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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의 편지> 시베리아 횡단열차 함부로 타지 마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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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1월06일 17시30분

작성자

  • 김동률
  • 서강대학교 교수. 매체경영. 전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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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老子)가 그랬던가? 흙으로 꽃병을 빚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병이 아니라 병속의 빈 공간이라고. 시베리아 횡단열차(TSR)는 꽃병과 같다. 버려서 얻고 비워서 채운다는 노자의 주장과 딱 맞아 떨어진다. 낡은 열차에서 사나흘을 지내려면 비우고 또 버려야 한다. 예상보다 엄청 고되다. 들었던 얘기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난 여름 끝자락, 한민족의 시원이라는 바이칼로 가는 길, 하바롭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TSR을 탔다. 기차로만 사나흘 달린다. 상상조차 쉽지 않는 거리다. 2등석, 1인당 9천 루불, 한국돈으로 18만원 정도다. 복층 침대칸, 모르는 네 사람이 한 칸에 기거하게 된다. 의자는 따로 없다. 낮에는 그냥 침대에 걸터앉아 가야 한다. 나흘 동안 폐쇄된 공간에서 먹고, 자고, 씻고, 수다를 떨어야 한다. 열차 안은 금주(禁酒)다. 꼬불쳐 온 보드카는 승무원 몰래 페트병에 넣어 마셨다. 들키면 뺏기고 재수 없으면 강제로 내려야 한다. 요리는 못한다. 비치된 끓는 물에 전투식량, 컵라면으로 열 끼 이상을 때워야 한다. 누룽지는 미리 물에 불려 놓아야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문제는 화장실이다. 차 밑으로 뿌려지는 옛날 방식이다. 정차하기 전후 20여분 전부터 승무원이 문을 잠궈 버려 급한 사람들은 큰 낭패를 겪게 된다. 그 깨끗하지 않은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식기를 씻고, 면도를 한다. 미리 준비한 플래스틱 바가지로 샤워까지 했다는 여행의 고수도 있다. 한국인들의 로망이자 버킷 리스트 최우선 순위에 있는 TSR 여행의 민낯이다.

 

1916년 개통된 TSR은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에 이르는 9288킬로미터에 이르는 지구에서 가장 긴 철도노선이다. 평균 시속 1백km 미만. 꼬빡 일곱 날이 걸린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설원(雪原)을 헤치며 기적을 울리던 바로 그 열차다. “빨리빨리”와 함께 평생 살아온 보통의 한국인에게는 무한의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눈치 빠른 여행객들은 주요 거점역마다 하루나 이틀정도 쉬었다가 다시 타고 가는 방식을 택한다. 

 

그런데 이 고난의 기차를 사나흘 타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아낙네의 살결보다 희다는 자작나무와 끝없는 초원 때문이 아니다. 열차에는 삶의 단내가 배여 있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고난의 행군”이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사나흘 힘듬 속에 오욕칠정(五慾七情)이 부질없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기찻길이 인생길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그러고 보니 누가 그랬다. TSR를 타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딱 잘라 “슬기로운 감방생활” 정도가 적절한 표현이겠다. 수행 공간쯤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시베리아 횡단열차, 함부로 타시면 안 된다. 스스로 고행을 자초하려는 사람들만 타셔야 한다. 해마다 지리산 종주를 즐겨하며 불편함이 곧 도를 닦는 좋은 기회라고 즐기던 나는 이번에 비로소 깨달았다. 육체적인 고됨과 달리 생리적인 불편은 인간으로서 정말 힘들다는 것을. 시베리아 여행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덜컹거리기만 한 무료한 긴긴 기차여행, 차창으로 본 밤하늘에는 보름달이 터질듯이 걸려 있었고 나는 2층 침대칸에 앉아 올드 팝을 숨죽여 들으며 몰래 보드카만 홀짝홀짝 마셨다. 어두운 차창에는 닥터 지바고를 읽던 스무 몇 살의 젊은 내가 보인다. 그런 그런 시간 속에 문득 깨달았다. 과거는 썩지 않는다. 그저 야위어 갈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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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1월06일 17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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