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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균 광풍이 만들어낸 가습기 살균제 참사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5월18일 23시09분

작성자

  • 이덕환
  •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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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때늦은 검찰 수사로 드러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진실은 참혹하고 절망적이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단순히 소비자의 안전을 무시한 악덕 외국계 기업이나 무책임하고 전문성이 낮은 중소기업이 꾸며낸 일회성 사건이 아니었다. ‘세계 최초’의 황당한 제품을 만들어서 소비자의 건강을 위협한 기업에게 무거운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산업부(기술표준원)·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환경부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제조·유통업체는 물론이고 정부에 대한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우리 모두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는 살균(殺菌) 광풍도 잠재워야 한다.

 

썩지 않는 ‘맹물’을 세정제로 허가해준 산업부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산업부(기술표준원)가 세균이나 곰팡이가 쉽게 자라는 초음파 가습기를 위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가습기 전용 ‘세정제’의 생산·유통을 허가해준 1994년부터 시작됐다. 일부 제품에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 공산품이라는 뜻의 ‘KC’(국가통합인증) 마크를 붙여주기도 했다. 업체의 자율인증을 믿고 허가를 해줬을 뿐이라는 산업부의 변명은 부끄럽고 무책임한 궤변이다. 2011년 소비자의 피해 사실이 확인되어 생산·유통이 금지될 때까지 무려 17년 동안 산업부가 ‘가습기 살균제’라는 엉터리 제품을 세정 기능을 가진 ‘공산품’으로 허가하고 관리해온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산업부가 가습기 전용 세정제로 허가해준 제품에는 정작 세정 기능에 필요한 계면활성제 성분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가습기메이트’는 살균 효과를 가진 CMIT(클로로메틸아이소싸이아졸리논) 0.02%, MIT(메틸아이소싸이아졸리논) 0.006%, 질산마그네슘 0.25%, 염화마그네슘 0.005% 이외에 에탄올 1%와 향(香) 0.05%가 들어있었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발생시킨 것으로 알려진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의 경우에도 PHMG(폴헥사메틸렌구아니딘) 0.125%와 소금 0.005%가 전부였다.

  그런 제품이 실질적으로 ‘살균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공업용으로 사용되는 살균·살충제에는 CMIT 10%와 MIT 3% 정도가 들어가고, PHMG는 25% 정도가 들어간다. 결국 산업부가 허가해준 ‘세정제’의 살균 성분은 세정제가 유통·소비 과정에 썩지 않도록 해주는 ‘보존제’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는 뚜껑을 열어둬도 썩지 않는 ‘맹물’을 가습기 전용의 세정제라고 허가해준 셈이다. ‘비타민’은 전혀 들어있지 않은 ‘가짜 비타민 영양제’의 생산·유통을 허가해준 꼴이다. 고약한 부패의 악취가 진하게 풍기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말 심각하고, 비리가 의심되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공산품의 안전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산업부가 제조사의 황당한 사용법을 조용히 눈감아줬다는 것이다. 가습기의 세정제는 가습기를 세척하는 용도로 썼어야만 했다. 가습기의 내부를 세정제로 닦아 낸 후 깨끗한 물로 헹궈내는 것이 세정제의 상식적인 사용법이다. 모든 세정제는 그렇게 사용한다. 가습기 전용의 세정제를 밀폐된 실내 공기 중에 살포하는 것은 상식적인 세척법이 아니다. 결국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산업부가 세정제의 황당한 사용법만 바로 잡았더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었던 인재(人災)였다는 뜻이다. 실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감염성 질병만 관리하는 보건부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의 부실한 대응도 실망스러운 정도를 훌쩍 넘어섰다. 가습기 살균제가 처음부터 불티나게 팔렸던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 초에 처음 등장한 가습기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많지도 않았고, 초음파 가습기에 물때나 곰팡이가 쉽게 생긴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주방용 세제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굳이 가습기 전용의 세정제를 사용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는 뜻이다. 

  2000년대에 가습기 살균제의 소비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곧바로 경고 신호가 울리기 시작했다. 의료 현장에서 이상 징후를 처음 인식한 것은 2006년이었다고 한다. 병원에 장기 입원했던 노약자들을 중심으로 악성 폐렴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질병관리본부의 반응은 싸늘했던 모양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괴질’ 폐렴에서 감염 가능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질병관리본부가 조금만 성의를 보였더라면 2011년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하기까지 5년 동안 급격하게 늘어났던 피해자들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의 전문성과 책임감이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질병관리본부의 무책임과 무성의는 구속된 서울대 수의대 교수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처음부터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가 ‘폐섬유증’에 한정된다는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가 밝힌 근거는 안정성평가연구소에 의뢰했던 3개월 동안 쥐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흡입독성 실험의 결과가 전부였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가 폐섬유증으로 한정된다는 합리적이고 확실한 근거는 없다. 질병관리본부가 그런 편견을 갖게 된 이유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런 편견이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질병관리본부가 CMIT/MIT를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원인물질’에서 제외시켜버렸다는 것이다. 역시 안전성평가연구소에 허술하게 의뢰했던 동물실험이 유일한 근거였다. 그러나 화학의 입장에서 CMIT/MIT의 흡입독성이 PHMG·PGH보다 낮을 것이라는 추정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고분자인 PHMG·PGH보다 물리적 크기가 훨씬 작고, 화학적 반응성이 훨씬 큰 CMIT/MIT는 인체 흡수 등의 생리적 특성이 크게 다르다고 해도 절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흡입해도 인체에 안전할 것이라는 주장은 확실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

  질병관리본부의 억지가 남긴 후유증은 심각하다. 폐섬유증 이외에 천식·비염·폐렴·편도염·호흡곤란·후두염 등의 다양한 질병을 앓고 있는 피해자는 부당한 차별을 받게 됐다. CMIT/MIT가 포함된 제품을 사용했던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정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기업의 의뢰로 PHMG가 인체 독성이 없다는 보고서를 만든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구속이 되는 상황에서 질병관리본부가 피해 범위를 애써 은폐·축소했던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서울대 수의대의 연구실은 독성에 대한 학술적 연구를 수행하는 곳일 뿐이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현안에 대해 공신력이 있는 자료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GLP(Good Laboratory Practice) 인증을 받지 않은 대학 실험실의 보고서가 문제라면 공신력이 생명인 질병관리본부의 책임은 훨씬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분명한 피해자를 눈앞에 두고, 흰쥐에게 독성을 물어봐야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질병관리본부의 경직된 입장은 놀라운 것이다.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반드시 필요한 문제다. 질병관리본부 전문가들의 전문성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해도 문제가 된다. 동물실험의 가치조차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의 질병관리본부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될 수 없다.


현대 과학을 거부하는 환경부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뒤처리를 떠맡게 된 환경부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장관까지 나서서 황당한 살인 제품을 만들어낸 기업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일은 용납하기 어렵다. ‘인간의 예지 능력’까지 들먹이면서 공식적으로 밝힌 장관의 ‘불가지론’(不可知論)은 현대 과학을 통째로 거부하고 부정하는 부끄러운 궤변이었다. 21세기 과학기술 시대에 환경 정책을 총괄하는 장관이 할 수 있는 주장이 아니었다. 미국의 기업 파산 역사에서 가장 큰 규모였던 맨빌(Manville)의 몰락은 로마 시대부터 쓰던 석면 때문이었다. 그런 석면의 유해성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이 지나서였다. 정부의 정책 홍보 매체인 ‘정책브리핑’까지 동원해서 아직도 불가지론이 정당하다고 우기고 있는 환경부의 모습은 백 걸음을 양보해도 볼썽 사나운 것이다.

  현재 환경부의 입장은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결론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2011년에 확인된 문제를 지난 5년 동안 묵혀뒀던 진짜 이유를 확실하게 밝혀내야 한다. 현대 과학을 거부하고, 지나질 정도로 기업친화적인 환경부에 대한 확실하고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과학 상식을 보강해야 할 검찰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검찰의 이해 수준이 산업부·질병관리본부·환경부보다 월등히 높은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검찰의 과학에 대한 상식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유해물질의 독성에 대한 동물실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동물실험은 윤리적 이유로 용납되지 않는 인체 실험의 대안이다. 동물실험이 독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중요한 기초자료를 제공해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명백한 피해자를 앞에 두고 동물실험의 결과를 과학적 근거라고 우겨서는 절대 안 된다. 똑같은 유해물질에서 나타나는 독성은 동물에 따라 크게 다르고, 개인에 따라서도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한 과학적 사실이다.

  독성에 대한 인식도 개선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가 끔찍한 피해를 남긴 것은 살균제 성분의 독성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생리활성이 있는 물질을 장기간에 걸쳐 호흡으로 흡입한 것이 문제였다. 아무리 인체 독성이 약한 물질이라도 하루 24시간 지속적으로 흡입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의 폐는 눈(眼)과 더불어 면역 기능이 거의 없는 무방비 상태로 독성물질에 노출된 기관이기 때문이다. 

  결국 환경부·식약처의 ‘유해물질’ 분류와 흡입 독성에 의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아무 상관이 없다. 상식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사용법에 의해 발생할 피해까지 고려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유해물질’로 분류해야 한다. 유해물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용 방법과 양에 따라 유해성은 크게 달라진다.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소금·설탕·물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목숨이 위험해진다.

  중소기업의 제품에 PGH라는 살균 성분이 ‘인체 안전기준 보다 160배나 많이 함유됐다’는 검찰의 발표는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공업용 살균제를 사용하는 PGH의 ‘인체 안전기준’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PGH를 사용한 대기업의 제품이 안전했다는 증거도 없다. 사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핵심은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던 대기업 제품이 사실은 전혀 안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대표가 화학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에 사법적으로 더 큰 벌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인터넷을 뒤져서 얻은 정보로 제품을 만들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소비자의 안전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은 대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상식조차 갖추지 못한 연구원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제품도 우리에게 끔찍한 피해를 준 엉터리 제품이었다. 

 

살균 광풍은 반드시 정리해야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어설픈 ‘과학’을 이용해 소비자를 위협해서 작은 이익을 챙기려는 기업의 ‘공포 마케팅’이 만들어낸 재앙이다. 우리의 생활환경에 인체에 해로운 세균이나 곰팡이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꼭 필요한 경우에는 유해 세균·바이러스·곰팡이를 제거해야 한다. 그렇다고 유해 세균·바이러스·곰팡이를 완전히 죽여 없애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박테리아(균)은 우리 눈으로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미물(微物)이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총량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나게 번성하고 있다. 그런 박테리아를 완전히 박멸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박테리아와 곰팡이는 자연 생태계의 순환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박테리아가 우리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어설픈 공격이 박테리아의 내성(耐性)을 키워주는 촉진제가 될 수도 있다. 과도한 살균 광풍 때문에 앞으로 더욱 강력한 살균제·항생제를 새로 만들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넘쳐나는 살균·항균·제균(除菌) 제품을 경계해야 한다. 수용액(水溶液) 상태로 생산·유통되는 식품과 생활용품에 꼭 넣을 수밖에 없는 ‘보존제’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할 이유는 없다. 뚜껑을 열고 상당한 기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식품이나 생활용품에는 반드시 보존재가 들어있기 마련이다. ‘천연’ 보존제는 안전하고, ‘합성’ 보존제는 위험하다는 인식은 아무 근거가 없는 엉터리 정보다. 우리가 보존제를 용납할 수밖에 없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보존제를 쓰지 않으면 세균과 곰팡이로 범벅이 된 식품이나 생활용품을 쓰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공짜 점심이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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