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무의 행복한 로마 읽기] <47> 로마제국은 왜 멸망했을까? (서기 476)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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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망성쇠는 개인이든 국가든 거쳐야 할 과정이다. 천년제국 로마도 태동기, 고도성장기, 안정기를 거쳐 혼란의 시기가 있었고, 쇠망의 길을 걸었다. 철옹성 같은 로마제국이 왜 멸망했을까? 멸망의 요인은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므로, 어느 한 요인으로 진단하기는 어렵다.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로마제국의 쇠망 원인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한 제국의 천도, 기독교의 영향, 야만족의 침입, 지도자의 자질 저하” 등 크게 4가지로 지적한다. 

 

반면에 프리츠 하이켈하임은 『로마사』에서 로마의 멸망 요인을 부수적인 근인(近因)과 본질적 원인(遠因)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부수적인 근인으로 로마제국 말기에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과 야만족의 침공을 제시하고 있다. 우발적인 사건은 다음과 같다.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서기 180년에 갑자기 죽었고, 그를 계승한 콤모두스가 아버지의 원대한 게르만 정복 구도를 단행하지 않기로 했다. 

2. 황제 발렌스가 서기 378년 아드리아노플전투를 앞두고, 어리석게도 증원군을 기다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공격하여 전사했다. 

3. 테오데시우스 황제가 서기 395년에 어린 상속자 둘만 남겨두고 죽음으로써 제국을 항구적으로 분열시켰다. 

4. 야만족인 서고트족을 제압할 능력이 있었던 스틸리코가 서기 408년에 암살된 것과 같은 사건들이 하나로 작용하여 로마제국의 멸망을 초래했다. 

 

그리고 4~5세기에 발생한 야만족들의 끊임없는 침공은 제국을 해체시킨 진정한 원인이었다. 좀 더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원인들로 다음의 6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로마제국의 지리적 구조다. 

서방은 동방에 비해 길고 취약한 국경 지대를 갖고 있었다. 야만족들은 로마가 강할 때는 숨을 죽이고 있다가, 로마가 약해지면 라인 강과 도나우 강으로 이어지는 2,400킬로미터의 국경선을 수도 없이 침공해 들어왔다. 반면에 동방은 이집트에 안전한 국경 지대를 두고 있었고, 페르시아와 가끔 전쟁을 치르기도 했지만 문명국이었던지라 외교를 통해 관계를 조정할 수 있었다. 

둘째, 인력 부족을 들 수 있다. 

도시가 발달한 동방에 비해 인구가 훨씬 적으면서도 방어해야 할 영토는 더욱 넓었던 서방은 인력 부족 현상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서방은 갈수록 강력한 게르만족 군사 지도자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그들이 서방 자체를 장악했다. 

 

셋째, 경제적 취약성이다. 

제국 초기에는 제국의 번영이 정복 전쟁들을 통한 전리품 유입이 있어 경제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제국 후기에는 정복 전쟁으로 이익을 남길 만한 곳이 없었다. 야만족들은 가난했고, 사산조 페르시아는 너무 강했다. 더욱이 말기에 접어들면서 로마 경제는 기본적으로 저생산성의 침체에 빠져들었다. 

넷째, 고대 과학기술의 수준이 저급했다. 

기술 혁신이 없이 노동력에만 의존하는 농업은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노동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기계나 동력 장치의 개발이 없이 노동력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낮은 생산성의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 

 

다섯째, 불안정하고 부패한 정치 문화다. 

야만족의 침입이 빈번한 가운데서도 권력 찬탈을 위한 내전과 관리의 부패가 끊이지 않았다. 소중한 인력과 자원이 비생산적인 제위 쟁탈전에 소모되었고, 이러한 권력투쟁은 국경 지대를 방어해야 하는 국력을 약화시켰다.

여섯째, 고대 사회의 귀족적 가치관이다. 

고대의 귀족들은 기계를 만지거나 실질적인 직업을 하찮은 일로 여겼다. 생산을 위한 노동과 장사도 노예와 삯군처럼 천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여기고 가치를 두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노동을 좀 더 쉽게 만들거나 생산성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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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귀족들의 가치관은 공화정시대나 제정의 초기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살아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정 말기가 되면서 귀족들과 지도자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사라지면서 악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권력이 황제의 수중에 집중되면서 많은 귀족들이 한때 그들의 경력에서 핵심 내용이었던 공직을 포기하곤 했다. 대신에 그들은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시골에 대저택을 짓고 사적인 군대를 양성하면서, 자신의 안녕만을 생각하고 국가는 안중에도 없었다. 

귀족이 아닌 사람들은 안락한 삶을 위해 제국의 군대나 민간 정부의 고위직에 올라 재산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사회 지도층의 인식이 능력 이상의 짐을 지고 허덕이던 생산력 있는 중간층과 하층민을 약화시키고 애국심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요인은 어느 한 요인이 주도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기보다는 얽히고설켜 복합적으로 국력을 약화시켰고, 결국 서로마제국을 멸망시켰다. 반면에 동로마는 서로마와 비교할 때 국방력이 강하고, 인구가 많고, 경제력이 뒷받침되어 서로마가 사라진 뒤에도 약 1,000년간 더 지속되었다. 

역사가 랑케는 “유럽의 모든 고대사는 하나의 호수에 흘러 들어가는 흐름이 되어 로마사 속에 흐르고, 모든 근세사는 로마사로부터 다시 흘러나왔다”면서 로마제국은 멸망했지만 로마 역사의 영향력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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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05 17:51:00 최종수정 2018-09-05 15: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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