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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위기설, 낭설로 치부하면 끝나는 문제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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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4월24일 10시06분

작성자

  • 김태우
  • 前 통일연구원 원장, 前 국방선진화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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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미국이 연일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한국사회에 ‘4월 위기설’이 확산되던 지난 4월 15일 평양에서는 105번째 태양절을 기념하는 대규모 군사퍼레이드가 펼쳐졌다. ‘4월 위기설’이 확산된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대륙간탄도탄(ICBM)을 쏘면 군사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낸 상태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제6차 핵실험을 준비하는 징후들이 탐지되고 태양절이나 4월 25일 인민군 창건기념일에 즈음하여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들은 마치 한반도에 위기가 발생하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연일 ‘4월 위기설’을 보도했고, 지난 3월 동해에서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에 참가한 후 싱가폴로 떠났던 칼빈슨 항모전단이 다시 한반도를 향하고 있다는 보도도 위기설의 확산에 한 몫을 했다. 그러자 정부가 나서서 ‘근거없는 낭설’이라며 국민을 안심시켰다. 그러면, 위기설을 낭설로 치부하고 국민이 안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그런다고 한반도 안보위기 가능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인가? 결코 그건 아닐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미국은 4월 6일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만찬을 하던 시점에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 정부군을 응징하기 위해 시리아 공군기지에 수십 발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퍼부었고, 13일에는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가니스탄내 근거지에 GBU-43 MOAB이라는 초대형 재래폭탄을 투하했으며, 괌에 배치된 글로벌호크 장거리 고고도 무인정찰기도 일본의 요코다 기지로 이동 배치한 상태다. MOAB탄의 개량형인 MOP탄은 지하 60m를 관통할 수 있어 북한의 지하벙커나 핵실험장을 파괴하는데 적격이다. 현재 서태평양 해역에서 활동 중인 항모 칼빈슨호가 3함대 소속이라는 점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동태평양을 관할하는 3함대에 속한 항모를 한반도에 보냄으로써 여차하면 7함대에 더하여 3함대까지 동아시아 사태에 투입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듯하다. 미국은 이런 조치들을 통해 북한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를 발하고 있다.

 

  북한이 아직은 ‘ICBM 발사 또는 추가 핵실험’이라는 미국의 레드라인으로 넘지 않고 태양절 열병식을 통해 새로운 ICBM급 미사일들을 공개하는 선에서 그친 것은 일단 소낙비는 피해야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북한이 핵보유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계속해야 하는 ‘기술적 수요’는 남아 있는 것이며, 중국이 북한을 전략적 완충지대로 그리고 북핵을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을 견제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보는 시각을 청산하지 않고 이중플레이를 계속하는 한 북한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즉, 북한은 여전히 4월 중에 핵실험을 할 수 있으며, 그게 아니면 5월이든 6월이든 언제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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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미국이 군사행동 가능성을 흘리는 것과 실제로 군사행동에 들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가능성을 흘리는 것은 중국과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외교적 행동이기 때문에 군사행동 언급을 두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북한 못지 않은 벼랑끝 외교의 전문가로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군사행동 의도를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강도 외교전을 펼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미국이 군사행동을 결심하는 경우 한국은 일단 만류할 수밖에 없고, 만류가 불가능하다면 한미 간 전략대화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면서도 확전을 유발하지 않을 시나리오를 협의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군사행동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며, 규모, 강도, 목표 등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시나리오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북한이 쏜 미사일을 북한 영토 밖에서 요격하는 최소 군사행동에서부터 핵관련 목표물과 함께 북한이 가진 대남 보복 수단들을 한꺼번에 파괴해버리는 최대 군사행동에 이르기까지 수십 가지의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이 향후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 제대로 대비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에는 핵대피소도 없고, 유사시 행동요령을 가르쳐주는 매뉴얼도 없으며, 그런 비상훈련이 실시된 적도 동원예비군 관련 지침이 하달된 적도 없다.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을 빌미로 북한이 대남 전쟁을 도발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전쟁도발이 자멸의 길임을 알려주는 것이 최상이다. 그러려면 한국이 전면전에 대비하고 있어야 하지만, 이와 관련한 정부의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상황이 발생한다면 대혼란이 불보듯 뻔한데도 정부가 “낭설이므로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만 내보내는 것이 책임있는 행동일까? 유사상태의 발생 자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군이 확고한 억제태세를 견지해야 하지만, 대통령이 없는 상태에서 황교안 권한대행이 확고하게 군통수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일까? 정부에 한미 간 전략대화를 위한 채널이 있기나 한 것일까? 국민은 이런 궁금증들에 대해 대답을 제시할 지도자를 찾고 있지만, 지금 뛰고 있는 대선주자들이 안보위기설을 안중에나 두고 있을까? 참으로 답답하고 잔인한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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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4월24일 10시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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