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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혐오 범죄에 대한 집단분노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5월29일 20시30분

작성자

  • 나은영
  •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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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발생한 정신질환자의 여성살인 사건은 전형적인 ‘약자 대상 감정범죄’의 하나다. 이것을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하든 정신질환에 의한 묻지마 범죄로 규정하든, 약자인 희생자에게 동일시하는 여성들의 분노는 ‘집단혐오 범죄에 대한 집단분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동일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각자 무엇에 주목하는가에 따라 경험과 감정이 달라진다 (『몰입, 생각의 재발견』 참조). 현재 주류 언론, 대안 언론, 및 인터넷과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소위 ‘여혐(여성혐오)’ 대 ‘남혐(남성혐오)’의 대립도 결국 서로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 정신질환 뒤에 숨은 집단혐오 범죄

경찰 측에서는 이 사건을 정신질환으로 인한 ‘묻지마 범죄’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범인은 ‘아무나’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 ‘여성 중에서 아무나’ 죽이려 한 것이므로, ‘범죄 대상’이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범죄 대상이 속한 집단 또는 범주’가 특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크게 보아 ‘묻지마 범죄’에 속한다고 할 수는 있을지라도, 일반적인 ‘묻지마 범죄’와는 달리 여성이라는 범주에 한정된 ‘범주 특수성’을 지닌다.

이 사건 이외에 끔찍한 토막 살인의 피해자로 발견된 사례도 대개는 건장한 남성이기보다는 여성일 때가 많다. 약자이기에 범죄의 희생양이 될 확률이 더 높은 것이다. 그래서 희생자가 강자일 때는 강자들이 힘을 합쳐 분노를 표현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희생자가 약자일 때는 약자들의 마음속에 그동안 쌓여 왔던 피해의식이 폭발함으로써 분노로 분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번 사건이 가해자가 앓고 있는 정신질환의 피해망상으로 인한 우발적 범죄라면, 그 가해자는 여성들이 실제로는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준다고 (망상으로 인해) ‘잘못’ 생각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망상으로 인한 살인은 괜찮다’고 할 수는 없다. 범인이 자신의 의지를 통제하기 힘든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법적으로는 그 처벌의 수위가 조절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우연히’ 죽게 된 약자와 그 지인, 그리고 그 약자에 동일시하여 분노하는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다.

한 남성의 피해망상이 치료받아야 할 개인의 질환이듯, 이 사건에 분노하는 약자와 여성들의 피해의식도 사회의 차별적 관행이 지속되어 옴으로써 생긴 산물이기에 그 원인 제공자인 사회 속의 뿌리를 수정해야 한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 분노를 증폭시키는 미디어의 ‘주목’ 방향

미디어는 우리의 ‘주목(attention)’을 결정한다. 무엇에 주의를 기울일 것인가, 무엇을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것을 미디어가 알려주고 있다.

분노의 씨앗은 특히 좌절이 많은 사회에서, 좌절이 많은 집단과 개인에게서 자라난다. 어느 한 영역에서 분노가 발생하면, 언론은 그 현상 중 일부 ‘선정적’인, 즉 감정을 많이 일으키는 부분에 조명 비추고, 그것이 인터넷과 SNS를 통해 여기저기로 옮겨지면서 실제보다 더 과장되고 확대 재생산된다. 좌절로 인해 자라난 분노의 씨앗이 공격을 일으키고, 이것이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더욱 증폭되는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한껏 증폭된 상대측에 대한 혐오는 오프라인상에서 상대와 마주칠 때 극도의 혐오에 기반을 둔 폭력적 행위로 분출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언감생심 온화한 분위기에서의 면대면 대화는 꿈도 꿀 수 없게 되고, 양측 모두 상대를 탓하며 공생의 해결책으로부터 더욱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약자들이 차별받지 않는 제도와 관행을 정착시키고,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더 잘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다. 둘 다 필요하다. 이것은 다른 쪽을 공격하거나 배제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둘 모두를 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을 잘 만들어야 해결되는 것이다.

분노를 증폭시키기보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언론, 말로만 언급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실천적 시스템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독려하는 언론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파괴적 방향이 아닌 건설적 방향으로 해결책을 구성해갈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과 주목의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하는 언론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모두 올바른 기자 역할을 해야 한다. 요즘은 대언론사의 기자들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SNS를 활용하는 우리 모두가 기자이기 때문이다.

 

□ 과일반화의 오류에서 벗어나야

집단혐오 범죄에 대한 집단분노, 탈출구는 없을까? 무엇보다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 각자의 머릿속에서 ‘과일반화’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여성들 전체’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며, ‘남성들 전체’가 여성을 혐오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뿌리 깊은 차별은 그것이 비록 일부의 현상이라 할지라도 ‘전체’의 현상처럼 느껴지기가 훨씬 더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생의 해결책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나친 일반화를 잠시 멈추고 해당 사건에 한정하여 바라보는 ‘주목’의 조절이 필요하다. 과일반화는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빨리 깨닫고 실천에 옮길수록 같은 시대, 같은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더 넓게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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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5월29일 20시30분
  • 검색어 태그 #분노 #혐오 #감정범죄 #정신질환 #피해망상 #피해의식 #과일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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