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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으로 돌아온 브렉시트 ①추진배경과 경과, 무엇이 문제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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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4월24일 17시50분
  • 최종수정 2019년04월24일 18시33분

작성자

  • 신용대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前 건국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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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영국의 EU탈퇴(Brexit=Britain+Exit) 기간이 오는 10월 31일까지 재연장(Brextension)되었다. 메이 총리는 EU측에 6월 30일까지 탈퇴시한의 연장을 요청하였지만, EU는 4월 10일 EU특별정상회의에서 6개월간 연장하였다. 이는 당초 EU가 영국의 탈퇴시한을 4월 12일까지 무조건 연장하고, 그 안에 영국의회가 탈퇴협정을 합의하는 경우 5월 22일까지 탈퇴시한을 연장하기로 하였으나, 이후 영국의회가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함에 따른 조치이다. 다만 영국이 10월 말 이전에 탈퇴협정에 합의하면 다음 달 1일 EU에서 탈퇴(flextension)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이로 인해 영국의 합의 없는 탈퇴 위험은 일단 멀어졌지만, 재연장 기간 동안 Brexit협의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번 결정은 영국이 Brexit에 대한 확실한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는 가운데, EU가 유럽의회 선거와 이후 유럽기관들의 새집행부 구성(대표적으로 EU집행위원장, 유럽정상회의 상임의장 및 유럽중앙은행 총재 선임) 등 정치적 일정을 감안한 다분히 정치적으로 계산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2년여의 경과로 보아, 향후 6개월간 영국은 EU와 체결한 탈퇴협정을 의회에서 승인하여 순조롭고 질서 있는 EU탈퇴를 실현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히려 영국의 Brexit협의는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모양새가 되어 있고, 아무런 합의 없는 “no-deal Brexit”  가능성도 여전히 있어 Brexit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계속될 수 있다. Brexit 협의기간 재연장이 꼭 반가운 것만 아닌 이유는 기간의 재연장이 문제의 해결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국민투표 이후 재연장까지의 Brexit 과정을 정리하여 살펴본다. 우선 영국이 Brexit를 선택한 배경, EU와의 협상추진절차를 살펴보고, 이어서 1, 2단계의 Brexit협상과정에 나타난 영국이 Brexit이후 추구하려는 국가모델과 Brexit협상을 통해서 정리하고자 하는 EU와의 관계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을 주요쟁점의 점검을 통해서 살펴본다. 다음으로 EU와의 탈퇴협정(WA) 합의 이후 영국 의회승인 과정에서 수차에 걸친 탈퇴협정 승인투표의 부결과 재연장을 가져온 원인 등을 점검하고, 또한 이와 같은 Brexit에 따른 경제적 영향을 정리한다. 끝으로 Brexit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과 대응 방향 등을 시리즈로 엮어서 살펴본다.  

  

1. 영국은 왜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며, 그 배경은 무엇인가?

 

우선 왜 영국이 EU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됐던 것인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 배경은 이렇다. 현재 집권당인 보수당의 유럽회의주의자 세력을 회유하고, 동시에 야당인 노동당에 못 미쳤던 당시 보수당의 지지율을 회복하는 한편, EU가입 조건의 재협상(영국민의 EU잔류지지를 높이기 위해 EU에 위임한 권한의 일부반환 요구 등 가입조건의 재검토) 등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정치적 목적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정작 국민투표를 내건 캐머런 총리 자신은 EU로부터의 이탈을 강하게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2015년 5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캐머런의 보수당이 단독 과반수를 획득함에 따라 그동안 공약으로 내건 ‘EU가입 계속’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되었다. 당초 2017년 말까지로 한정한 국민투표의 실시시기도 2016년 6월로 앞당겨 실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이유는 EU 주요국의 총선거가 2017년에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시된 국민투표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탈퇴 선택’으로 결말이 났다. 등록유권자 4,650만 명의 72.2%인 3,357만 명이 투표에 참여해  탈퇴 51.9%, 잔류 48.1%로 3.8% 차이인 126만 표차로 탈퇴가 결정된 것이다. 투표성향을 보면 고령자, 중부 잉글랜드, 저소득층, 상대적으로 국제경험이 적은 계층은 탈퇴를 지지했다. 반면 젊은 층, 런던 및 스코틀랜드, 소득이 높고 국제경험이 많은 계층은 잔류를 지지하여 계층간, 지역간 갈등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서 탈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이를 간추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국과 유럽 대륙 국가들과의 EU통합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차이를 지적할 수 있다.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서 탈퇴를 결정한 데에는 전통적으로 유럽 대륙과의 통합에 회의적인 국민정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2008년 EU재정위기 이후 유로존 경제의 불확실성 증가와 2015년 가을 시리아 및 중동 난민의 대규모 유럽 유입에 따른 EU의 통합과 규제 강화 등으로 위기의식이 더욱 커졌고 영국 내에 EU 탈퇴 여론이 급격히 높아지는 주요 배경이 되었다. 

영국은 EU가 자유무역에 기초한 단일시장의 형성에는 찬성하나, 정치적 통합의 강화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최근에 와서 더욱 강화되고 있었다. 영국은 1975년에도 당시 유럽공동체(EC) 탈퇴 여부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한 적이 있으며, 당시 압도적인 표차(67.23% 대 32.77%)로 잔류를 결정한 바 있었다. 영국과 EU 간 바람직한 관계에 관한 질문에 대해 영국민은 ‘정치적 결합 없는 경제관계 강화’를 가장 선호(37%)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견해는 ‘EU 탈퇴’와 함께 최근에 지지세가 상승하고 있었다. 

반면, ‘더 긴밀한 통합,’ 또는 ‘현상유지에 대한 지지는 줄어들고 있었다. 영국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 이후 회복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저성장 국면에 머물러 있는 유로존에 비해 양호한 경제적 성과를 보였다. 영국 국민은 EU가 직면한 주요 문제로 경제상황 및 실업률을 꼽았으며, 2015년 이후에는 이민과 테러를 우려하는 여론이 높아져 왔다. 

 

둘째, 그동안 EU통합과정에서 나타난 민주적 절차의 결여(Democratic Deficit)를 지적할 수 있다. 

영국의 경우 EU 통합과 관련한 조약에 대해 여타 EU 회원국과는 달리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아 그동안 국민들의 불만이 축적되어 왔다. 유럽공동체(EC)가 정치·경제적 통합체(EU)로 통합하기 위한 기반을 제공한 마스트리히트 조약(Maastricht Treaty)에 대해 1992년 프랑스, 아일랜드, 덴마크가 국민투표를 실시하였으며, 2005년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EU헌법조약(Treaty Establishing a Constitution for Europe, 리스본 조약의 전신)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다. 

캐머런 총리는 2012년 7월에 리스본 조약(Treaty of Lisbon, 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어 무산된 EU헌법조약을 대체하는 조약으로 2007년 10월 최종 합의하고 2009년 12월 1일 발효)의 비준 당시 노동당 정부가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았던 점을 비판하였다. 이와 같은 민주적 절차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캐머런 총리는 보수당내 Brexit 찬성 세력과 영국독립당(UKIP)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Brexit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선거(2015년 5월 7일 총선) 공약화하는 등 유럽통합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였다. 

영국독립당은 이민자 증가, 긴축재정 등으로 영국 내 유럽통합에 대한 회의주의가 확산되는 가운데 2014년 5월 22~25일 중 실시된 EU의회 선거에서 3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영국의 EU의회 의석을 상당수 차지하였다. 정당 지지자별 여론조사를 보면 보수당과 영국독립당에서 영국의 EU탈퇴지지 비중이 잔류비중을 앞섰다. 한편 2015년 총선에서 영국독립당은 득표율이 2010년(3.1%)에 비해 크게 증가한 12.6%를 기록하였다.

 

셋째, EU안에서 영국의 낮은 위상을 지적할 수 있다. 

영국은 유로화를 단일통화로 사용하는 1999년 유럽경제통화동맹(EMU: Eropean Economic and Monetary Union)과 재정위기 해결을 위한 2011년 신재정협약(European Fiscal Compact) 참여를 거부하는 등 EU의 통합강화정책에 지속적으로 반대함에 따라 EU안에서의 영향력이 점차 축소되어 왔다. EU법이 영국법의 상위법인 가운데 영국은 유럽의회에서 결정된 새로운 법안이 영국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더라도 의석수 제한 등으로 이를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유럽의회 내 영국의 의석수 비중은 9.7%로 유로지역(Euro Area) 회원국(19개국)의 65.5%를 크게 하회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이 반대하거나 기권한 법안이 통과된 비율이 2004~09년 2.6%에서 2009~15년 12.3%로 크게 증가하였다(The Guardian, 2015년 11월 2일). 

한편 영국-EU간 합의(2016년 2월 19일)에 따르면 EU 의회에서 회원국 55%이상의 요구로 EU입법을 거부할 경우 입법절차를 중단해야 하는 레드카드(red card)제도가 도입되었으나, EU의회의 법안통과 요건(각국 행정부의 55%가 찬성하고 찬성 국가가 EU인구의 65% 이상을 차지)을 감안할 때 실효성이 별로 없었다. 이와 같이 국제사회에서 영국이 갖는 위상에 비해, EU안에서의 영국의 국가주권의 약화 등 상대적으로 낮은 위상은 EU탈퇴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넷째, EU 분담금 부담과 과도한 규제를 지적할 수 있다.

 영국은 EU예산에 대한 순분담금 국가인 가운데, EU통합이 가속화될 경우 EU예산 확대에 따른 재정부담의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음을 우려하여 왔다. EU예산은 2014년 기준 1,400억 유로 규모로 EU GDP의 1% 정도를 차지하며 주로 회원국간 경제적 격차 축소, 농업지원 및 인도주의 목적으로 사용한다. 

영국은 2010~14년 평균 127억 파운드(명목 GDP 대비 0.8%)를 분담금으로 납부하였으나 수혜금은 56억 파운드에 그쳐 순분담금이 71억파운드(명목GDP대비 0.4%)를 기록하였다. 국별로 보면 영국의 2014년 순분담금 규모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에 이어 4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EU의 영국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탈퇴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데, Open Europe(EU개혁에 관한 싱크탱크)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자본시장, 노동시장, 기후 등에 관한 규제로 향후 매년 333억 파운드(2014년 명목GDP대비 1.5%)의 비용이 발생될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EU잔류 지지자들은 동 규제로 인한 사회․경제적 혜택도 작지 않으며 OECD 상품시장 규제 지수에 비추어 영국은 이미 OECD내에서 가장 낮은 규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종합적으로 보아 EU탈퇴를 묻는 선거과정에서 잔류파는 경제적 이득 유지를 설득의 주요 논점으로 삼아 왔던 반면, 탈퇴파는 영국의 EU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감성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주로 국경을 회복하고 주권을 다시 찾아 이민자 노동자들의 통제를 강화한다는 다분히 정치적인 호소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 영국 유권자들은 이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차지한다는 문제에서 촉발된 이번 EU탈퇴 국민투표는 분명한 경제적 이득의 상실을 주장하는 합리적 논리보다는, 주권의 확립, 국경 통제의 환원 등 주로 감성적인 정치적 주장에 밀려 예상을 깬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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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국의 EU탈퇴는 어떤 절차를 거치게 되나?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하여 EU탈퇴를 결정함에 따라, 영국과 EU는 리스본조약 제50조의 탈퇴절차에 따라 2년 시한으로 협상하게 된다. 여기서 핵심은 영국이 먼저 탈퇴의사를 EU에 전달함으로써 그 절차가 시작된다. 그러나 실제로 탈퇴절차가 추진되기까지는 상당한 시행착오와 시간이 소요되었다. 영국이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로 EU탈퇴를 결정하고, EU에 탈퇴를 통보한 것은 9개월여가 지나서인 2017년 3월 29일이었다.

 

영국은 Brexit 결정 이후 2016년 7월 13일에 메이 총리가 취임하였다. EU잔류를 지지한 온건파인 메이 총리는 취임 직후 국민투표의 결과를 존중하여 탈퇴(Brexit means Brexit)를 분명히 하였다. 취임연설에서 메이 총리는 ①모든 사람들을 위한 국가비전, ②당과 국가의 결속, ③탈퇴협상에 강력한 리더십을 약속하였다. 이는 국민투표에서 유럽재정위기와 난민 및 EU역내이민 급증에 따른 영국민의 불만이 EU탈퇴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의식하여, 사회적 약자 배려, 이민제한과 EU단일시장 접근 보장 등에 대한 정책적인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이 국민투표 이후 탈퇴 선언을 EU에 늦게 전달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영국의 EU탈퇴과정은 처음부터 불투명하였다. 즉, 영국의 EU탈퇴는 전례가 없고, 정치적 요소도 얽혀 있어 영국의 EU탈퇴 과정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될지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우선 EU 탈퇴절차가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EU조약 제50조에 근거한 탈퇴통지 시기가 불명확하였다. EU 정상들은 영국 정부가 가능한 한 빨리 입장을 명확히 하고, 탈퇴절차를 시작하기를 주장하나 영국은 건설적인 이혼을 주장하며 EU 탈퇴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려 하였다. 실제로 EU측은 영국에 신속한 탈퇴 통보를 요구하였다. 예컨대, 융커 EU집행위원장은 영국의 후임총리가 잔류파에서 선출되는 경우 2주 이내에, 탈퇴파에서 선출되는 경우에는 다음날 EU탈퇴를 공식 선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영국은 캐머런 전총리의 사임에 따라 2016년 7월 13일에 취임한 메이 총리가 EU와의 협상을 유리하게 진행하기 위해, EU탈퇴 통지를 연말을 넘겨 2017년 초반으로 미룬다는 서로 다른 입장이었다.

 

둘째, 초기 영국과 EU간에 탈퇴방식에 대한 이견이 크게 노출되어 탈퇴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영국은 질서 있는 탈퇴를 주장하는 반면, 프랑스 등 일부 회원국들은 징벌적 탈퇴를 주장하였다. 즉 탈퇴과정에서 영국의 '과실만 따 먹기'(cherry picking)는 차단하겠다는 것이 프랑스 등의 입장이었다. 예컨대 투스크 EU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영국이 단일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EU의 사람, 자본, 상품 및 서비스의 4대 자유이동을 보장하여야 할 것이라 점을 강조하였다. 즉, 영국이 EU의 역내단일시장 접근을 위해서 이민을 포함한 4대 자유화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내었다. 

 

셋째, 영국은 초기 Brexit를 추진할 정부조직의 구성과 체제의 정비가 미흡하였다. 

메이 총리는 취임이후 내각구성에 있어 Brexit에 앞장선 "탈퇴 3인방"에 협상을 맡겼다. 즉, 외무장관에는 보리스 존슨(Boris Jhonson) 전런던 시장, 신설한 EU탈퇴담당장관에는 1990년대에 EU담당장관을 역임한 데이비드 데이비스(David Davise) 그리고 통상교섭을 담당하는 국제통상장관은 전국방장관 리암 폭스(Liam Fox) 등을 지명하였다. (이어 EU도 2016년 7월말 영국의 데이비스장관에 대응하여, EU의 Brexit업무를 담당할 Brexit수석대표로 미셀 바르니에(Michel Barnier)를 정식 선임하였다.) 영국은 당시 초기 신설부서의 고위직의 80% 이상을 채웠으나, 전체 5,000〜1만여 명에 달하는 인원은 일시에 충원하기가 어려웠다. 탈퇴 3인방 사이에서 탈퇴 · 외교 교섭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과 부처간 권한 쟁탈전이 일어났고, 동시에 탈퇴파 장관과 관료들과의 불화도 나타난다는 지적이 있었다. 

 

넷째, 영국내 Brexit를 둘러싼 강경파와 온건파간의 대립, EU탈퇴파와 잔존파간의 대립 등으로 효율적인 EU로부터 탈퇴전략을 마련하기 어려웠다. 

메이 총리의 입장에서도 EU 탈퇴통지를 계속 늦추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EU로부터의 압력과 영국내부의 강경탈퇴파의 입장이 메이 총리를 압박하는 형세이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메이 총리는 2016년 10월 2일 영국 보수당 대회에서 ①2017년 3월말까지 EU탈퇴 절차를 개시한다고 처음으로 밝혔고, 동시에 ②유럽공동체법(European Communities Act 1972)을 폐지하고 영국법으로 전환하는 법령인 Great Repeal Bill을 발표하고, ③EU로부터 완전한 주권의 회복을 주장하였다. 이는 영국의 EU탈퇴 이후의 대EU 관계에서 EEA나 EFTA 또는 관세동맹의 가능성이 낮은 동시에 이민억제정책의 채택을 우선 하는 "hard Brexit" 성향이 강함을 의미한다. 즉, 영국이 EU의 단일시장 접근을 희생하더라도 이민억제 등 국경통제를 강화한다는 것이어서, 그동안 EU가 추진한 상품, 서비스, 자본 및 사람의 자유이동 등 4대 자유화원칙에서 멀어지는 EU탈퇴를 의미하였다. 이후 영국에서는 의회를 중심으로 강경파와 온건파간의 Brexit방식에 있어서 hard Brexit와 soft Brexit 사이에서 의견대립으로 합의된 대EU전략의 마련이 어려웠다. 

 

종합적으로 볼 때, 영국은 <그림 2>에서와 같이 국민투표에서 EU탈퇴를 선택한 이상, EU조약 제50조에 근거하여 절차상 EU에 탈퇴 의사를 통지하고, 이어 새로운 협정체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탈퇴협정의 절차가 진행되더라도 실제로 탈퇴까지는 탈퇴협정의 발효 시 또는 탈퇴의사를 통지하고 2년 이후이며, 그동안 영국은 EU회원국으로 계속 남아 있게 된다. 영국과 EU가 협상을 통해서 탈퇴협정을 마련하고 이어 영국의회의 승인을 거치고 나면, EU정상회의에 의한 승인을 거쳐, 유럽의회의 과반수 찬성, EU각료이사회의 특정(가중)다수결(영국 이외의 27개국 중 20개국에서 인구 65% 이상)에 의한 찬성의 절차가 필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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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영국은 EU탈퇴 이후 EU단일시장에 특권적인 접근을 위해서는 EU와 새로운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 새로운 협정은 입법과정이 탈퇴협정과 거의 같지만, 만장일치의 찬성에 의한 EU각료이사회의 결의가 있어야 한다. EU내 각 회원국의 권한에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는 경우, 각 회원국의 비준절차도 필요하다. 탈퇴협정과 새로운 협정의 발효에 EU조약이 규정하는 기간이 2년이어서, 기간 내에 협의를 이루는 것이 관건이다.

 

 기한 내에 협상이 끝나지 않으면 영국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2가지이다. 하나는 EU 27개국의 만장일치의 동의가 필요한 협상기한의 연장이다. 다른 하나는 탈퇴 전에 새로운 협정체결을 포기(no-deal Brexit의 상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영국은 WTO협정의 최혜국대우원칙(MFN)을 준수해야 함에 따라, 영국의 EU에 대한 관세는 관세동맹 안에서의 무관세에서 MFN관세율(EU평균 5.2%)로 인상된다. 영국은 모든 WTO 회원국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한편 영국은 EU역외국과의 무역도 탈퇴의 영향을 받는다. 영국은 EU회원국으로서 EU역외국과 관세동맹, 유럽공동시장(EEA) 자유무역협정(FTA)과 경제동반자협정(EPA) 등을 통한 특혜적 접근을 얻어 왔다. 영국은 EU가 체결한 60개국과의 협정에서, EU탈퇴 후 다시 협상과정을 거쳐 새롭게 협정을 체결하던가 아니면 부분적으로 포기해야 한다. EU가 미국과 협의 중인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등 67개국과 진행 중인 협상에서도 제외된다. 이들 국가들과 새로운 협정체결은 영국이 EU와의 새로운 협정이 결정된 이후에나 기본적으로 가능할 수 있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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