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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임민주주의의 퇴장과 시민정치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3월13일 17시45분

작성자

  • 최창렬
  • 용인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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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이처럼 간명하고 정확하게 정의한 말도 없다. 정치철학자인 샹탈 무페(Chantal Mouffe)는 “민주주의는 시민에 의한 권력을 뜻한다. 데모스 크라토스에서 크라토스는 권력을 데모스는 시민을 말한다”고 정의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주권자가 권력을 선출된 대표에게 위임하는 제도다. 국민에 의해 위임된 권력은 대리인이 자의적으로 행사해선 안된다. 선출된 대표가 자신에게 위임된 권력을 사적소유물로 인식하여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전형적 후진국적 정치행태가 위임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다. 박근혜 대통령이 행사해 온 권력의 운용방식이 아닐 수 없다.

 

 주인이 잠시 위탁한 권력을 법치에 의해 평화적으로 회수한 대통령 파면은 3·10 시민혁명이요, 법치혁명이다. 대의제에서 정작 유권자가 투표를 제외하고는 실질적 주권을 행사할 통로와 방법이 막혀 있다는 사실은 현대민주주의가 풀어야 할 숙제다. SNS가 발달되었다고 하나 민에 의한 통제는 여전히 ‘절차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3·10 대통령 탄핵은 이런 의미에서 4·19혁명, 6·10 민주대항쟁과 같은 반열의 또 한 번의 시민혁명으로 기록되기에 손색이 없다. 한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역사의 큰 획을 그었다. 

 

 광장의 ‘촛불’은 단순한 대규모 집회가 아니었다. 주권자가 잠시 위임한 권력을 농단한 무리에게 평화적으로 퇴장을 명한 주권자의 일반의지(general will)와 국민의 집단지성이 발현되는 역사적 현장에 다름 아니었다. 애당초 ‘국론분열’은 존재하지 않았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주문이 낭독되는 그 순간까지 일관되게 탄핵찬성은 80% 내외였다. 탄핵심판에 대한 승복과 찬성은 헌재 판결 이후에도 압도적이다. 어차피 탄핵반대라는 이견은 존재하는 것이고, 이의 표출도 민심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상식을 허무는 진실의 왜곡과 억지는 폭력적 양상과 선동적 발언으로 구체화됐다. 이들을 촛불민심과 같은 무게와 반열로 다루는 국론분열이라는 진단은 사실을 꿰뚫는 접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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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만의 시대, 유신정권은 태생적 정통성의 한계를 무마하고자 불의한 정권에 저항했던 시민에 대한 정치적 배제와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산산조각난 역사의 망령, ‘국민총화’를 꺼내들었고, 이에서 ‘국론분열’이란 개념을 도출했다. 국민총화는 일제가 조선의 백성을 전쟁터로 몰기 위한 이데올로기였다.  

 

 민주주의는 유권자들이 공직자를 해임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신념이 존재할 때 정상적인 작동이 가능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절차적 민주주의(procedural democracy)가 실질적 민주주의(substantial democracy)로 진화하기 위해 시민의 권력이 작동되지 않으면 안된다. 시민권력을 광장정치와 장외정치로 오도하고, 제도권과 의회권력만이 민주적이라는 반정치적이며, 시대착오적 인식의 구각(舊殼)을 깨고 나와야 한다. 애당초 민주주의의 원천은 시민권력이다. 시민이 요구하고 의회가 정책으로 입법하고 반영하는 체제이다. ‘광장’을 장외정치의 프레임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이제 광장은 일상적으로 평화롭게 주권자들이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여 대의제가 가지고 있는 원천적 한계인 ‘민의의 왜곡’을 차단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게 키워나가야 한다. 

 

 제왕적 권력의 존재가 민주화 이후 예외없이 여섯 명 대통령의 불명예 퇴진을 가져왔다는 원인을 제공한 면이 있지만, 권력구조가 바뀐 들 정경유착과 제왕적 검찰 권력, 경제권력의 존재가 사라지는가. 박근혜 정권 이후 심화된 소득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부당한 격차 등 사회경제적 모순을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 차원으로 승화되지 않는 한 비극은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위임민주주의의 철회를 명령한 민의 승리를 사회통합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선, 시민의 정당한 요구가 반영되는 시민정치가 시대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수능재주(水能載舟) 역능복주(亦能覆舟)(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는 말은 그래서 울림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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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3월13일 17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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