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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는 검토대상 아니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7월29일 17시05분

작성자

  • 김태우
  • 前 통일연구원 원장, 前 국방선진화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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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갈등의 불똥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에까지 튀고 있다. 지난 7월 18일 청와대 안보실장이 “일본이 추가 보복조치를 시행한다면 GSOMIA의 파기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 단초였고, 이후 이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과 학계의 논쟁이 확대되고 있다. 

현재의 한일갈등은 7월 1일 일본 정부가 한국의 반도체 생산업체들에게 수출해온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리지스트 등 3개 품목에 대해 7월 4일부터 대한(對韓)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가시화되었다. 이어서 일본은 외국환 관리법상의 우대국을 의미하는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할 예정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은 대체 수입선을 찾느라 분주히 움직여야 했고, 해당 품목들의 국산화 가능성을 가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후에도 양국 간의 감정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일본이 추가보복을 시사하는 중에 한국은 GSOMIA 파기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고, 한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렇듯 현재 진행 중인 한일갈등은 일본의 수출 규제로부터 발화되었지만, 출발점은 2018년 11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이춘식 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신일본제철(구 일본제철)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을 때였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무상 3억 달러와 유상재정자금 2억 달러를 지불하는 것으로 강제징용에 대한 개인보상 문제를 한국정부에게 이양했는데, 그리고 실제로 한국 정부에 의해 1975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보상이 이루어졌는데, 뒤늦게 한국 법원이 일본 기업에게 배상책임을 판결한 것은 국가 간 합의인 청구권 협정을 뒤집는 행동이었다. 

 

이에 아베 정부는 불신과 분노를 표현하면서 대응을 시사했지만, 이후 8개월 동안 문재인 정부의 외교부는 “삼권분립의 국가에서 정부가 법원의 판결에 개입할 수 없다”는 논리만을 내세운 채 손을 놓고 있었다. 그랬다가 막상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를 발표하자 정부와 방송언론들은 불매운동을 포함한 반일(反日) 캠페인을 주도하는 양상을 보였고, ‘국익계산에 의거한 냉정한 대응’을 주문하는 신중론자들의 목소리는 거의 언론을 타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GSOMIA 파기를 검토할 수 있다”는 발언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GSOMIA는 그런 이유로 파기를 검토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군사정보보호협정, 과민해야 할 대상 아니다

 

  GSOMIA는 2016년 11월 23일 한민구 국방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 간에 서명되었는데, 서명에 이르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한일 간에 군사정보보호협정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부터였고,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반복되면서 양국은 협정을 서둘렀으며, 한국정부는 2012년 6월 26일 국무회의에서 일본과 체결할 GSOMIA의 문안을 가결했다. 

 

하지만, 당시 야당(현재의 여당)은 ‘국민의 반일감정을 무시한 밀실 추진’이라는 이유로 정부를 질타했고, 이명박 정부는 서명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 과정에서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과 조세영 외교부 동북아국장이 ‘밀실 추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며, 이후 한일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상황에서 필자 역시 한일관계 파탄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글을 썼다가 정치권이 발원시킨 ‘반일 캠페인’의 유탄을 맞아 통일연구원장직에서 중도 사임해야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줄기차게 지속된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미‧일 삼국은 2014년에 ‘북핵 및 미사일 위협에 관한 정보공유약정(TISA; Trilateral Information- Sharing Agreement)’을 발효시켰고, 북핵의 고도화가 지속됨에 따라 한일 양국은 양자 간 GSOMIA를 재추진하게 되었다. 2016년 11월 23일 양국이 마침내 GSOMIA에 서명함에 따라 미국을 거쳐야만 한일 간의 정보공유가 가능했던 TISA 체제의 한계를 넘어 한일 간 직접적인 정보교환이 가능하게 되었다.

 

  GSOMIA는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조약과는 격이 다르며, 상대국으로부터 받는 군사정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고 전달‧보관‧관리‧폐기하는 절차에 합의한 것으로서 Ⅱ급 이하의 군사비밀만을 교환 대상으로 한다. 즉, 교환할 정보들을 미리 특정한 것이 아니라 정보교환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은 미국을 위시한 32개국과 정부 간 또는 국방부 간 GSOMIA를 맺고 있으며, 대상국에는 러시아, 루마니아, 폴란드, 불가리아, 우즈베키스탄 등 과거 사회주의 블럭에 속했던 나라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성격의 GSOMIA를 두고 ‘제2의 을사늑약’이니 ‘일본의 한반도 군사개입 명분’이니 하는 것은 당치 않다.

 

한국에게 더 필요한 한일 GSOMIA

 

  이렇듯 우여곡절 끝에 ‘쌍무적 협정’으로 성사된 한일 GSOMIA이지만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는 매우 소중한 것이다. 

 

첫째, 북한으로부터의 안보위협에 대처함에 있어 일본의 우월한 기술정보와 한국이 유리점을 가진 지리정보 및 인간정보(humint)를 공유하거나 중복 정보를 통해 정보의 신뢰성을 상호 보완하는 것은 양국 모두의 안보이익에 부합한다. 예를 들어, 7월 23일 한국의 조기경보레이더는 북한이 발사한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의 430km 비행 이후의 궤적을 추적하는데 실패했지만, 일본이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두 미사일의 비행거리가 600km인 것으로 최종 확인했다. GSOMIA가 작동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스칸데르 미사일은 러시아가 유럽에 구축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를 돌파하기 위해 만든 특수한 탄도미사일로서 정상적인 포물선 궤도가 아닌 ‘풀업(pull-up)’ 기동을 통해 방어체계들을 교란·돌파하도록 제작되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북한이 실제로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실전 배치한 상태라면 한국군의 종말단계 저고도 방어체계(PAC)는 물론 미군이 운용하는 종말단계 고고도 방어체계(THAAD)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둘째, 일본은 특히 기술정보력에서 월등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한국의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일본이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5기의 정찰위성, 1,000km 이상의 탐지거리를 가진 4식의 지상감시레이더, 20여 대의 조기경보기, 80여 대의 해상초계기, 6척의 이지스함 등을 운용하고 있다. 여기에 비해 한국은 정찰위성을 보유하고 있지 않고 조기경보기와 해상초계기의 숫자도 크게 못 미친다. 지구가 곡면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 한국의 그린파인 레이더나 이지스함에 탑재된 레이더는 1분 정도가 지난 후부터 탐지할 수 있지만, 우주에 배치된 일본의 정찰위성들은 미사일이 구름층을 통과하는 순간 곧바로 탐지할 수 있다. 

 

일본은 잠수함 정보와 감청능력(SIGINT)에 있어서도 최강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은닉성과 침투성이 뛰어난 잠수함에 탑재되어 운용되는 탄도미사일(SLBM)은 비행거리와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워 지상에 설치된 방어체계로는 요격이 거의 불가능한데, 북한이 SLBM을 본격적으로 실전 배치한다면 일본의 대잠수함 정보는 한국안보에 매우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셋째, 북한 미사일의 사실상 타깃은 한국이다. 일본의 경우 북한이 일본을 사정거리 내에 두는 미사일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고 있지만, 북한이 실제로 일본을 향해 핵을 사용하거나 미사일을 날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북한에게 있어 일본은 적화통일 대상지역이 아니며, 북한이 세계 제3위의 경제강국이자 최고 수준의 기술강국인 일본을 공격하는 경우 이후 일본이 취할 대응들은 북한이 감당하기 힘든 것들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 위협으로부터 가장 다급하게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국가는 한국이며, GSOMIA를 통해 양국이 교환하는 군사정보의 최대 수혜국도 한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GSOMIA 폐기’를 대일(對日) 협박카드인양 거론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5면초가(五面楚歌)의 안보고립 속에 ‘투명국가’로 전락한 대한민국 

 

  지금 한국은 극심한 안보고립·외교실종 상태에 빠져 있다. 지난 7월 23일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을 전후한 시점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23일 중국과 러시아의 공군기들이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무단 진입하고, 러시아 공중경보기는 독도 영공을 침범했는데, 한국이 전투기를 발진시켜 이를 항의하는 동안 일본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F-15J 전투기들을 출격시켰다. 독도가 한·중·러·일 4국의 전투기, 폭격기, 공중경보기 등이 뒤엉킨 화약고가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지난 7월 25일에는 북한이 또 다시 단거리 미사일을 동해로 발사하고는 한국의 F-35A 도입과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을 촉구하는 ‘평양발 대남 위력시위’였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불쾌하지 않으며 나와 김정은 위원장의 관계는 매우 양호하다”라고 발언했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의 안보는 철저히 고립되었고 국민의 생존권은 무참히 유린되었으며, 대한민국은 ‘투명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중이 패권경쟁을 벌이는 신(新)냉전 구도 하에서 중국은 러시아 및 북한과의 결속을 강화하면서 한국에게 무차별적 압박과 고압적 요구들을 반복하고 있다. 또 유럽에서 미국과 신냉전 대결을 펼치고 있는 러시아 역시 중·러 전략적 결속을 다지면서 대한(對韓) 압박에 동참하고 있다. 한일갈등의 악화와 함께 일본은 한국에게 무역전쟁을 선포한 상태이며, 7월 23일 사태에서 보듯  군사적 적대감까지 축적하고 있다. 

 

이런 중에 북한은 연일 한국 정부에게 핀잔을 주는 갑(甲)질을 계속하고 있다. 7월 25일 미사일 발사 직후에는 노골적으로 ‘대남용’이라고 선언하는 무도함을 내보였으며, 훈육자가 피훈육자에게 가르치듯 “평양발 경고를 제대로 알아듣고 바른 자세를 취하라”고 윽박질렀다. 그런 중에도 재선 가도에 돌입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는 신경을 쓰지 않겠다”면서 북한의 대남위협에 면죄부를 제공하고 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이 5면초가(五面楚歌)의 안보고립 속으로 빠져든 것이다. 

 

 냉철함으로 상호간 확전 피하고 대화에 나서야


  요컨대, 지금 한국은 반일(反日) 캠페인에 함몰되어 ‘GSOMIA 파기’를 검토할 때가 아니다. 그보다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국가안보와 국가경제’라고 하는 큰 그림을 바라보면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들은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도 지금 정부발·방송발 반일(反日)캠페인에는 논리적이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고 국익을 무시한 비현실적인 측면도 많다.

 

  우선,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상당 부분의 안보고립과 한일갈등을 자초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1,2차 대전의 도발에 대해 무제한적으로 사과와 반성을 거듭하는 독일과 달리 충분한 사과보다는 합의내용만 따지는 일본인들에 대해 괘씸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래도 국가 간의 약속을 깨고 강제징용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린 것이 어느 쪽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더구나 그래놓고 ‘죽창론’이니 ‘매국론’이니 하는 논리를 앞세우면서 국가경제에 부담을 지우는 반일 캠페인을 부추기는 것은 정부가 저지른 정책실패의 손실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삼권분립의 국가에서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는 설명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사법부의 요직들에 특정한 이념적 성향을 가진 법관들을 배치하고, 과거 정부에서 한일 간 합의를 의식하여 관련 재판들을 미루어온 판사들을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삼아 압박했던 정부가 ‘사법부 독립성’을 운위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정부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대중(對中) 자세와의 형평성에서도 문제가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한국과 주한미군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방어무기인 사드(THAAD)의 배치를 두고 중국이 한국의 안보주권을 침해하면서까지 ‘한국 때리기’에 나섰을 때 한국정부는 저자세로 일관하지 않았던가?  

 

  한일갈등이 무제한으로 확산되는 것은 한국의 안보이익과 경제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당면한 최대 위협인 북핵 위협에 대처함은 당연히 한일 양국의 공동이익이며, 북핵의 타깃이 사실상 한국뿐이라는 점에서 한일 간 및 한·미·일 삼국 간 안보 공조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나라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일 GSOMIA를 파기하는 것은 양국 및 삼국 간 안보 공조를 해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미국의 한국 전문가들도 GSOMIA 파기는 한국에게 스스로에게 심각한 안보손실을 초래할 자충수가 될 것으로 우려한다. 

 

경제적으로도 그렇다. 일본이 한국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을 타깃으로 삼아 타격을 가하려 하는 것은  얄미운 행동이지만, 상대국에 대한 무역의존도의 차이나 양국 간 경제력·기술력의 격차를 감안할 때 양국 간 무역전쟁에서 더 큰 타격을 받는 것은 한국 쪽이다. 정부는 물리적 조치들을 통한 확전을 최소화하고 외교와 대화를 통한 갈등 해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베 정부도 동일한 자세를 가져야 할 때이다. 자유무역 체제 하에서 번영을 구가하여 경제대국이 된 ‘자유무역의 최대 수혜국’인 일본이 이웃나라에게 무역규제를 가하는 것은 경제대국답지 않은 행동이며, 강제징용 문제로 대한(對韓) 제재를 시작해놓고 ‘안보상의 이유’로 둘러대는 것 역시 속 보이는 ‘헐리웃 액션’이다. 일본 정부는 특정시대에 집권한 한국의 정부만을 쳐다보기보다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공유한 이웃국가로서 일본과의 공생공영을 원하는 다수 한국 국민을 바라보면서 정부 간 갈등이 국민 간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아베 정부는 지난 7월 23일 러시아군용기의 영공 침범에 대한 한국의 경고사격에 대해 독도에 전투기를 발진시키고, “우리(일본) 영토에서 이러한 (경고사격)행위를 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이는 한일갈등을 영토문제로 비화시킨 것으로 양국 국민갈등을 부추기는 큰 실수였다. 한일 양국정부는 갈등이 진행되는 중에도 상호간 ‘넘지 않아야 할 선’을 준수하는 냉철함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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