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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hington Watch] 미국 사회에 비친 일본의 對韓 수출규제 분쟁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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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8월01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19년07월31일 15시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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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은 역사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사랑 없는 결혼’ 처럼 지낼 수 있어” 

일본이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핵심 재료의 對韓 수출 규제 방침을 밝힌 뒤, 한국 내에는 엄청난 반발과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 아베(安倍) 총리가 오사카 G20 정상회담에서 “자유롭고, 공정하고, 무차별적인” 자유무역 원칙을 강조하고 나서 이틀 만에 취한 조치다. 한국의 일부 극단적 인사들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무역에 의한 침략’ 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정작 일본 미디어들은 일제히 당초의 ‘금수(禁輸)’, ‘징용(徵用) 근로자 판결에 대한 대항’ 등 자극적인 표현을 자제하고 있다.

 

오히려, ‘수출 관리 절차 및 운용의 수정’에 불과하다는 언사를 써가며 WTO 규정의 위배도 아니고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라는 방어적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일본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對韓 수출 절차를 규제하는 것은 WTO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며 즉각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위중한 상황에서, 양국 공동의 우방국인 미국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인식 방향과 행동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대단히 긴요할 것이다. 아래에, 아시아 지역에 새로운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 일본의 일방적인 對韓 수출 규제가 촉발한 무역 분쟁에 대한 미국 내의 다양한 견해 및 동향을 살펴본다.         

 

“日, 국가 안보를 내세우나 본질은 帝國主義 시절의 추악한 殘影”


미국의 입장에서는 동북 아시아의 두 핵심 우방국들 간에 새로운 긴장이 조성되고 있는 것은 대단히 우려할 만한 사안이다. 분쟁의 발단은 일본이 지난 딜 4일 한국의 하이테크 제품 생산에 필수 불가결한 3 가지 핵심 자재 수출을 전격적으로 제한하면서 시작됐고, 이후 양국은 험악한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 일본이 이러한 수출 규제 조치를 꺼낸 직접적인 원인은 최근 한국 법원이 일제 강점기의 강제 징용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배상 책임을 지우는 판결이다. 이에 대해, 일본은 1965년 韓日 국교정상화 협정 체결로 이런 문제들은 이미 금전적으로 일단락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일본 측의 주장에 대해 민간 개인들의 피해에 대한 청구권은 1965년 협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다는 인식이다. 

 

한편, 日 아베(安倍) 총리는 일본이 2차 대전 중에 저지른 과오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자세로 일관해 왔다. 그는 한국이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겨왔고, 한국과 중국이 2차 대전 전범들이 봉안된 신사(神社)에 공물(供物)을 바치는 것에 항의하면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 저지른 과오를 뉘우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을 주어 계속 문제를 일으켜 왔다.

 

美 외교 전문 Foreign Policy誌는 프랑스 IFRI(French Institute for International Relations) 빠종(Céline Pajon)씨를 인용하여, 일본은 ‘한국 피로감(Korea fatigue)’을 느끼고 있고, 일본은 한국이 역사 문제들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한다. 아울러, 한국이 지금 중국에 가까이 가고 있고, 미국 및 일본과의 동맹 관계에 덜 의존하려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한다.

 

따라서, 동 Foreign Policy誌는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일본의 반도체 자재 수출 규제의 근원은 전적으로 2차 대전 당시 역사적 사실들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고 평한다. 특히,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강제 징용 등 만행에 대한 분노, 그리고, 아직도 일본이 이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있다고 믿는 데 기인한다고 평했다.

 

韓 日 무역 분쟁은 세계 메모리 칩 공급 체인에 문제를 야기할 것


한편, 미국 사회가 이번 일본의 반도체 자재 對韓 수출 규제 분쟁 사태에 우려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글로벌 첨단 기술 제품 공급 체인에 미칠 심각한 충격이다. 韓日 무역 분쟁이 불거진 뒤 美 CNN 방송은 일본의 반도체 생산 소재 수출 규제 조치로, 한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생산 기업인 삼성 및 SK Hynix 등이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이고, 이로 인해 전체 한국 경제에 심대한 타격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나아가, 글로벌 첨단기술 제품 공급망에도 차질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각종 관련 통계를 통해 알려지는 바로는, 한국은 반도체 칩 생산에 필수 재료인 플루오린 Polyamides(PI)는 85%, Photoresists(PR)는 93%, Hydrogen Fluoride(HF)는 42%를 일본에서 조달해 왔다. 반면, 일본의 이들 품목 총수출에서 對韓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1%, 11%, 89% 정도로 그리 크지 않은 수준이다. 일본의 전 세계 생산에서 비중은 PI 및 PR은 90%, HF는 70%를 차지한다. 한편, 한국 반도체 칩 제조 기업들은 글로벌 메모리 칩 시장 점유율이 63%에 달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당분간은 현재 보유한 재고를 소진하면서 생산을 계속할 수 있어 경제적 타격이 심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만일, 수 개월 이상 규제를 계속해서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거나 더욱 험악해지기라도 하면 양국의 쌍무적 경제 관계는 심대한 타격을 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럴 경우에는, 지금 막 글로벌 시장에 출시가 임박해 있는 5G 휴대폰 기술을 비롯하여 첨단 기술型 전자 제품의 글로벌 생산 및 공급 체계는 타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일본은 이들 3 가지 핵심 화학 물질의 對韓 수출에 제한 조치를 취한 것은, 국가 안보 상의 이유에 근거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일본 관리들은 한국이 이들 화학 물질의 최종 소비자들에 대해 적절한 통제를 하지 않아 기술 분야 이외에 군사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심지어, 한국이 북한 측에 이들 핵심 화학 물질들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고 암시한다.

 

일본의 이런 주장에 대해, 앞에 소개한 프랑스 IFRI 연구소 빠종(Céline Pajon)씨는 “일본의 주장은, 비록 한국과 북한의 공모에 대해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으나, 대단히 중대한 사안” 이라고 말한다. 그는 “현재로서는 양국 관계가 대단히 우려된다. 특히, 미국이 중재할 의사가 없는 상황이어서 더욱 심각하다” 고 강조한다.

 

이대로 가면 양국의 무역 분쟁은 더욱 추악해질 가능성이 높아


韓 · 日 양국의 무역 분쟁이 격화 일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한국 국민들 사이에는 자발적인 일본 제품 배척 및 불매 운동마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머지않아 한국을 겨냥해서 더욱 강력한 규제 조치를 취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을 “White 國(수출 절차 우대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Goldman Sachs의 예상을 인용하여, 이 조치가 발효되면 일본이 한국으로 수출하는 1,120개 전략 물자 중에 민감한 품목이 아닌 857개 품목이 개별 수출 허가를 취득해야 하는 등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에, 일본 측은, 비록 영향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한국에서 수입하는 상품의 97%가 어떤 형태로든지 다소 간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소개한 Foreign Policy誌는 한국과 일본이 실용주의에 입각해서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졌다고 전했다. 최근 日 미디어들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발적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이 日 기업들에 타격을 주는 현실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일본의 對韓 수출 규제가 日 기업들에 역풍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전한다.

 

이렇게 상황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향후 韓日 무역 분쟁은 일단 무역 관련 국제기구인 WTO의 場에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일차적으로 양국은 25일 열렸던 일반 총회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한국 측은, 일본이 강제 징용 문제를 둘러싼 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수출을 규제하는 것은 WTO 규정에 위반하는 것이라는 논지로 국제 여론戰을 펼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이번 수출 규제 조치는 역사 문제와 무관하게 국가 안보를 위한 국제 협약에 준거한 조치라고 맞섰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를 WTO에 정식 제소할 방침도 밝혔다. 그러나, WTO의 분쟁 조정 절차는 통상 1년 이상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양국 간 무역 분쟁은 예상보다 장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동안에 양국 간 충돌이 점차 광범하게 확대되면, 국가 안보를 빌미로 예외적 무역 규제를 남발하는 풍조가 만연하여 글로벌 교역 체계에 리스크를 높이게 될 것도 우려된다. 가뜩이나,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걸핏하면 국가 안보를 내세워 관세 부과를 감행해 온 상황에서 이제 일본마저 가세하면 글로벌 교역 체계에 심각한 충격이 우려된다.

 

美 Brookings 연구소 東아시아정책연구소(CEAPS)의 솔리스(Mireya Solis) 소장은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양국 간에 벌어지는 분쟁은 일본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한 전략 물자의 무역 관리 상의 분쟁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간의 강제 징용 근로자 보상 문제 등 식민 지배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는 양국 간 과거사들과 연계된 문제라서, 쉽사리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 이라고 전망한다.

 

트럼프 정부가 분쟁을 중재할 가능성은 낮아, 해결은 어려워질 것


美 워싱턴 포스트는 韓 日 양국이, 격화되는 무역 분쟁을 스스로 즉각적으로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UN 등 국제기구에 의한 조사 및 조정을 기대하고 있다고도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공통 동맹국인 미국 정부가 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두 주요 동맹국들이 벌이는 분쟁에 개입하려는 적극적 의지를 보이지 않아 사태는 예단을 불허하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한국 정부 외교 · 안보 고위 관리들은 미국을 방문, 美 정부 관리 및 기업 경영자들에게 이번에 일본이 취한 對韓 수출 규제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설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로 알려지는 것과 달리, 美 정부 관리들은 기본적으로 단지 관망하려는 중립적 자세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에 스틸웰(Stilwell) 국무부 亞·太 차관보 및 볼턴(Bolton) 안보 보좌관 등 외교 안보 라인의 고위 관료들이 양국을 순방하며 겉으로는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속마음으로는 중재 활동을 떠맡는 것을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인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일부 미디어는 양국을 순방했던 한 고위 관리가 양국의 분쟁에 관해 중재(仲裁)에 나설 의향이 없음을 확언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외신 보도로는 한국 측은 이미 미국 측에 일정한 중재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Reuter 통신 등 해외 미디어들은 한국 文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韓 日 간의 현안 문제를 중재해 줄 것을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양국이 모두 원한다면’ 중재에 나설 의향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한 전직 일본 외교 관료는 미국이 韓 日 분쟁에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가령, 미국이 캐나다 혹은 멕시코와 무역 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일본이 여기에 개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한편, 앞서 소개한 IFRI의 빠종(Pajon)씨는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 관리에 흥미를 느끼지 않고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평한다. 스미스(Sheila Smith) 美 CFR(Council of Foreign Relations) 연구원은 스틸웰(Stilwell) 차관보 등은 지금 상황에서 양측 입장을 듣는 것 외에 어떤 중재 역할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미국 정부에서 누가 나서서 양국을 이성적인 상황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양 당사국이 스스로 해결 방도를 모색하지 않는 한, 향후 韓 日 관계는 험로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블룸버그 “아베(Abe)는 쓸데없는 ‘自害的’ 분쟁을 그만둬야” 비난


오로지 경제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지금까지는 한국과 일본 간 무역 분쟁으로 인한 타격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재고 자재로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일본의 수출 규제가 몇 개월 정도 계속되는 경우에는 한국 생산 기업들은 대체(代替) 조달원을 물색하는 데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이미, 한국 및 일본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무역전쟁 여파로 중국을 생산 기지로 삼아온 것을 대체할 방도를 찾아 나서야 하는 형편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안보를 핑계로 무역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일상화하고 있다. 그가 자신을 흉내 내고 있는 아베(安倍) 총리의 행동을 시비할 명분과 여지는 거의 없다.

     

최근, 블룸버그 통신은 일본 정치 지도자들은 정치적 분쟁에 경제적 무기를 대입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일본은 자신들의 수출 규제가 첨단기술이 북한으로 불법 이전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누가 보아도 이번 조치는 한국 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더 이상 ‘自害的’ 타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이 우선 수출 규제를 풀고, 한국이 강제 징용 문제를 조정할 것에 동의하는 방식으로 타협을 모색할 것을 권고한다.

 

최근 英 The Economist誌도 日 아베(安倍) 정권의 對韓 수출 규제 조치를 강력한 어조로 비판하는 기사를 보도했었다. 동 誌는 일본이 2011년에 중국이 일본에 대해 희토류(稀土類) 수출 규제를 발표할 당시 겪었던 고통을 감안하면 이번 對韓 수출 규제 조치는 경제적 관점에서도 근시안적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지정학적 시각에서도 일본의 ‘自虐的(self-harm)’인 조치는 더욱 무모한 것이라고 경고했다.

 

많은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가 국내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 안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무역 규제 조치를 자행하고 있는 것은 무역 수단 남용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라고 평가하며, 과거 수 십년 간 세계 각국이 무역 장벽 완화를 위해 기울여 온 많은 노력을 한순간에 허물어 버리는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과 일본은 ‘사랑 없는 결혼’ 처럼 동맹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


Foreign Policy誌는, 비록 현 상황이 1965년 韓 日 국교정상화 이후 가장 악화된 상황이라고 해도, 韓 日 양국 어느 쪽에도 이익이 되지 않는 현 상황을 계속 이끌어갈 이유가 없다고 진단한다. 현재, 지역 패권을 노리는 중국이나 東아시아 지역 안정을 위협하는 북한 비핵화 등, 양국이 당면한 東아시아 지역의 엄중한 국제 정세를 감안하면, 오히려 공동의 敵을 향해 공동 대응을 모색할 때라고 말한다.

 

일본이나 한국 입장에서 보면, 많은 역사 문제들은 모두 중대한 사안임에는 틀림없으나 양국은 글로벌 공급자로서 위상도 이제 각각 세계 4위, 7위를 넘보는 경제 규모이고, 이러한 성과는 두 나라가 긴밀한 경제적 유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호 보완 역할을 넓혀 오는 동안에 이루어 온 것들이다. 그리고, 최근 불거진 몇 가지 사안들은 결코 양국의 근본 관계를 위협할 만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양국은, 무엇보다도 마지막 남아있는 상처인 지난 날의 역사 문제를 그들 나름대로 진행하는 궤도에 따로 남겨두어, 긴밀하고 건강하게 구축해 온 본류의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할 필요가 없다. 양국은 그런 문제만 벗어난다면 훨씬 긴밀한 관계를 증진해 갈 수 있다는 기대도 크다. 나아가, 양국은 올바른 관점에서 역사 문제만 해결한다면 東아시아 지역에서 발호(跋扈)하는 위해(危害)한 전체주의에 맞서서 공동 대응하는 새로운 시대로 들어갈 관석(罐石)을 놓는 것이 될 것이다.

 

흥미 있는 비유로, Foreign Policy誌는 최근 게재한 기사(제목; “Japan and South Korea don’t have to love each other to be allies”)에서 지금 양국 간에 벌어지는 사태를 ‘애정에 빠져서 만난 것이 아니라, 서로 편의(便宜)를 위해 결혼한 커플’에 비유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동맹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사랑할 필요는 없다며 가장 현실적 대안은, 두 나라가 역사 문제들은 아직 한(恨)이 남아있는 채로 묶어 두고, 최소한 경제 분야에서는 견실한 관계를 복원할 것을 제안했다.

 

앞서 소개한 Brookings 연구소 솔리스(Solis) 소장도 “한국과 일본은 1965년 국교 관계 정상화 이후, 수 많은 과거 역사 문제를 겪으면서도 대체로 선린(善隣) 우방(友邦)이라는 외형을 해지치 않는 방법으로 상호 교류를 유지해 왔다고 평가했다. 어쩌면 다행인 것은, 경제적 협력, 지정학적 연대, 군사적 유대 측면에서는 어느 일방도 스스로 심대한 타격을 각오하지 않고는 상호 연계를 해칠 수 없는 관계까지 발전해 온 것이 현실이다. 그는 이번에 불거진 과거사 문제와 연계된 무역 분쟁은 “양국 간에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는 그 뒤로 역사적 치욕을 극복하려고 무슨 노력을 해왔나?


우리가 처해 있는 딱한 사정을 바라보는 남들의 입장을 전하다 보니, 불현듯 미천(微賤)하나마 필자 자신의 단상(斷想)을 몇 구절 덧붙여 보자는 충동을 느낀다. 우선, 지금에 와서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나, 韓 日 간에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잦아들지 않는 것은 1965년 당시 군사 정권이 ‘對日請求權자금’ 이라는, 성격도 모호한 ‘지원금’을 받고 서둘러 국교 정상화를 이뤘던 것이 화근이다.

 

굳이 치자면 당시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법도 하나, 그로부터 5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겉으로는 동맹(同盟)입네, 우방(友邦)입네 상칭(相稱)하면서도 속내는 ‘반일(反日) · 혐한(嫌韓)’ 사상이 바탕에 짙게 깔려 있어 ‘진심의 교류’가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번 일본의 對韓 수출 규제 사태도 양국이 안고 있는 저간의 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일 뿐이다.

 

그럼에도, 전문 식자들은 모름지기 한 나라의 외교력이란 그 나라의 경제력 및 군사력이 결정짓게 되고, 국가 간 협상에서 ‘公正’ · ‘正義’ 란 바로 당사국 간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들 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일본과 역사 문제에 어떤 합의를 이루어 낸다 한들 그 결과는 이미 누차 있었던 것들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임은 쉽게 짐작이 된다. 우리가 그토록 되찾고자 하는 ‘民族 正氣’도 힘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별 소용이 없는 것이 엄혹한 현실이다.

 

1970년대 말 중국이 ‘개혁 · 개방’을 결단할 때 덩샤오핑(鄧小平)이 남긴 유훈이 바로 ‘도광양회(韜光養晦)’ 정신을 꼭 간직하라는 것이었다. 지난 날 서방 문명에 압제 당했던 ‘中華 民族’의 수치를 만회하고 ‘中華’ 중심의 大同 사회를 이뤄 글로벌 패권을 탈환하기 위해 ‘절치부심’ 하라는 것이다. 지금의 美 中 무역전쟁도 실은 현 중국 지도부가 이 ‘유훈’을 서둘러 해제한 것이 탈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우리는 때마다 일제 통치 36년의 치욕을 말하나, 1965년 그런 치욕을 안겨줬던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한 이후, 그들이 저지른 죄상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받아 내기 위해 무슨 ‘도광(韜光)’을 해왔고, 또 어떻게 ‘양회(養晦)’를 해왔는지 처절하게 반성해 봐야 할 일이다. 지금, 일본이 우리의 약점을 골라 터무니없이 퍼붓는 공격을 당하면서, 이제라도 우리는 순박한 고함이나 감성적인 저항을 넘어서서, 이를 슬기롭게 극복(克服)할 방도를 이런 관점에 서서 찾아보아야 할 게 아닌가 싶다. “인(人)마다 방촌(方寸)의 인(刃)을 회(懷)하고” 말이다. <ifs POST> 

  • 기사입력 2019년08월01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19년07월31일 15시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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