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규제 샌드박스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4월02일 17시00분

작성자

메타정보

  • 16

본문

기업의 호응이 제법 높아 긍정적 성과 기대

 

  규제혁신 방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을까? 지난 해 법제화 과정을 거쳐 금년부터 시행에 들어간 규제혁신특별법들의 경과를 살펴보면 일단 긍정적이다. 기업의 호응이 제법 높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운영하는 ICT 특별법(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의 경우, 지난 두 달 동안 8개 기업을 대상으로 임시허가 등의 적용 조치가 내려졌다. 과거 4년 간 4건의 처리 실적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시행 초기 성과를 인정 할만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운영하는 산업융합촉진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성과를 뒤집어 보면 우리나라 규제 현상의 진면목을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운영은 그 자체로 규제 현상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개발연대 이래 오랜 세월 촘촘하게 짜인 낡은 제도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는지, 단일기술과 단일 산업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의 규제를 아직도 적용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융합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시대 전개에 걸 맞는 제도의 틀을 갖추려 노력하고 있는지, 새로운 규제시스템의 적용에 규제자인 담당 공무원들은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지를 이 제도를 통해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규제 샌드박스를 운용하는 주관 부처들은 일단 성공적인 출범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진행 과정을 들여다보면, 규제기관의 담당자들이 여전히 조심스럽고 소극적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익숙하지 않은 제도에 두려움이 앞선 때문일까. 규제 샌드박스의 주관 부처가 신청서를 접수한 후 관계 부처와 협의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관계 부처와의 협의 후에 규제특례심의위원회까지의 진행도 여전히 어렵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전에는 훨씬 더 어려웠을 듯하지만, 규제 당국의 정책 관행과 저항이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보다 규제의 소관 부처가 다소 전향적이긴 해도 여전히 완전히 풀어준다는 자세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은 점진적이고 조심스러운 자세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물론 미흡하기는 해도 조금씩 전향적으로 변한다는 점은 고무적이라는 게 정부 스스로의 평가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규제자들의 강력한 권한 속에 규제 샌드박스가 소극적으로 운용된다면 그야말로 ‘하는 척만 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스타트업·벤처기업은 신청서 작성부터 애로 직면…‘혁신성’ 입증 어려워

 

 벌써부터 규제 샌드박스의 운영 측면에서 보완되거나 검토해야 할 점이 많이 드러난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하고자 하는 피규제자, 즉 기업의 입장에서는 사실 신청 단계부터 애로에 직면하여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의 경우 첫 단계에서 직면하는 어려움은 신청서를 작성하는 일인데,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시장에서의 혁신성을 입증해야 하는 대목이다. 신규 사업의 경우 시장분석을 할 근거(자료)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국내 통신사업자들이 조만간 5G 상용망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개시한다고 하지만 정작 5G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기업은 시장 상황을 섣불리 예단하지 않는 데서도 혁신성을 시장에서 입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다. 규제 샌드박스의 입법 취지를 생각해 보면, 스타트업과 벤처기업 위주로 운용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신청서 작성의 간소화 문제는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할 사안이다.

 

  같은 맥락에서 책임보험 문제도 다시 생각해 볼 과제다. 임시허가를 받은 특례 사업자가 고의나 과실에 의한 사고로 인적·물적 손해를 입혔을 때 원칙적으로 배상 의무를 지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되는 보험 시장이나 보험 상품이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사업자로 하여금 구제책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결국은 ‘닭과 달걀의 논쟁’으로 끝나고 말 뿐이다. 

 

혁신사업자 무과실 배상책임 분담할 ‘사회적 기금’ 설정 운영 바람직

 

필자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일찍이 혁신 사업자들의 무과실 배상책임을 분담할 사회적 기금을 설정하여 운영하는 것을 제안한 바가 있다. 기업과 중앙정부, 지역 특구에 참여하는 지자체 등이 공동으로 출연하여 사회적 기금을 설정하여 해결하자는 방안이다. 신기술·신사업에 뛰어드는 사업가의 피해배상 문제는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해당 신산업의 장단기적 역기능과 순기능을 총체적으로 평가하여 그 편익을 비교 분석하는 노력이 우선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따라 사회적 부담의 정도를 따져보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적어도 이 시대에 전례 없이 규제 샌드박스란 제도를 도입하고 운용해야 할 만큼 절실하고 긴요한 신기술·신사업이라면 말이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담고 있는 규제혁신특별법들은 하나같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저해하는 경우’ 사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부대조건이 걸려있다. 자본금 규모나, 인적 요건, 또는 시설 조건 등과 같은 일반적인 사항이 아니라 신기술·신사업 분야에서 굳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강조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어떠한 사업이라 할지라도 생명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가 있으랴. 더구나 신기술·신사업 분야일수록 실험과 (시범)사업 초기 단계에서 불의의 사고와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도 다반사일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규제 샌드박스라고 해 놓고 규제 당국이 언제든지 사업을 제한할 수 있는 빌미를 만들어 놓은 셈이 되고 말았다. 신기술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적용된 사업의 경우에 특히 그런 사고의 발생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美, 자율주행자동차의 도로시험 중 사망 사고에 ‘규제 적용 유예’

 

 2016년 5월 미국에서 자율주행자동차의 도로 시험 중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규제 당국과 언론의 움직임을 보면 여러 가지 교훈과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우선 규제 당국은 테슬라의 자율주행자동차 사망사고에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 미국은 위험관리를 기술규제의 원칙을 삼고 있으며, 그렇게 때문에 안전문제가 명확해지기 전에는 섣불리 규제시스템을 작동시키거나 구축하지 않는 나라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심지어 언론에서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워싱턴포스트에서는 사설을 통해 “자율주행자동차가 시장에 나와 스스로 증명하기 전에 대중과 언론이 이번 사고로 기술 자체를 거부한다면 어떤 혜택도 보지 못할 것”이라며, 앞장서서 신기술 개발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여론을 다잡아 나갔다. 

 완전한 자율주행자동차가 시장에 나오기 전에 소비자, 정부, 시장이 미리 싹을 자르면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 하에 자율주행자동차의 잠재적 혜택과 이를 이루는 과정에서 치루는 비용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가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나선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기술이 담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일정기간 기존의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시켜주는 제도다. 사업 허가에 대한 근거 법령이 없거나 기존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 경우에 임시허가를 내 주거나 실증 특례를 적용하는 기간이 기본적으로 2년이다. 그리고 2년에 한해 추가로 연장해 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지금까지는 완전히 안 되던 것을 임시로 허가해주도록 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지만, 2〜4년의 허가기간은 너무 짧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자동차 케이스를 보면 2016년 5월에 시험 운행 중 사망사고가 났으니, 시범주행 허가는 그보다 훨씬 먼저 이루어 진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자율주행자동차의 운행은 완성이 아니다. 최장 4년의 기간으로 한정한다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이미 개발된 기술을 도입하든지 아니면 개발 도중에 포기하고 말든지 둘 중 하나의 선택밖에 없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산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특례적용시한 ‘연장’ 및 규제특례를 일반법으로 ‘계속 보장’도 필요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된 4년이 지나기 전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한을 좀 더 연장할 수 있는 길을 터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규제 샌드박스에 의해 임시허가를 받거나 규제특례를 적용받던 사례를 일반법으로 포괄하도록 근본적인 규제정비 기간으로 활용하는 일이다. 규제 샌드박스를 단순히 제도 운영의 개념보다는 제도와 규제 체계가 바뀌는 준비 기간으로 활용해야 마땅하다는 의미다.

 

  지난 3월 28일 '선 허용·후 규제' 체계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지난해 정보통신융합을 규정한 ICT특별법, 산업융합촉진법, 금융혁신법, 지역특구법 등 4법이 확정된 데 이어 행정규제기본법의 개정으로 ‘1+4법’체계가 완비된 셈이다. 이번 행정규제기본법의 개정은 규제 샌드박스의 기본법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획기적인 제도의 정비를 의미한다. 그만큼 기대가 큰 반면에, 앞으로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시행 과정에서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개정된 행정규제기본법에는 특히 규제의 신속 확인, 규제 특례의 부여 근거 등을 규정함으로써 작년에 마련된 규제혁신 4법 이외의 다른 법률에서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할 경우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주관 부처별로 진행하는 규제 샌드박스에 관한 심의를 규제개혁위원회가 조정하고 보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그동안 규제혁신특별4법을 주관하는 부처들이 사실상 동일한 제도를 제각각 운영함으로써 비효율과 혼란이 야기된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책임 있는 정책당국으로서의 역할을 분담한다는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이번 행정규제기본법의 개정을 계기로 정부부처 간 협업 체계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축될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ifs POST> 

16
  • 기사입력 2019년04월02일 17시00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