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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진출 외자기업들의 고민과 변화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3월26일 17시00분

작성자

  • 김병유
  • 한국무역협회 베이징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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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한국교민을 대상으로 한 유일한 주간지가 있다. ‘베이징저널’이다. 금주 베이징저널에는  한국의 대형 기업들이 중국에서 공장 매각 혹은 축소를 검토한다는 소식이 3건이나 게재되었다. 롯데의 베이징 제과 공장과 음료수 공장 매각 검토, 현대차 북경 1공장에 이어 기아차가 옌청 1공장 가동 중단 검토, CJ의 외식사업 구조 조정 소식이다. 최근 중국시장의 변화를 보면 이들의 결정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서는 사실 안타까운 소식들이다.

 

중국에서 외자기업의 구조조정 소식은 비단 한국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가 2017년 10월에 중국내 599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1~2년 내에 중국에서 공장을 축소하거나 제3국으로 이전할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43개 기업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이미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한다는 제조기업도 총 40개로 광동성이 15개로 가장 많고, 요녕성 6개, 나머지 호북성, 상해시, 복건성 등이 3~4개씩 집계되었다. 지난해 8월 미국의류신발협회는 미국 정부의 대중국 관세정책으로 인해 미국 기업이 중국내 생산거점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미국패션산업협회도 중국에 생산기지가 있는 기업의 67%가 향후 2년 내에 중국에서의 생산을 줄인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의 신발 핸드백 브랜드 ‘스티븐 매든’도 핸드백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캄보디아로의 이전 계획을 밝히면서 이미 3년 전부터 이전을 준비했다고 언급했다. 

 

비단 외자기업 뿐만 아니라 중국기업들도 다른 나라로 나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최대 패딩 생산업체 보스덩(波司登)도 중국 국내에서 판매되는 물량을 제외하고 나머지 물량은 베트남에서의 생산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1976년에 설립된 보스덩은 미국, 유럽 등지의 72개국에 패딩을 판매하고 있으며, 패딩 누계 판매량이 2억 개에 달하는 기업이다. 유명 가전업체 메이디(美的·Midea)도 인도에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정수기 등을 생산할 두 번째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하였다. 샤오미도 2015년부터 ‘인도제조’전략을 세웠으며, 인도에서 판매하는 스마트폰의 95%를 인도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중국에서 이렇게 제조업들이 빠져나가거나 축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임금을 비롯해 생산 비용의 상승을 들 수 있다. 2007년 월 15만 원 수준이던 근로자 임금은 지금 3~4배 이상 높아졌다. 그마저도 지금은 근로자를 구하는 것도 어렵다. 근로자를 구하기 위해 봉고를 끌고 농촌의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에게 로비를 하고 그 자리에서 학생들을 태워왔다는 이야기는 믿지 못할 일화가 되었다. 그렇게 구해와도 SNS를 통해 수시로 친구들과 급여 수준을 비교하면서 다른 회사로 이적을 하는 일이 다반사여서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더 큰 어려움이 되고 있다. 여기에 초기에 약속했던 우대 조건들이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서 달라지고, 그동안 관례로 눈감아 주던 일들까지 소급해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도 외자기업들에게 큰 리스크로 다가오고 있다.

 

중국 기업의 경쟁력 상승에 따른 매출 감소도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철수하려는 일본기업들은 인건비 상승(50.0%)보다 중국내 매출 감소(54.8%)를 더 큰 이유로 꼽았다. 몇 년 전부터 중국이 제조업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홍색 공급망, 공급측 개혁, 제조2025, 인터넷플러스 등을 강력하게 추진하자 이러한 정책이 점차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중국 제조업은 몰라보게 기술수준이 향상되고 있다. 중국 제조업이 조달하는 부품들이 점차 중국산화 되고 소비재들도 명품화가 진행되면서 외자기업들이 설 땅이 줄어들고 있다.

 

유통 산업의 중국 내수화도 중요한 원인으로 보인다. 초기 중국시장 유통은 외국인들이 직접 담당했지만, 중국인들이 마케팅의 중요한 축으로 변한지 오래다. 여기에는 전자상거래가 큰 역할을 하였다. 중국은 지금 온라인 쇼핑 플랫폼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고 작은 플랫폼이 무수히 많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위쳇(WeChat)계정까지 활용되고 있다. 누가 더 좋고 더 싼 제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안전하고 더 빠르게 배송하는 것이 플랫폼 경쟁력의 핵심인데 중국이야 말로 딱 맞춤형 시장이다. 8억 명이 넘는 모바일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싼 제품을 빠르게 배송하는 데는 아직 중국을 따라올 나라가 없을 것이다. 좋은 제품이 부족하다면 바로 옆에 화수분처럼 우수한 제품을 공급하는 한국 같은 나라로 해결하면 되니 유통부문에 외자기업이 들어간다는 것이 사실 참 어렵다.

 

글로벌 가치사슬이 점차 바뀌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제조업의 스마트화로 인해 생산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낮아지면서, 선진국 기업들은 점차 시장접근성이 높고, 첨단기술의 공급이 용이하고, 리스크 관리가 많지 않은 미국, 유럽 등을 생산거점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되고 구조적인 모습으로 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외자기업들도 중국을 이용하는 방향에 따라 추가 투자, 축소, 철수, 이전 등의 전략들이 재조정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금년 중국경제의 최대 화두는 안정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 만큼 불안하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금융대출을 확대하겠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 기업들의 자금조달은 여전히 어렵고, 자동차 및 휴대폰 판매가 마이너스 증가를 기록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실물 투자보다는 유보를, 지출보다는 저축을 선택하면서 주머니를 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잇따른 강력한 경기부양책과 감세정책을 펴고 투자와 지출을 독려하고 있지만 쉬울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만 해도 주변 중국인 지인들이 외자기업들이 왜 나가지? 중국 시장이 이렇게 큰 데? 중국 경제가 어렵기는 하지만 곧 회복될 것이고, 한번 중국을 나가면 중국 소비자들이 외면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는 소리도 하였다. 그러나 금년 초부터 중국기관을 비롯해 지방 성정부 관료들이 많이 찾아온다. 목적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한국 내에서 한중 양국기업들과 중국 투자유치 설명회 및 1:1 상담회를 열게 도와달라는 것이다. 지난해에 중국의 농산물과 제품들을 수출하려고 하니 한국의 수입상을 소개해 달라는 요구가 많았던 것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중국내에서 개최된 행사의 주제가 그동안 일대일로, 전자상거래, 4차 산업혁명 등이 주를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외국인기업 투자유치 행사가 많이 열린다.

 

외자기업 투자유치 행사를 신호탄으로 그동안 머뭇머뭇하던 외상투자법이 3월에 공식 발효되면서 본격적으로 외자기업에게 구애의 시그널을 보였다. 주로 외국인 투자항목의 네거티브 시스템 도입, 내외자 동등 대우, 외자기업의 지적재산권 보호, 외자기업의 기술 강제이전 금지 등 외자기업의 경영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이다. 또한 외자기업이 중국에서 번 수익을 중국내에 재투자 할 경우에는 몇 년간 법인세 감면 등의 혜택을 준다는 정책도 이미 나왔다. 여기에 4월부터는 증치세율 인하,  제조업 및 소형 가게의 전기요금 10% 이상 인하, 5월부터는 현재 40%에 가까운 사회보험료를 인하할 계획이다. 외자기업의 기술과 투자로 중국이 이만큼 성장했다고 하여도 절대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근데 외자기업들이 중국내 제조 거점들을 재조정하고 있으니 중국으로서는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지 한국기업들은 이러한 중국내 기업환경의 변화에 원가절감, 제품 경쟁력 향상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베이징 현대자동차 밴더 기업이 처음으로 다른 외국브랜드에 납품을 성공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제조업 뿐만 아니라 유통도 현지화 전략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중국진출 한국기업에서 사장, 지점장, 중간 관리자들을 중국인으로 앉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중요한 원천기술 부문을 중국내 스타트업 기업에서 찾으려는 한국의 기업들도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중국진출 한국기업들은 과거와 달리 글로벌가치사슬 속에서 중국의 활용 분야를 재검토하면서 재투자, 축소, 이전, 철수 등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들의 이러한 고민이 끝났을 때는 중국내 한국기업들은 과거 보다 훨씬 더 경쟁력이 있고, 훨씬 더 당당하게 경영 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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