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변 경제학자’의 정책 체험기 <8> 삼성에 상용차를 허용할 것인가?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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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변 경제학자의 정책체험기’는 공직생활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해외유학과 산업연구원 부원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국제무역연구원 원장, 그리고 주OECD대사를 역임한 이경태 박사가 겪은 주요 경제정책 결정과 집행과정의 뒷얘기들을 담은 연재물이다. 주로 정부 경제정책의 수단과 방법을 연구해 제공한 탓에 본인 스스로 ‘관변 경제학자’라는 수식어를 사용했지만, 그만큼 정책 이면사(裏面史)를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정책당국자들에게도 많은 참고가 되리라 믿는다. 앞으로 20여회에 걸쳐 우리 경제발전의 주요 분수령이 된 정책과 사건의 자초지종은 물론 시사하는 바를 엮어나가고자 한다.<편집자> 

 

 상공부 차관, “상용차 생산 현장실사 후 보고서를 제출할 것”

 

1991년에 나는 상공부장관 자문관으로 파견 나가 있었다. 하루는 차관이 불러서 일거리를 주었다. 삼성의 상용차생산 허용 여부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데 현지실사를 나가서 현장을 둘러보고 보고서를 제출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무렵 삼성에서 상용차생산을 위해서 일본의 닛산으로부터 기술도입을 하겠다고 상공부에 인가신청을 하였다. 재벌에서 기존 기업과 경쟁을 하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하면 논란거리가 되기 십상인데 특히 상용차생산은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현대, 대우, 기아의 3사가 분할하고 있는 자동차시장에 삼성이라고 하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한다는 점, 삼성이 또 하나의 굵직한 문어발을 달려고 한다는 점 등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호재였다.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원칙적으로 찬성하거나 원론적으로 정부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독과점상태에 있는 국내 자동차시장의 구조를 더욱 경쟁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회이고 또 민간 기업이 자동차시장에 신규 진입하겠다는데 정부가 가타부타하는 것은 과도한 시장개입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반대 내지는 유보적 입장을 표명하였다. 협소한 국내시장에서 기존3사가 이미 과당경쟁을 벌여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데 추가적인 진입이 이루어지면 자동차산업 전체의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현대 대우 기아 등 기존 3사 모두 연산 30만대 규모에 미달

 

당시 자동차공장은 연산 30만대는 되어야 규모의 경제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어느 메이커도 이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수출을 늘려서 국내시장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수출경쟁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라도 국내시장에서의 일정규모 이상의 생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더 현실적으로 들렸다.

민감하고 정치적으로 휘발성이 강한 문제이니까 정부도 어느 쪽으로 결정을 내리든 부담을 느끼게 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 부담을 덜기 위해서 나에게 실사반의 책임을 맡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실사반에는 상공부의 자동차담당 직원2명과 자동차공업협회의 직원1명이 참여하였다. 우리는 부평, 울산, 광주등지에 있는 자동차3사의 공장을 방문해서 상용차 생산현장을 보면서 상용차의 경쟁력을 점검하고 애로사항 및 삼성의 진입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기로 하였다. 물론 출발 전에 자동차 특히 상용차에 대한 국내외현황자료를 학습하면서 예비지식을 쌓았다.

작업반이 맡은 일의 진행방향에 대해서 어떠한 사전 지침도 내려오지 않았다. 우리는 결론에 대해서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일주일 현장 실사 후 다양한 의견 정리

 

나는 출발 전에 반원들에게 행동의 주의사항을 강조하였다. 업계의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으니까 업체로부터 향응은 물론 식사대접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주입시켰다. 그러니 출장길이 힘들고 고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알고 출발해야 한다는 실정도 공유하였다.

약 일주일동안 현장을 둘러보면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나니까  몇 가지 사항이 명백해 졌다.

 

첫째, 상용차는 근본적으로 내수시장에서 주로 팔린다. 수출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선진국과의 경쟁력격차가 모든 면에서 매우 크다

 

둘째, 좁은 내수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므로 기존업체들은 당연히 신규진입에 대해서 극렬히 반대한다. 상용차의 국내수요가 빨리 늘어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신규업체가 들어오면 자기들의 국내시장을 빼앗아 간다는 피해의식이 강하다

 

기존 업체들 “우려” : ‘상용차 국산화 정책 후퇴’ ‘승용차 시장 진출’  

 

셋째, 기존업체들이 반대하는 명분으로써 강하게 내 세운 것은 상용차 국산화정책의 후퇴이다. 기존업체들은 그동안 정부의 국산화시책에 호응해서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부품의 해외조달을 줄이고 국산화노력을 경주해 왔는데 삼성은 기술제휴선인 닛산으로부터 부품을 거의 대부분 수입하여 조립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나는 질문하였다. 단순조립보다는 부품국산화율을 높인 기존업체들이 경쟁에서 더욱 유리하지 않느냐고? 그들은 부품국산화는 자체브랜드를 키우고 능동적인 경영전략을 강화해서 장기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만 단기적인 채산성만 생각하면 단순조립이 더욱 유리하다고 대답했다. 삼성이 들어오면 그들의 국산화노력이 지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는 나중에 자동차전문가에게 물어보았는데 기존업체들의 염려가 일리가 있다고 했다.

 

넷째, 기존업체들의 우려는 상용차시장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승용차시장에 대한 것이었다. 삼성의 상용차진입은 승용차진입의 전초전이라는 것이었다. 삼성이 기껏해야 국내시장에서 팔 수 밖에 없는 상용차생산을 위해서 비난을 무릅쓰고 뛰어들 리는 없고 결국은 세계시장을 겨냥하는 승용차생산에 뛰어 들 것이라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승용차를 생산하겠다고 나서면 국민여론의 향방이 어떻게 돌아갈지 불안하기 때문에 우선 상용차생산이라는 에드벌룬을 띄워서 여론을 탐색해 보려는 의도라고 했다. 

 

자동차 전문가들, “과당경쟁 등으로 산업전체 발전에 부정적 영향”

 

삼성이 승용차생산을 하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했더니 기존업체들은 내수시장의 한계와 과당경쟁, 국산화의욕의 감퇴 등의 이유 때문에 자동차산업전체의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넓고 넓은 수출시장을 놔두고 왜 좁은 국내시장 안에서의 경쟁만을 우려하느냐고 했더니, 그들은 “자동차는 속성상 국내시장에서 학습효과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면서 경쟁력을 키운 다음에 수출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했다. 다시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 보았더니 일리가 있다는 답변이었다. 

 

시장규모가 엄청나게 큰 미국에서도 자동차의 주요메이커는 3개정도이고 일본 역시 그러한데 한국처럼 조그만 시장에서는 이미 들어와 있는 기존3사도 과도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문하기를 미국은 처음부터 3사체제로 출발한 것이 아니고 많은 자동차회사들이 난립하여 경쟁하다가 인수합병을 통해서 과점체제로 들어선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고 했다.

 

삼성, “반도체의 삼성 저력, 상용차에서도 증명해보이겠다”

 

우리는 삼성의 의견도 들었다. 그들은 한국 상용차산업이 우물 안 개구리신세에서 정체되어 있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수출시장을 염두에 두고 사업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생산초기에는 부품국산화비율이 낮을 수밖에 없지만 협력업체들과의 네트워크구축을 통해서 빠른 시일 내에 수직적 분업체계를 완성하겠다고 했다. 반도체에서 삼성이 보여주고 있는 저력을 상용차에서도 증명해 보이겠다고 다짐하면서 승용차생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강하게 부정하지도 않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실사보고서: “신규진입 원칙적으로 허용, 경쟁촉진 필요 등 4개 항 정리 ”

 

우리는 실사를 마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의 요지는

첫째, 삼성의 상용차생산을 승용차생산과 연계시키지 말고 별개의 사안으로 검토한다.

둘째, 자동차산업에 대한 신규진입은 제한해야 할 이유가 분명한 때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셋째, 상용차의 경우 규모의 경제가 승용차만큼 분명하지 않다.

넷째, 국내 상용차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경쟁의 촉진이 필요하고 경쟁의 제한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고서를 제출하고 나서 얼마 후에 나더러 기자실에 가서 보고서 내용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이 왔다. 실사반의 보고서에 근거해서 삼성의 상용차진입을 허용하려고 하는데 민간인신분인 내가 먼저 언론에 띄우고 나면 공무원들이 정식으로 발표하는 수순이라고 짐작되었다. 나는 실사반의 보고서는 어디까지나 정부결정의 참고자료이므로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지는 정부가 결정할 일이라고 얘기하고 기자실발표를 하지 않았다. 얼마 후에 정부는 삼성의 상용차진입을 허용하기로 발표하였다. 

 

당시는 공업발전법이 시행되기 전이었다. 동법은 1995년에 시행되었는데 그 이전에 있던 개별공업육성법들을 폐지하고 통합해서 새로이 제정된 단일법이었다. 공업발전법에서는 신규진입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었지만 개별공업육성법에서는 기술도입이나 신규진입은 정부의 인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어서 삼성이 닛산으로부터 상용차기술도입을 위해서는 정부인가가 있어야 했던 것이다.  

 

삼성, 상용차는 물론 승용차도 생산…2000년에 상용차 파산, 승용차 르노에 매각

 

그 후 삼성은 상용차뿐만 아니라 승용차생산도 시작하였다. 그러나 상용차회사는 2000년에 파산하였고 승용차회사는 2000년에 르노에게 매각되었다. 당초의 의욕과는 달리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로 비약하지 못하였고 기존회사들을 위협할 정도로 경쟁력을 키워서 자동차산업의 생태계를 격상시키지도 못했다. 자동차보다 약간 앞서서 뛰어들은 메모리반도체에서 선진국의 내로라하는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세계1위의 기업으로 우뚝 선 쾌거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결과이었다.

기업의 승패는 시장경쟁을 통해서 판가름 나는 것일 뿐 공무원이나 학자, 전문가가 사전적으로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예상하더라도 그 예상이 적중할 지, 또는 빗나갈지의 여부는 역시 시장에서 최종적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다. 

 

1995년에 공업발전법을 제정해서 공업부분의 정책적 진입장벽을 없앤 것은 잘한 일이었다. 신규진입여부의 판단은 기업에 맡기고 그 성패의 판가름도 시장에 맡기자는 주장은 옳은 것이었다. 진입여부를 정부가 결정하는 제도 하에서는 신규진입에 대해서 기존기업이 기득권보호를 위해서 여러 가지 이유와 명분을 내걸고 반대하게 된다. 이는 시장경쟁의 효율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갈등과 대립을 야기하여 사회적비용을 발생시킨다.

 

“진입 제한 없애자”건의 옳았다고 판단…아직도 장벽 허물지 못해 부정적 효과 너무 많아

 

지금도 서비스산업에서 인위적 진입장벽이 많이 남아있다. 의료기관은 의사면허를 가진 자만이 개설할 수 있고 의사의 숫자를 국가가 관리하고 있는 것이 한 예이다. 의사 아닌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의사를 고용하는 것을 허용하면 의료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것이다.  약국도 약사면허를 가진 자만이 개설할 수 있다. 제도적으로 의사와 약사에게 독점을 허용하다 보니 의료산업의 발전과 국민편의제고를 위한 개선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자동차공유, 원격의료, 개인 및 공공정보 공유 등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서비스산업들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진입장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기득권자들이 여러 가지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반대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끌려 다니다가는 더 많은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당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ifs POST> 

 

<시리즈 순서>

1. 관치금융과 금융자율화

2. 중화학공업의 돈줄, 국민투자기금

3. 급진적 대외개방이냐?, 점진적 대외개방이냐?

4. 반도체산업은 민간주도로 꽃피었다

5. 개혁-개방초기의 중국을 가다

6. 대우조선을 파산시킬 것인가? 구제할 것인가?

7. 재벌의 업종전문화: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가 되었다 

8. 삼성에게 상용차생산을 허용할 것인가?

9. 첨단산업발전법 제정의 무산

10. 연구원노조는 과연 필요한가?

11. 한국의 에너지과소비의 원인을 규명하다

12. IMF 금융위기징후를 무시한 오만 

13. IMF 금융위기와 고금리정책

14. IMF 금융위기와 노동유연성

15. IMF 금융위기와 수출금융문제

16. IMF 금융위기와 구조조정 시시비비

17. 한국은 개발도상국인가? OECD 논의

18. 미국과 유럽에 대한 OECD 경험

19. 한국을 둘로 쪼갠 한미 FTA 협상

20. 동아시아 경제통합은 공염불인가?

21. 서울 G-20 정상회의

22. 한국의 개발경험 전수: 에티오피아

23. 좋은 일자리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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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05 15:46:34 최종수정 2018-12-05 15: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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