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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탄도미사일의 모든 것 <1> 초창기의 개발 역사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2월13일 16시26분

작성자

  • 장영근
  •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미사일센터장, 한국항공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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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2017년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준비가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고 수뇌부가 결심하는 임의의 시각과 임의의 장소에서 발사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를 뒷받침하려는 듯 북한은 지난212일 노동 또는 무수단의 개량형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북한이 2013212일 실시한 3차 핵실험 4주년이 되는 이 날을 택해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을 감행했다는 사실이다.

과연 북한의 탄도미사일개발은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돼 왔으며, 지금은 어떤 수준인가, 종류는 어떤 것들이 있나 등 북한 탄도미사일의 모든 것에 대해 한국항공대 장영근 교수의 분석을 통해 모두 6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북한은 현저한 탄도미사일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옛 소련의 붕괴 이후에는 탄도미사일체계, 부품 및 기술을 수출할 수 있는 가장 활발한 국가 중의 하나이다. 북한은 수년에 걸쳐 소련 및 중국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북한이 미사일 능력을 확장하는데 오랜 관심을 가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동안 상대적으로 비행시험은 거의 수행하지 않은 점은 특이하다. 북한은 600기 이상의 스커드미사일, 약 200기 정도의 노동미사일, 그리고 약 50여기의 무수단미사일을 전력화 배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은 다연장 로켓의 생산과 함께 1960년대 초에 로켓 및 미사일 분야에 처음 뛰어들었다. 1965년경에 김일성은 독자적인 탄도미사일을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정치적인 결정을 하였다. 그 해에 함흥군사학원을 설립하고 여기서 미사일 개발과 관련한 교육 및 훈련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에 북한은 로켓, 지대공미사일, 대함미사일을 공급하고, 미사일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인적자원의 개발을 시작했다. 1967년부터 1971년 사이에 북한의 군사비는 총 국가예산의 약30%까지 증가했다. 

  북한 지도부가 탄도미사일 능력을 개발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먼저,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미국 군사력을 억제하고 격파할 수 있는 무기로 간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 전쟁 발발 시에 러시아나 중국이 북한을 지원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의 미사일 개발 역사를 시기별로 분리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1960년대와 70,80년대에 걸친 초기의 탄도미사일 개발역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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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말에 북한은 옛 소련으로부터 지대함미사일 및 FROG-5/7 미사일을 획득하고, 1970년경에는 중국으로부터 지대함미사일, 지대공미사일 및 기술지원을 제공받았다. 비록 북한이 1960년대 중반에 소련의 탄도미사일을 획득하고자 했었지만 최소한도 초기에는 거절당하였다. 이후 탄도미사일을 생산할 수 있도록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1971년 9월 북한은 탄도미사일 및 다른 무기체계를 획득, 개발 및 생산할 수 있도록 중국과 합의서에 서명하였다. 하지만 실질적인 협력은 북한의 엔지니어가 중국의 DF-61 미사일을 개발하는 협력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까지인 1977년까지 시작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미사일 개발프로그램에서 급진적인 진전을 위해서는 인적자원의 개발이 요구되었지만 충분하지 못했다. 당시 북한은 러시아와 같은 미사일 기술 선진국으로부터 하드웨어 및 기술의 이전이 필요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미사일 기술이전에 부정적이었다. 결국 북한은 역설계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위해 소련제 스커드 B 미사일을 획득했다. 물론 이러한 획득 시기나 획득원이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인 관점은 이집트가 1976년 또는 1979년과 1981년 사이에 첫 번째 스커드 B 미사일을 북한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1984년경에 북한은 스커드 B 미사일의 독자개발 버전인 화성 5 미사일을 생산하고 비행시험을 수행했다. 1985년에 북한은 미사일 개발 및 생산을 위해 재정적인 지원을 얻기 위해 이란과 합의문에 서명하였고, 향후 이란은 북한의 미사일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라크와 전쟁을 수행했던 이란에게 탄도미사일을 판매했던 북한은 외환을 벌고 미사일 생산의 경제성을 증진시키는 기회를 제공 받았다. 더욱이 이란의 화성 5 미사일 활용은 다양한 독자적인 비행시험을 요구하는 북한에게 성능 데이터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1985년부터 1986년까지, 북한은 화성 5 미사일에 대한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1987년에 양산에 돌입하게 되었다. 1987~1988년 기간 중에는 월간 8~10기의 미사일 생산율이 가능하게 되었다. 화성 5 미사일의 대량생산 이후에 바로 북한은 화성 6(스커드 C) 미사일의 개발을 시작했다. 이후 1987년과 1989년경에 노동미사일 개발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급격한 개발은 놀라운 일이었으며 역사적으로 작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후발 산업국가는 산업화에 요구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이는 미사일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가속화한 개발은 외국의 기술이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미사일 개발에서 북한의 급격한 진전은 높은 수준의 해외기술지원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1980년대 후반에 북한은 중거리탄도미사일(MRBM; Medium Range Ballistic Missile) 개발을 시작했다. 1990~1991년경에 화성 6 미사일의 양산이 시작되었고 그때쯤에 첫 번째의 노동미사일 시제품이 제작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중동 국가들에 기술이전 및 완제품 스커드 공장 등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계속>

 

 

 <연재 순서>

1. 초창기 개발의 역사 

2. 중거리(MRBM) 및 준장거리탄도미사일(IRBM) 개발

3. 대륙간탄도탄(ICBM)의 개발

4. 최근의 개발 동향

5. 탄도미사일 기술의 진화 방향

6. 北미사일 기술의 4계보(系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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