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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위기의 싹을 미리 잘라내야 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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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6월05일 17시20분
  • 최종수정 2018년06월05일 22시40분

작성자

  • 이경태
  • 前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前 OECD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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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거제시, 창원시 진해구, 통영시, 고성군, 울산광역시 동구, 영암군, 목포시, 해남군을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하였다. 성동조선, STX 의 부실화와 대우조선,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 한국GM 군산공장 폐쇄의 충격으로 해당지역에서 대규모실업이 발생하고 지역경제전체가 침체됨에 따른 위기대응조치이다.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던 러스트 벨트(rust belt,녹슨지대)가 한국에서도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앞으로 전국의 주요 제조업체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들이 연이어 러스트 벨트화 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지워 버릴 수가 없다. 그만큼 지금 한국 제조업은 위기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5월 수출이 13.5% 증가했다는 수치를 보고 지난 몇 달동안의 수출부진이 일시적이었다고 안도할 수 있겠는가? 주력 수출산업들이 중국에게 추월당할 직전에 있고 미래 먹거리 산업에서는 중국이 앞서 가고 있으니 수출침체는 조만간 한국경제의 쓰나미로 밀어 닥칠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조선산업은 부동의 세계1위 자리를 고수할 수 있을 것으로 우리는 믿었다. STX 조선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경영인의 무리한 사업 확장이 야기한 개별기업의 문제로 치부했다. 현대중공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세계경제의 침체에 기인한 선박발주 감소와 유가 하락에 기인한 해양구조물 발주 감소의 외부요인에 원인을 돌렸다. 정작 해야 할 경쟁력 강화는 소홀히 하였다. 기술을 개발하고 노사가 머리를 맞대는 등 정신이 제대로 박힌 기업이라면 당연히 했어야 할 일도 손을 놓고 있었다. 

 

정부 역시 선행적 구조조정의 생태계 조성 노력을 등한시 했다. 인수합병, 사업포트폴리오 조정, 노사협력, 공공연구소와 기업연구소 간의 협력 등이 적기에 원활하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촘촘하게 짜여진 정책 팩키지를 제공하지 못했다. 

 

GM 군산공장은 몇 년째 가동률이 20% 대에 머물고 영업 손실을 내고 있었다. GM 본사는 세계지도를 놓고 어느 지역에서 어떤 모델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 GM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지를 따져서 생산입지를 결정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 자동차업체의 임금수준은 중국의 거의 10배에 달할 뿐만 아니라 선진국보다도 높아서 매출액 대비 임금비중이 한국 A사가 13.1%이고, 도요타가 7.8%라고 한다. 이러면 노동생산성도 같이 높아야 하는데 자동차 1대당 투입시간이 한국 26.8시간인데 비해서 미국 14.7시간, 중국 17.7시간이라는 것이다. GM이 한국에서 생산을 계속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현대자동차의 국내생산은 정체이고 영업이익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GM 군산공장 철수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사태가 울산을 덮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경쟁력 위기는 조선, 자동차에서 끝나지 않는다.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반도체, 전기차배터리 등 한국의 수출을 견인하고 있는 제품들이 이미 중국으로 경쟁력 우위가 넘어가고 있다. 매일경제가 5월30일에 보도한 내용을 보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중국시장 점유율은 금년 1분기에 1.3%로 쪼그라들었고 인도에서도 샤오미에게 1위 자리를 빼앗겼다. 미국시장에서는 1위인 애플과의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

 

중국의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는 지난해 3분기에 9인치 이상 대형 디스플레이 패널 세계시장에서 LG를 누르고 1위로 부상했다.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CATL은 지난해 세계시장에서 LG화학을 누르고 2위에 올랐다.

중국의 반도체기업인 YMTC는 올해 32단 수준의 3D 낸드플레시를 양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중국 기업의 공통점은 국영기업으로서 중국정부의 아낌없는 자금지원, 공격적 인수합병을 통한 기술확보, 비관세장벽에 의한 중국시장 독점 등이다. 이들의 발전 속도는 매우 빨라서 한국대표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내 몰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대표산업의 경쟁력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은 역사의 법칙이다. 한국의 제조업발전 역사는 선진국의 경쟁우위를 무너뜨리는 투쟁의 과정이었다. 이제 우리가 그 법칙의 피해자가 되기 시작하고 있다. 

 

문제는 주력산업 몰락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이들을 대체하는 신주력 산업의 등장이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1년 내내 대기업 지배구조를 바꾸고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데 아마도 임기 내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규제철폐는 1년 내내 구호에 그치고 있다.

 

중소기업과 창업활성화는 막대한 돈 살포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의 구체적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전국의 주요산업단지가 러스트 벨트로 전락하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 경우에 한국경제는 실물위기의 국면으로 치달을 것이다. 금융위기는 조기에 극복할 수 있다. 1997년 IMF 위기가 그랬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 때도 그랬다.

 

그러나 실물위기는 극복하는데 짧아도 10년은 걸릴 것이다. 한번 잃어버린 경쟁력을 재건하는 것은 허물어진 집을 새로 짓는 것보다도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김동연 부총리에게 혁신경제를 제대로 하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혁신경제를 짓는 연장과 도구를 주고 그렇게 요구하는 것이 순서이다. 손발 묶어 놓고 뛰라고 하면 넘어지기 십상이다.혁신경제 추진의 가장 핵심정책 수단인 규제혁파는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 없이는 제자리걸음일 뿐이라는 사실은 그간의 역대정부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경제부총리가 모든 책임을 지고 경제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을 충분히 부여했는가? 청와대 주도의 현행 정부 정책추진 시스템으로는 혁신경제는커녕 현상유지 경제도 지켜내기 힘들다. 경제부총리에게 경제정책 컨트롤타워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확실하게 부여하고 독려에 나서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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