다는 생각을 가진 어리석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어디까지나 “혁신과 고용의 주체는 기업이고, 정부는 파트너 또는 지원자의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9일 삼성전자 인도 노이다 신 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부회장을 면담했다. 그것도 5분간이다. 준공식 참석은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권유에 따른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 최대기업의 해외공장 준공식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어쩌면 일상적인 일이고, 그 기업총수를 만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국내언론은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현지 면담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의 ‘친기업 행보’이자 대기업 정책의 변화를 시사 하는 상징적인 이벤트”라고 토를 달았다. 좀 거친 표현으로 말하자면 ‘삼성을 봐 준다’는 뉘앙스들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을 면담하고 ‘국내에서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이것도 ‘구걸’의 일종은 아닌가?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경제컨트롤타워와 청와대 일부 참모진의 불협화음은 이번 김 부총리의 삼성방문을 계기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번 사태는 ‘삼성 알레르기’를 가진 청와대 일부 참모진과 ‘소득주도성장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는 소신을 가진 김 부총리의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청와대가 김 부총리에게 경제정책의 전권을 위임하거나, 아니면 가치관을 함께하는 부총리를 새로 임명하는 것이 근본해결책이 아닌가 싶다. 다만 지금은 당분간이라도 김부총리가 실제로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이 아닌 다음에야 청와대가 ‘감 놔라 배 놔라’할 게 아니라 경제총수에게 경제정책의 전권을 맡기는 것이 옳은 일 아닌가?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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