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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대가 무너지고 있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5월06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19년05월03일 16시43분

작성자

  • 김태우
  • 前 통일연구원 원장, 前 국방선진화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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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이 무너지고 있다. 군대붕괴 현상은 병사에서 장관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현상은 병사들의 유약화(柔弱化) 및 군 기강 해이, 군 간부들의 무사안일 보신주의 행태와 일탈, 정치인들의 ‘문민통제’에 대한 몰이해 및 군사문제 개입으로 인한 군 운영의 왜곡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방치하면 군의 전투력 약화와 붕괴가 초래되고 결국에는 망국(亡國)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병사들의 유약화(柔弱化) 및 일탈

   

 근년 들어 병사 봉급이 크게 오르고 복지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병사들이 수십만 원의 월급을 받으면서 원하는 때에 휴가를 갈 수 있게 되었고 외출·외박도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일과 후 휴대폰 사용과 개인용무 외출이 가능해지면서 지금은 병사들을 게임방으로 실어나르는 군용버스를 운용하는 군부대도 있다. 하지만, 반갑지 않은 현상도 수반되고 있다. 강훈이 사라지면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제대하는 병사들이 적지 않고 현역으로 입대했다가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아 전역하는 병사가 매년 6,000여 명에 이른다. 군 기강이 이완되면서 개인적인 이유에 의한 탈영, 총기 난사, 자살, 구타 등의 사건들도 많아지고 있다. 무장 탈영병이 동료들을 사살한 2014년 6월 강원도 고성군 육군 제22사단의 ‘임병장 사건,’ 선임병들이 집단 구타로 후임병을 숨지게 한 2014년 8월 연천 육군 제28사단의 ‘윤일병 사건’ 등이 그런 사례다. 병사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유약화 및 일탈 현상을 중단시키지 못한다면 군의 전투력은 크게 저하될 것이며, 한국군은 ‘전쟁을 할 수 없는 군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군 간부들의 보신주의 및 일탈   

 

 경제성장과 함께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 그리고 베트남전 이후 참전경험을 축적할 수 없는 시대가 이어짐에 따라, 한국군의 간부들이 평범한 ‘월급쟁이’로 변해가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안보교육과 강훈이 사라지는 풍조 하에서, 한국군의 1/3을 점하는 장교 및 부사관들에게 있어 진급을 하고 월급을 받아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당장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고 ‘안보의 간성’이라는 사명감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자연이, 간부들은 진급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는 사건과 사고들에 대해 지극히 민감한데, 실제로 이들의 진급을 무산시키고 군경력을 망실하는 사건 사고들은 매우 다양하다. 부정부패 사건, 성추행 사건, 무기획득 및 방위사업 관련 비리 등의 범죄 행위에 연루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훈련 중 안전사고, 부하들의 일탈 등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발생한 사고들도 치명적이다. 회식자리에서 상관에게 저지른 한 번의 실수나 한 번의 음주운전이 이들을 낙오자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군 간부들이 무탈한 군대생활과 진급을 위해 인사권자에게 아부하고 무사안일과 몸조심에 연연하게 됨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군 문화 속에서 충성심과 용맹 그리고 지력을 갖춘 유능한 간부들이 양성되기는 어려우며, 간부들이 강군육성을 위해 부하들에게 강훈을 시키는 일도 쉽지 않다. 까딱하면 부정부패로 몰릴 위험성이 있는 사업에 종사하는 간부들은 자신의 임기 중에 필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으려 하며, 이런 움직임은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방위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필요한 무기획득 사업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보신주의가 만연하면 군대는 또 하나의 거대한 행정조직이 되어버릴 뿐, ‘싸워 이기는 군대’가 될 수 없다. 이런 군대에서는 국방비 규모, 첨단 장비, 우수한 군사기술 등이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정치권’의 군 개입으로 인한 폐해  

 

 시대와 세태 그리고 군 문화의 변천이 초래하는 병사들의 유약화, 간부들의 행정공무원화, 그로 인한 군 기강의 이완 등이 한국군의 전투력을 훼손하는 주요 원인들임에 틀림이 없지만, 문민통제에 대한 정치권의 몰이해와 이들의 군 개입으로 인한 폐해는 이보다 훨씬 더 막중하고 광범위하다. 예를 들어, 병 복무기간은 과거 노무현 정부시 18개월(육군기준)로 줄었다가 이명박 정부에 와서 다시 21개월로 늘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또 다시 18개월로의 단축을 결정했다. 북한이 핵폐기를 약속한 것도 아니고 공세적·침투적 대남전략을 포기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그리고 북한군 병사들이 8년 이상을 복무하는 상태에서 한국군의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이는 것은 안보·군사논리에 맞지 않는다. ‘젊은 표심(票心)’을 사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정치가 군대를 망치는 사례는 그 말고도 많다. 정치권이 ‘정치적 표계산’에 민감하여 구보, 사격, 수류탄 투척 등 훈련 중에 발생한 안전사고를 이유로 최고위 지휘관에게까지 과도한 책임을 물음으로써 군 간부들의 ‘몸조심’ 현상을 부추긴 사례들은 부지기수이며, 부정부패를 일소를 명분으로 ‘대어(大漁) 잡이’ 또는 ‘망신주기’ 식의 수사를 하여 복지부동을 부추긴 측면도 부인하기 어렵다. 군생활을 경험해보지도 않은 반군(反軍) 인사들이 주도하는 시민단체들이 ‘군 인권 조사’를 명분으로 군부대들을 들쑤시고 다닐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군대에서는 열심히 국가에 충성하기보다는 정치세력에 줄을 서는 것이 진급과 출세를 위한 지름길이 된다. 이런 군대에서 넬슨 제독과 같은 맹장이 등장하기란 쉽지 않다. 넬슨은 말썽꾸러기에다 육체적 장애가 있고 여성문제로 구설수를 달고 다녔지만, 영국은 군인으로서의 그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여 나포레옹 연합함대를 막아내는 사령관에 보임했고, 넬슨은 조국을 지켜냈다. “이순신 제독이 지금 한국군에 복무한다면 위관급에서 전역당했을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의미하는 바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남북상생 시대에도 안보정론은 준수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북한과의 상생을 위해 ‘평화’를 화두로 삼을 수 있다. 분단국인 한국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노력이다. 그럼에도 남북상생 노력과 확고한 안보는 병행되어야 한다. 때문에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평화를 외치는 중에도 군은 “위협이 있으면 대비하고 항상 훈련하여 임전태세를 유지한다”는 유비무환(有備無患)·백련천마(百練千摩)의 안보정론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군에서는 이런 정론이 붕괴되고 있다.

 

 ‘9·19 남북 군사분야합의’로 전방지역에서의 연대급 이상의 훈련이 중단되고 대북 감시정찰 비행이 크게 제약되었는데, 이는 유사시 한국군의 신속대응 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장병들의 피로 지켜온 북방한계선(NLL)을 형해화시키면서 서해 도서의 군사적 고립화와 수도권 측방의 전략적 취약성을 초래할 수 있는 서해 적대행위금지수역 문제 역시 심각하다. 이런 합의들은 공자(攻者)와 방자(防者)의 차이점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결코 공정하지 않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트럼프 대통령의 상업주의적 동맹정책 간의 합작이 가져온 결과이지만, 이것이 군에 미치는 영향도 메가톤급이다. 사람의 육체가 살아 움직이기 위해 혈액순환이 필요하듯 군대가 유사시 즉각 대응하는 임전태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훈련을 하지 않는 군대는 무위도식 오합지졸이 되고 연합훈련을 하지 않는 동맹은 고사(枯死)하고 말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 2.0’을 통해 ‘복무기간 18개월’ 방침을 천명했고, 병력감축, 지상군 사단 숫자 축소, 동원예비군 축소 및 동원기간 축소 등 축소지향적 국방개혁 계획을 밝혔으며, 이와 함께 전시작전통제권의 조기 전환 방침도 밝혔다. 북한의 무력태세가 불변인 상태에서 그리고 중국이 심대한 미래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력을 줄이겠다는 것은 안보정론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지만 어쨌든 정부는 그렇게 하고 있고, 이를 두둔하는 전문가들은 “군사력은 양이 아니고 질이다”와 “병력 감축과 복무기간 단축에 따른 문제는 정예화·첨단화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라는 교과서적 논리를 전개한다. 이런 주장들이 일반인들의 고개를 끄득이게 할 수는 있지만 현실에서의 이야기는 상당히 다르다. 정예화와 첨단화란 “어느 정도까지 해야 충분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없는 상한선이 없는 개념인데다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문제다. 예산 현실성도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병영 내에서 주적 표현이 사라지고 안보교육도 자취를 감추고 있는 상황에서 무작정 “군사력은 질이다”라고 외치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남베트남 패망을 기억하자 

 

 1959년 쿠바 혁명이 일어났을때 카스트로의 공산군은 고작 5천 명이었다. 이에 대항하는 버티스타 정부군의 병력은 십만 명이었지만 부패하고 분열된 오합지졸이었다. 이 내전에서 카스트로군은 완승을 거두고 쿠바는 공산화되었다. 베트남에서도 그랬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철군하면서 1973년 1월 27일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은 남베트남과 방위조약을 체결하여 북베트남이 평화협정을 파기하면 즉각 남베트남군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전투기와 전차를 포함한 막대한 군사장비도 남베트남군에 넘겨주었다. 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북베트남군이 평화협정을 파기하고 남침을 재개하자 남베트남군은 미군이 넘겨준 장비들을 버려둔 채 도주했다. 조종사들이 없어 미군이 남긴 전투기들은 이륙조차 하지 못했다. 북베트남군은 남침 개시 56일 만인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군이 버린 미국제 패턴(Patton) 전차를 몰고 사이공 시내로 진주했고 남베트남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공산통일 이후 처형·숙청 바람이 불면서 600만 명이 희생되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남베트남 군대에게 병력, 장비, 재원 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금 한국군이 그 시절 남베트남 군대를 닮아가고 있다. 그래도 “문제가 없다,” “9·19 군사합의나 축소형 국방개혁에도 문제가 없다,” “전작권을 조기 전환해도 위험하지 않다,” “군을 잘 몰라서 그런다” 등 의례적인 답변만을 반복할 것인가. 

1950년 6·25 전쟁이 터지기 직전 한국군 수뇌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인민군이 남침하면 곧 바로 반격하여 평양에서 점심을 먹고 신의주에서 저녁을 먹을 것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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