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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50) 수수꽃다리, 이름은 토종, 원산지는 외국?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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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4월02일 17시00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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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봄의 진행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것 같습니다. 기온이 급격히 오르니 예년에는 조금 시차를 두고 피던 온갖 꽃들이 거의 한꺼번에 피어나는 느낌을 주는 요즘입니다. 주로 벚꽃을 중심으로 한 장미과의 각종 꽃들인 매화, 살구꽃이 지는가 했더니 복숭아꽃, 앵두꽃, 옥매화, 그리고 그런 종류들의 각종 겹꽃들까지 화려한 꽃의 향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느 산을 가더라도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고 있고, 공원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지요. 필자는 그 가운데서 흔히 5월을 불러오는 꽃이라는 수수꽃다리가 개화를 시작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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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30일 필자의 분당 아파트단지에서 개화하기 시작한 수수꽃다리

 

수수꽃다리를 아시는지요?

‘궁궐의 우리 나무’라는 책을 쓴 박상진 선생은 ‘수수 꽃 달리는 나무’가 줄어서 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수수 이삭 뭉치 같은 원뿔 모양의 꽃차례에 달리는 꽃이라는 뜻이지요. 우리 조상들이 붙여준 이름 중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이름 중의 하나로 꼽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당시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가까이 느꼈던 느낌 그대로를 쉬운 말로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 이름이 지금 만들어낸 이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어감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공원 같은 곳에서 수수꽃다리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를 보고는 "이거 라일락 아냐?" 하신 적이 없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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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19일 서강대 교정의 수수꽃다리 꽃들 (보라색과 흰색)

 

라일락 맞습니다. 영어 이름 lilac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이후 우리 이름보다 더 보편적으로 알려져 버려서 그렇습니다. 향기도 좋고 보기도 좋은 꽃이기에 그 이름을 주제로 한 많은 노래들이 만들어져서 불리고 있는 것도 이 이름이 더 잘 알려지게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1970년대에 김영애가 ‘라일락꽃’이란 제목으로, 1980년에는 윤형주가 ‘우리들의 이야기’란 제목의 노래에서, 1996년에는 이선희가 ‘라일락이 질 때’라는 제목으로, 라일락꽃을 노래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만들었습니다. 최근에는 국민가수가 되다시피 한 아이유가 꽃피는 시기에 맞추어 ‘라일락’이란 이름으로 앨범을 내어서 인터넷 곳곳에서 주목을 끌고 있네요. 

 

박상진 선생은 특이하게도 이 꽃의 프랑스어 이름이 리라(lilas)라면서 1960년대에 크게 유행한 ‘베사메무쵸’라는 번안곡의 ‘리라 꽃 지던 밤에 베사메무쵸/ 리라 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의 리라 꽃이 바로 수수꽃다리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실 공원에는 거의 모두 수수꽃다리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진짜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수수꽃다리는 이제 거의 한반도 북쪽에서만 만날 수 있다고 하고, 지금 보는 나무들은 어쩌면 ‘라일락’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또 원조를 따져 보면 수입된 나무 ‘라일락’도 그 조상은 우리 나무라고 할 수 있어서 더욱 헷갈리게 만듭니다. ​ 

 

이 나무를 ‘모양새가 아름다워 가꾸고 싶은 나무’들 중의 하나로 뽑은 이유미 선생은 라일락이 ‘중세 때 아랍인들이 스페인 및 북아프리카를 정복하면서 함께 들여가서 13세기부터는 유럽에서 재배를 시작하였고, 조선 말엽에 우리나라로 건너와 원예용으로 펴졌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고, 우리 원조인 수수꽃다리와 수입 라일락은 전문가들도 구분하기 어렵다고 하니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수수꽃다리는 라일락인 셈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수입된 나무 라일락의 원조가 우리 나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토종 수수꽃다리 중에서 작지만 건강한 생활력을 가진 한 종류를 미국 식물학자가 본국으로 가져가서 품종 개량의 원목으로 사용하면서, 그의 한국인 비서 이름을 본따서 이 종류를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나무를 계속 개량하여 오늘날의 ‘라일락’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이지요. 그 라일락이 다시 우리나라로 역수입되어 라일락이란 이름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수수꽃다리가 라일락이 태어난 원조 나무인 셈이니까 공원에서 붙인 이름도 맞는 것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시다.  

 

요즈음에는 라일락의 원조가 우리 토종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서 우리 것을 좋아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공원을 조성하는 곳마다 이 나무를 대량으로 식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곳곳에서 이 이름을 붙인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결과는 조금 얄궂게 되었습니다. 수입된 라일락에는 우리 토종 이름인 ‘수수꽃다리’를 붙여 놓고, 그 원조가 된다는 토종 수수꽃다리에는 ‘미스김 라일락’이란 이름을 붙여 놓은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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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1일 시립대학교 교정에서 만난 미스김라일락

 

그나저나 수수꽃다리는 향기가 참 좋은 꽃을 피웁니다. 또 정확하게 하트 모양을 하고 있는 잎모양도 싱그럽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나무를 싱그러움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행가의 노랫말과 제목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은 이미 언급했지만, 이 나무의 꽃말이 ‘청춘’ 혹은 ‘젊은 날의 회상’이라고 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고보니 필자가 둘러본 많은 대학 캠퍼스에 이 나무가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수수꽃다리 사진과 그 이야기를 SNS에 썼더니 필자의 지인 한 분이 댓글을 달아 주었습니다. ‘수수꽃다리 이파리를 어금니로 꽉 깨물어 그 모양을 보면 첫사랑이 어떻게 될지 점칠 수 있다고 합니다. 일단 한번 깨물어 보세요.’라고. 독자 여러분들도 한번 깨물어 보시지요.

알고 보니 그렇게 향기로운 꽃을 가진 이 나무의 잎은 지독히도 쓴맛을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청춘들이 만드는 첫사랑은 이렇게 달콤하면서 쓰디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라일락이 아니 수수꽃다리가 만개하여 가는 곳마다 그 달콤한 향기가 퍼지기를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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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7일 분당 집근처 수수꽃다리가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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