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재정지출 과감히 늘리자”는 주장, 무책임한 발상이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8년06월11일 17시30분

작성자

  • 김상겸
  •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메타정보

  • 32

본문

 

 

국가부채와 재정적자의 심각성, 주목해 볼만

 

지난 5월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우리나라 국가채무를 현재 보다 더욱 증가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재정지출을 과감히 더 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고 한다. 국가채무란 쉽게 말해 우리나라 정부가 얻은 빚이니, 빚을 더 내서라도 정부가 돈을 더 써야한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집권당의 정책 책임자가 대통령 앞에서 한 말이라는 점에서, 그 무게가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사실 빚이란 필요에 따라 얻을 수도 있고, 또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갚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 기업들의 대표적인 자금 조달방법 가운데 하나가 부채를 활용하는 것이니, 정부가 돈을 더 쓰기 위해 빚을 더 내자는 말 역시 딱히 비현실적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나라살림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주장이 긍정적이라 평가하기는 더욱 어렵다. 부채로 살아가는 방식이 탐탁하지 않기도 하지만, 재정지출을 시원히 증가시키자고 나랏빚을 더 낸다는 생각 자체가 무책임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이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소득주도 성장론을 뒷받침하는 그럴듯해 보이는 논리

 

국가채무의 증가를 용인하는 한이 있어도, 재정지출을 더욱 늘여야한다는 이와 같은 주장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우리나라의 경제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은 ‘소득주도 성장론’으로 대표된다. 가계소득을 증가시키면 돈을 더 쓸 것이므로 소비가 활성화될 것이고, 소상공인이나 기업들은 판매가 잘될 터이니 투자도 늘일 것이며, 이러한 선순환이 지속되면 종국에는 경제가 활성화 된다는 주장인 것이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고, 흥미롭기까지 한 주장이지만 사실 소득주도 성장론의 실현여부는 아직 검증된바가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성과는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정책결과가 나타나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좀 더 두고봐야할지도 모르겠으나 아직 경제성장률이나 고용률 등의 거시지표는 물론이고,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 역시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야심차게 추진했던 최저임금의 상향조정에도 불구하고 소득재분배가 이전보다 더욱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한 국책연구원의 사례조사 결과를 제시하면서까지 정책의 유효성을 강조하고는 있으나, 선뜻 동의되지 않을 뿐더러 왠지 구차스러운 느낌까지 든다. 

 

나라가  ‘빚을 더 얻어도 되는지?’ 곰곰 생각해볼 일

 

국가채무를 더욱 증가시키자는 주장은 이러한 경제상황과 집권당의 조급함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경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으니, 재정을 더욱 과감히 투입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재정지출이란 당초에 정해둔 약속에 따라 거두어들이는 세금수입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므로, 더 쓸 돈이 쉽게 마련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재정지출을 좀 더 강력히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빚을 더 내는 방식’이 가장 손쉬운 것이다. 이런 논의를 함에 있어서, 사고가 건전한 사람이라면 ‘빚을 더 얻어도 되는지?’, 보다 구체적으로는 ‘빚이라는 것이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것인데, 갚을 능력은 되는지?’, 또 ‘꼬박꼬박 돌아오는 이자부담은 견딜만한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국가채무의 확대를 더 용인해야한다는 주장은, ‘우리나라의 부채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지 않으므로, 빚을 넉넉히 더 내도 괜찮을 것‘임을 근거로 하고 있다. 언뜻 그럴 듯해 보이지만 대단히 허술한 논리이다. 남들보다 빚이 적으니, 더 얻어도 된다는 생각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논거로서의 타당성은 부실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안정적 수준인 것으로 평가된다.

<註 :  ‘국가부채(Liability)’는 보편적으로 ‘국가채무(Debt)’와 구분 없이 혼용되고 있으며, 대체로 유사하지만  엄밀하게는 다른 개념이다. 국가채무는 현금주의 관점에서 현재 확정된 빚을 의미하는 반면, 국가부채는 발생주의 관점에서 현재의 확정된 빚과 정부가 실제로 책임져야하는 미래의 부담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본 고에서는 별도로 특정하지 않는 한, 국가부채라는 말로 통일하기로 한다. > 

 

우리나라 국가부채 지금까지  ‘비교적 안정적’ 관리는 사실

 

보편적으로 한 국가의 부채는 정부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세 가지 기준으로 조사된다. 가장 협의의 기준인 ‘국가채무(D1)'는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부채의 합을 의미한다. ’국가채무(D1)‘에 비영리공공기관의 부채를 더하면 ’일반정부 부채(D2)‘가 되는데, 대부분의 국가들이 통계 작성시 이를 따르고 있어 국제비교를 위해 가장 빈번히 활용되는 기준이다. 가장 광의의 기준인 ’공공부문 부채(D3)'는 ‘일반정부 부채(D2)’에 비금융 공기업의 부채를 합한 것인데, 이는 정부의 일을 대신하는 공기업의 특성을 고려, 공기업의 부채 역시 궁극적으로는 정부의 책임이라는 견해가 반영된 것이다. 2016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를 살펴보면 ‘국가채무(D1)'는 627조원(GDP대비 38.2%), ’일반정부 부채(D2)‘는 718조원(43.7%), ’공공부문 부채(D3)‘는 1,037조원(63.1%) 규모이다.

 

다른 나라의 국가부채는 대체로 우리보다 높은 수준이다. ‘일반정부 부채(D2)'를 기준으로, OECD 국가평균은 GDP의 82% 수준이며,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굵직한 선진국들은 대부분 100%를 훨씬 상회한다. 물론 몇몇 국가들의 국가부채는 우리보다 낮지만 경제수준이나 규모 측면에서 비교대상이라 보기는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주장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이와 같은 단순 횡단면 비교결과 외에, 소득이나 인구고령화의 진행정도를 제어했을 때의 비교결과 역시 유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예컨대 국민소득을 제어했을 때의 선진국 부채수준은 대략 GDP의 45~71% 수준이었는데, 현재 보다는 현저히 낮지만 이 역시 우리나라의 부채상황보다 우수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비교대상 선진국들의 국민소득이 우리와 비슷한 수준 (1인당 $27,000)이었을 당시의 일반정부 부채를 의미한다. 국가부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요소 가운데 하나는 인구고령화의 정도인데, 고령인구 비중이 높을수록 복지지출 등이 급격한 증가로 국가부채가 악화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OECD 주요국가들이 고령화사회 진입 즈음의 부채는 평균적으로 GDP의 50% 수준인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결국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부채 상황은 우수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열등하다 단정 지을 수도 없는 수준이다.  

 

대중영합적 단기효과 노린 정치적 판단은 경계해야 할 대상

 

이러한 국가부채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가? 사실 이에 대한 해석은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적정 국가부채 수준에 대한 기준이 정립된 바 없기 때문이다. 관련 연구들을 통해 살펴봐도, 학계의 의견이 일치되는 기준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부채가 작다고 하여, 더 늘여도 괜찮다는 식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국가부채를 더 용인하자는 식의 주장은 경기 침체가 심할수록, 정치가 대중영합적인 경향을 보일수록 더 강력히 제기되고는 한다. 

 

당장 1-2년의 결과가 더 중요한 정치인일수록, 단기적 실적을 위해 더 강력한 재정투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중장기 재정상황이나 국가경제의 안정성은 관심의 대상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국가경제나 나라재정은 몇 년 만 지속되고 말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기중심의 정책은 마땅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국가부채 확대를 통한 재정지출의 넉넉한 증가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국가부채의 확대에 대해 왜 보수적 접근이 필요한가?

첫째는 우리나라의 국가채무가 단기간에 급증해왔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통계의 시계열이 충분히 긴 ‘국가채무(D1)’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1997년 60조원 수준에 머물렀으나, 2016년에는 627조원으로 20년간 무려 10배 이상 증가해왔다. 문제는 이와 같은 추세가 향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급속히 진행되는 인구고령화의 영향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해외사례를 참고하면 국가부채는 인구고령화의 진행에 따라 급격히 증가되는 경향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인구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이므로, 가만히 두어도 국가부채는 빠르게 증가하게 될 것이다. 느슨히 관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인구고령화 시대에 국가부채 누증은 재정건전성의 심각한 위험요인

 

둘째로 국가부채는 재정건전성에 심각한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국가부채의 존재는 부채로 인한 이자가 고정지출화 된다는 측면에서 재정건전성 유지에 매우 치명적이다. 고정된 이자 지출은 그 자체로도 재정에 심각한 부담이지만, 국내외적 경기충격으로 이자율이 상승하는 경우 그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에 또 다른 재정위기와 국가부채 증가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재정건전성이라는 말은 사실, 일상적으로 거론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지만, 국가경제의 안정적 운영이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데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경제위기를 수월하게 극복해낸 국가들은 대부분 국가재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오던 나라들이었다. 급격히 진행되는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재정정책의 유효성이 확인된 것이다. 반면, 재정적자가 심각하여, 재정의 위기대응 능력이 낮았던 국가들은 매우 심각한 어려움을 경험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건전재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셋째로, 현재의 상황은 미래의 안정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관련 선행연구들에 따르면 국가부채의 안정적 유지는 재정위기의 발생가능성을 그만큼 낮출 수 있음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이러한 관계의 일반화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아일랜드와 스페인의 경우 국가채무가 안정적인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한 바 있다. 결국 현재 국가부채 수준이 안정적임을 이유로 한, 부채확대의 용인은 매우 위험한 견해인 것이다. 

 

국가부채 증가를 용인하는 정책방향은 바람직하지 않다

 

요컨대, 국가부채의 증가를 용인하는 정책방향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가 안정적이므로 증가시켜도 된다는 생각은 상식적으로도 매우 무책임한 발상이다. 단기적 실적에 관심을 두는 정치의 속성상, 보다 긴 장래를 내다보며 운영해야하는 국가재정의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부채란 본디 생각처럼 쉽게 통제가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 

 

이는 세계 각국의 국가부채가 대체로 단조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보더라도 그렇다. 수많은 국가들에서 강력한 재정준칙 등을 도입해가면서 재정건전화와 국가부채 축소를 도모하지만, 실제로 이에 성공한 국가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예외 없이 집권기간 내에 균형재정 달성을 약속하지만, 요즘은 그나마도 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그만큼 재정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학습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토록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를 너무 쉽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ifs POST>

 

32
  • 기사입력 2018년06월11일 17시30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