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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함성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11월15일 19시40분
  • 최종수정 2016년11월15일 20시49분

작성자

  • 김형준
  • 배제대학교 인문사회대학 석좌교수(정치학),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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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분노의 촛불이 강을 이루었다. 광화문 광장에 울려 퍼진 100만명의 함성은 참으로 깊고 거대했다. 세대와 신분을 뛰어 넘는 질서 있고 평화로운 집회였기 때문에 더욱 빛이 났다. 참가자들은 “비폭력“을 외쳤고, 가족 단위로 참여한 사람들이 유독 많았던 것이 역대 집회와는 크게 달랐다. 한마디로 분노는 컸고 평화는 강했던 11․12 광화문 집회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일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옳은 것을 위해 싸운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국민들의 믿음이 이런 평화로운 촛불 집회를 잉태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국정 혼란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 앞에 놓인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대통령 탄핵이다. 헌법 65조에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최종 심판은 헌법재판소가 한다. 국정 농단을 해 온 최순실이 기소되면서 박 대통령의 범죄 사실이 밝혀지면 국회는 탄핵을 추진 할 수 밖에 없다.

 새누리당내에서도 탄핵론이 번지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탄핵을 주장했고, 비박계가 가세했다. 다만, 야권은 탄핵을 망설이고 있다. 핵심 이유는 탄핵이 가결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200인의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야3당 의석(165석)에 야권 성향 무소속 6석을 합치면 171석으로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새누리당에서 29명이 합류해야 한다.

또한, 헌법 재판소가 과연 탄핵 결정을 내릴지 불투명하다. 헌법 재판관 9명중 6명이상의 찬성으로 탄핵이 가결된다. 더구나 보수 성향의 재판관들이 너무 많아서 야권이 탄핵을 주저하는 이유다. 헌법에 보장된 퇴진 수단인 탄핵이 그나마 정국을 풀 현실적이고 깔끔한 해법이지만 수개월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국회 탄핵 절차가 시작되면 국회 탄핵 발의에 1-2개월 정도 소요되고, 헌법 재판소 심판 과정 180일까지 최대 8개월 정도 걸릴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에게 시간만 벌어줄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 친박은 공식적으로 탄핵을 반대하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지금 상황에서는 탄핵이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 민심을 잠재울 수 있고, 탄핵까지 최대 8개월 정도 걸리기 때문에 최순실 사태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면 보수층을 재결집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끝까지 버티면 버틸수록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방법은 탄핵밖에 없다.

 

둘째,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다. 더민주는 의원 총회를 열어 추미애 대표가 기습적으로 제안한 박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을 무산시킨 후 당론으로 '대통령 2선 후퇴'에서 '즉각 퇴진'으로 방향을 틀었다. 문재인 전 대표도 11월 15일 긴급 기자 회견을 통해 "박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서겠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대통령 궐위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 선거를 치러야 하는 헌법 규정 때문에 대선이 졸속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이 23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한 달 이내에 여야가 당내 경선을 끝내야 한다. 이럴 경우 후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불가능해지고 자격 없는 부실 대통령이 또 다시 탄생할 수도 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고집과 불통의 품성으로 봐선 절대로 하야하지 않을 것이다. 김종필 전 총리도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도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 하지 않을 것이다”고 단언했다.

 

셋째, 단계적 권력 이양을 전제로 한 조기 대선이다. 대통령 탄핵이나 하야가 아니면 단계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 현실적 해법이 될 수 있다.

국회에서 추천한 총리가 과도 거국 내각을 구성한 뒤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아 대선전까지 국정을 이끄는 것이다. 헌법 71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다수의 헌법학자들도 현 상황이 헌법 71조상의 '사고'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 방안은 사실상 하야와 같은 것이지만 즉각적인 퇴진이 아니라 질서 있는 퇴진을 전제로 한다.

한편, 단계적 권력이양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2선 후퇴한 박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으로 임기를 다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임 시점을 밝혀야 한다. 여기에는 박 대통령이 특검 수사 결과, 잘못이 드러나면 사임하는 시점이 포함된다. 대통령도 2차 대국민 사과에서 “잘못이 드러나면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별도 특검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는 12월에 시작해 120일간의 특검 활동이 끝나는 내년 4월에 대통령이 사임하고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르면 된다. 내년 6월전에 조기 대선을 치러 새 대통령을 뽑는 것이 현 시점에서 혼란을 최대한 줄이며 질서 있게 사태를 수습해가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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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는 《산업재해 예방 : 과학적 접근 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 A Scientific Approach》이라는 책에서 경험적 법칙을 제시했다. 그는 “노동 현장에서의 대형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이런 하인리히 법칙은 노동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각종 사고나 재난, 또는 정치적 위기나 실패와 관련된 법칙으로 확장되어 적용될 수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는 그 이전에 이미 여러 번의 경고등이 켜졌었다. 가령, 2014년 11월에 소위 정윤회 문건 파동이 발생했을 때 이미 전조가 있었다. 급기야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 연루되어 심판을 받았던 박관천 경정은 2015년 1월에 “대한민국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 대통령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 ‘헌정 사상 초유’라는 말이 유독 많았다. 세월호 사고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정홍원 총리를 안대희  문창극 총리 후보들이 낙마하자 재활용하는 일이 있었다.

  집권당 원내 대표를 배신자로 몰아 끌어내리는 일도 있었고, 각종 의혹에 휩싸인 현직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퇴하지 않고 검찰의 조사를 받는 해괴한 일도 발생했다. 장관이 대통령 대면 보고를 하지 못하고, 비설실장이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도 종종 발생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드러난 헌정 사상 초유란 “정상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수많은 작고 큰 비정상이 쌓여 오늘날 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회, 언론, 시민단체, 그리고 정부(권력 기관)에서 견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 4개 핵심 부분이 고장이 나서 작동되지 않다보니 대통령은 어느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권력을 사유화 할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이 정치를 무시하고 행정이 모든 것을 주도해야 한다는 ‘행정 독재적 사고’에 빠져 있어도 이를 교정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되지 못했다.

 이런 음습한 환경 속에서 최순실이라는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은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면밀히 살펴 그 원인을 파악하고 잘못된 점을 시정하면 대형 사고나 실패를 방지할 수 있지만, 징후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이런 법칙에 무지했던 여야 정당, 정치인, 그리고 맹목적으로 박근혜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모두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해야 한다. 국민들이 박 대통령에 대해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멸감을 줬기 때문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비판 이면에는 ”저게 대통령이냐“라는 경멸과 증오가 자리 잡고 있다.

 

광화문 광장의 거대한 함성을 들은 박 대통령이 취해야 일은 단순 명쾌하다. 역사와 진솔하게 대화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질서 있게 퇴진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헌법 71조를 수용하면서 모든 권한을 국회가 추천한 총리에게 이양하고 특검 조사가 끝나는 시점에 사임할 것을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박 대통령은 당장 조사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선의로 추진했던 일이었고 긍정적 효과가 적지 않았음에도 매우 가슴 아파 하고 있다. 모든 의혹을 사실로 단정하고 매도되는 것에 안타까운 심정이다”는 박 대통령을 적극 두둔하는 발언은 국민들을 또 다시 절망스럽게 한다.

 

유신 독재에 항거했던 시인 김지하는 ‘타는 목마름'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더 이상 새벽 뒷골목도 아닌 광장에서, 타는 목마름도 아닌 위대한 함성으로, 숨 죽일 필요도 없이 당당하게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김지하 시인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위대한 함성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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