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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으로 화학물질을 거부하는 사회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10월12일 16시42분

작성자

  • 이덕환
  •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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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가 빠르게 증폭되고 있다. 이번에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CMIT/MIT가 들어있는 치약이 있다는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의 의원의 발언에 온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모처럼 식약처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치약에 대한 전수 조사를 통해 CMIT/MIT가 들어있는 원료를 사용한 10개 사 149종의 치약을 전량 회수했다. 그런데 ‘유럽·미국에서도 사용하는 성분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식약처의 어설픈 발언이 오히려 소비자를 혼란에 빠뜨려 버렸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성분을 금지한 식약처의 조처를 납득할 수 없었다. 결국 CMIT/MIT에 대한 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모양이다. 비누·샴푸·린스·구강세정제 등의 생활화학용품에는 제도적으로 사용이 허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험’하지 않다는 의미

 

  우리에게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알려지게 된 CMIT/MIT는 사실 1970년대 다우케미칼이 ‘케톤’이라는 상품명으로 개발해서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산업용 살균제다. 물로 씻어내는 치약·화장품·세정제·물티슈 등 생활화학용품의 부패·변질을 막아주는 보존제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15ppm의 허용기준을 설정하여 허용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허용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을 정도로 인체 안전성이 인정되고 있는 훌륭한 보존제다. 실제로 CMIT/MIT의 사용을 제한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인 셈이다. 결국 CMIT/MIT가 검출된 치약은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인체 독성을 걱정해야 하는 ‘위험’한 제품이 아니라는 뜻이다. 더욱이 시중에 유통된 치약에 들어있는 CMIT/MIT의 양은 최대 0.0044ppm으로 유럽의 허용기준과는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극미량이었다.

  치약에 CMIT/MIT가 유입된 경로도 황당하다. 제조사가 의도적으로 첨가한 것이 아니었다. 치약의 거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용한 계면활성제 성분인 로릴 황산 소듐(SLS) 분말이 문제였다. SLS는 팜유나 코코넛유로 만든 로르산 알코올을 원료로 합성한 계면활성제로 합성세제나 인체에 안전한 식품첨가물로 활용된다. SLS 제조사가 제조 과정에서의 부패·변질을 막기 위해 소량의 CMIT/MIT를 사용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SLS 제조사가 자신들의 제품을 원료로 사용하는 치약 제조사에게 CMIT/MIT의 사용 사실을 정확하게 알리지 않았고, 치약 제조사도 자신들이 사용하는 원료의 화학적 성분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문제의 치약에 들어있는 CMIT/MIT는 중간 원료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첨가된 것이었고, 그 양은 치약의 부패·변질을 예방하는 보존제의 역할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양이었다. 결과적으로 문제의 치약에 들어있던 CMIT/MIT의 양은 소비자가 위험을 걱정할 이유가 없는 수준이었다. 식약처가 소비자를 설득하기 위해 지적했던 것이 바로 그런 사실이었다.

 

‘불법’ 치약의 정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약에 CMIT/MIT가 들어있었던 것은 제도적으로 심각한 문제였다. 식약처가 2015년 9월에 ‘식약처 고시 제2015-69호’를 통해 치약에 허용하는 보존제를 벤조산(안식향산), 메틸파라벤, 프로필파라벤의 3종으로 제한해버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치약의 합법적인 보존제로 사용되는 CMIT/MIT를 우리나라에서는 제도적으로 금지해버린 것이다. 식약처가 당시 치약에 사용하던 다른 보존제들의 인체 독성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자료를 확보했던 것은 아니었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 여당 국회의원이 느닷없이 파라벤과 트리클로산이 함유된 치약을 떠들썩하게 문제 삼았던 것이 발단이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이유로 파라벤과 트리클로산의 사용을 금지한 미국 미네소타주의 결정이 발단이었다. 언론과 인터넷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결국 식약처는 치약에 사용하는 보존제에 대한 관리를 필요 이상으로 강화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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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화학용품이나 가공식품에 어떤 보존제를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제품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살균·보존력이 충분하고, 인체 독성이 낮아야 한다. 그러나 효능이 뛰어나고, 인체 독성이 충분히 낮더라도 우리가 싫어하는 경우에는 사용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엉터리 살인 제품인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으로 알려진 CMIT/MIT가 바로 그런 경우다. 결국 치약 논란은 사회적 인식이 나빠서 금지시킨 성분을 독성 때문에 금지된 것으로 오해해서 생긴 것이다. 

 

맹목적인 화학물질 기피증 

 

  ‘가습기 살균제’라는 전대미문의 살인제품으로 홍역을 치른 우리에게 식품과 화학물질에 포함된 ‘보존제’는 목에 걸린 가시와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보존제는 수분이 포함된 생활화학용품이나 가공식품의 부패·변질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보존제를 넣지 않은 제품은 생산·유통·사용 과정에서 미생물에 의해 썩기 마련이다. 물론 보존제가 인체에 위해 요인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보존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제품의 부패·변질에 의해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보존제는 제품의 부패·변질에 의한 위해 가능성이 보존제 자체의 독성에 의한 위해 가능성보다 클 경우에 선택하는 해결책이다.

  생활화학용품과 가공식품에 사용할 수 있는 보존제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에탄올·아세트산·구연산(레몬산, 시트르산)·안식향산(벤조산)·아스코브산(비타민 C)와 같은 천연물도 있고,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널리 알려진 CMIT/MIT, PHMG, PGH, BKC와 같은 합성물질도 있다. 천연물과 합성물질의 독성이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모두가 박테리아나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을 제거하는 살생물제(biocide)이다. 천연 살균제가 인체에 안전하다는 주장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피톤치드’(phytoncide, 식물살생물질)는 식물이 미생물을 퇴치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식물이 인간의 건강을 위해 피톤치드를 만든다는 주장은 과도한 인간우월주의가 만들어낸 착각이다. 피톤치드도 지나치게 흡입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언론에서는 ‘케미포비아’(chemiphobia)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골든타임’(golden time)과 마찬가지로 영어 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엉터리 영어 신조어다. 화학 분야의 국제기구인 IUPAC(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에서는 ‘화학물질에 대한 불합리한 공포’를 ‘케모포비아’(chemophobia)로 정의하고 있다. 임상의학적 의미의 치료가 필요한 ‘공포증’이 아니라 화학에 대한 상식 부족이나 편견에 의한 ‘혐오증’인 케모포비아는 선진 과학기술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정상적인 사회 문제다. 언론이 앞장서서 케모포비아를 증폭시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살생물질 관리에 대한 법과 제도가 부실하다는 주장은 관료들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핑계다. 화평법은 가습기 살균제와 아무 관계가 없다. 살생물질의 독성이 나라마다 다른 것도 아니다. 인터넷에 널려있는 독성 자료를 우리 스스로 재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은 독성학자들의 이기적인 주장일 뿐이다. 관료들의 전문성과 책임감을 강화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과도한 살균 집착증이 문제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생활환경에서 세균(박테리아)과 곰팡이를 죽여 없애지 않으면 당장 심각한 재앙을 닥쳐올 것처럼 믿었다.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위해서는 실내 공기를 방향제·탈취제로 가득 채워야 하고, 빨래에도 반드시 살균제를 뿌려야만 한다고 믿었다. 깨끗한 물에 비누·세제로 빨아서 잘 말리기만 하면 대부분의 세균과 곰팡이가 제거된다는 건강한 상식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기업의 무차별적인 살균 마케팅이 만들어낸 비정상이다.

  일부러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서 세균과 곰팡이를 완전히 제거해버릴 수는 없다. 세균과 곰팡이도 지구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무차별적인 살균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미생물의 내성을 키워줘서 슈퍼박테리아처럼 퇴치 불가능한 슈퍼미생물의 등장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유익한 유산균·대장균·효모 등의 미생물도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멸균된 환경에서는 우리의 면역력도 퇴화할 수밖에 없다. 면역기능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어린이의 경우에는 문제가 정말 심각해질 수 있다. 면역기능을 충분히 단련시키지 못하면 작은 자극에도 면역체계가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면역 이상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아토피가 바로 그런 증상이다.

  진짜 강력한 살균력이 있는 제품은 약사법으로 관리하는 ‘의약외품’과 농약관리법으로 관리하는 ‘농약’뿐이다. 산업부가 관리하는 공산품은 살균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살균력을 자랑하는 공산품은 경계해야 한다. 밀폐된 실내에서 살균력이 있다는 공산품을 장시간 사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오존 발생 장치가 있는 공기청정기가 대표적이다. 공기 청정기를 장시간 틀어놓은 방에서 비릿하고 시원한 느낌이 느껴지면 반드시 환기를 해야만 한다. 실내에 연속적으로 방향제나 탈취제를 뿌려대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오염원을 깨끗하게 제거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한 해결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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