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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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先)동결 후(後)비핵화’의 가시밭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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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7월07일 18시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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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달라지면 사람들의 주목도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큰 논란이 되었던 문정인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의 ‘한미군사훈련 축소 가능성’ 발언도 갑작스레 튀어나온 뜬금없는 생각은 아니다. 문정인 특보는 연세대 교수시절부터 대북정책에서 핵동결과 한미군사훈련 축소를 교환하는 등 의 ‘과감한 빅딜’도 고려해야 함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다만 교수 신분으로서의 발언과 외교안보특보 신분으로서의 발언이 가지는 무게는 분명히 다르기에 문정인 특보의 이 같은 생각은 뒤늦게 큰 논란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봤을 때, 문정인 특보의 발언이 지금만큼의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건 여전하다. 문정인 특보의 ‘한미군사훈련’ 발언 이후 야 3당은 문정인 특보를 매섭게 비난했다.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심각한 위협을 끼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문정인 특보의 ‘선 미사일, 핵 동결을 위해 빅딜이 필요하다’는 발언 자체는 문재인 정부의 기본적인 외교 정책이기도 하고 93년 1차 핵 위기 때도 ‘팀스피리트 훈련 취소’ 등으로 실제 시행되었던 방법이기도 하다. 즉, 문정인 특보의 발언은 야 3당의 주장과는 다르게 현실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도 아니며 갑작스레 나온 뚱딴지같은 이야기도 아니라는 소리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도 6월 <워싱턴 포스트>, CBS, 로이터 통신 등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先(선)동결 후비핵화’의 정책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선동결’부분에서는 한미군사훈련 축소의 가능성도 내비쳤다.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미국의 외교협회(CFR)장 리처드 하스 또한 ‘先(선)동결론’을 주장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문정인 특보의 발언이 뜬금없는 주장은 아니라는 점에서 냉정하고 꼼꼼하게 새 정부의 ‘선동결 후비핵화’ 정책의 타당성과 이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환경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전략적 인내’의 전면적 실패

오바마 정부 동안 미국의 대북정책은 그 유명한 ‘전략적 인내’정책이었다. 북한이 먼저 비핵화 조치를 시작하지 않으면 그 어떤 대화에도 응하지 않겠다는 게 전략적 인내의 골자였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도 정권 극 초반에는 그나마 북한과의 대화의지가 있었다고 하지만, 전반적으로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에 갇혀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결단하지 않는 이상 어떠한 대화도 없다는 정책을 고수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러나 ‘전략적 인내’는 사실상 ‘방관’과 다름없었다. 서방세계가 대화의 조건으로서 ‘비핵화조치’라는 강력한 진입장벽을 스스로 설정해 놓은 점은 거꾸로 북한이 마음 놓고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미관계의 정상화 및 경제적 지원을 희생하더라도 북한으로서는 외부의 간섭 없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의 임기 말이 다가오면서 ‘인내’의 기간 동안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온 수준이 예상보다 높음을 깨달았다. 이는 곧 더 이상 ‘인내’할 수만은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작년 9월 북핵문제와 연관이 깊은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이 미국의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의 견해를 인용하며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는 건 이미 늦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핵무기 추가생산 금지, 성능향상 금지, 기술 이전 금지에 초점을 맞추어 협상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한 건 달라진 대북정책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장 또한 작년에 9월 18일 한반도문제와 관련하여 내놓은 특별보고서에서 ‘중국을 레버리지로 활용하여 우선적으로 북한의 핵동결을 이끌어내고 비핵화는 장기과제로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분위기는 한미양국에서 모두 ‘선동결 후비핵화’론이 ‘전략적 인내’에 대한 대안으로서 새로운 대북정책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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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출발, 과거에의 성찰로 답을 찾자

최근의 국제정세가 북핵문제 해결이 굉장히 어려워질 것임을 예고하는 건 사실이다. 당장 이번 달 북한은 ICBM의 발사 성공을 주장하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정밀도 증가를 위해 몇 년 간의 기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ICBM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그간의 북핵문제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미국 내에서도 새로운 외교정책에 상당한 불협화음이 존재한다. 트럼프 정부는 ‘최대의 압박과 최대의 관여’대북 정책을 내세우지만 아직까지 ‘압박’을 넘어선 ‘관여’ 정책을 실질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선동결’론에 대해서도 고려해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비둘기파와 북한의 불법적 핵, 미사일 개발의 포기에 대가를 제시할 수는 없다는 매파의 갈등이 존재한다. 

 

중국의 속내도 오묘하다. 4월 미중정상회담 이후 미중관계가 좋아졌고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훼손까지 무릅쓰며 핵개발에 강한 압력을 가했다. 북한이 4월 중 핵실험을 실시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 대북제재의 결과가 나오는 듯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 대신 미사일을 연이어 시험 발사하자 중국과 미국의 온도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중국은 자국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미사일 발사에는 지지부진하게 대응했고 반대로 미국은 본토가 타격 받을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더욱 조급해지고 있다.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까지 높아지며 아시아에서의 미중관계는 빠르게 틀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는 북핵문제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만 한다. 다행인 점은 문재인 정부가 복기를 통해 과거로부터 개선할 점을 찾아내는 것에 능숙하다는 점이다. 지금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복기는 93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있었던 북핵위기 해결과정에 대한 복기이다. 

 

자세한 전개과정은 복잡하지만, 결론적으로 당시 최악의 북핵위기는 거꾸로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끌면서 북한의 경제를 개방시킬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93년 1차 핵위기 때는 김영삼 정부가, 2차 핵위기 때는 부시 정부가 비핵화로 가는 정책의 일관성을 관철하지 못했고 김일성의 죽음, 연평해전 등 급작스러운 일과 북한의 지속적 도발이 겹치면서 취약했던 제네바 합의는 완전히 폐기되었다. 

 

2017년 북핵위기는 20여 년 전의 북핵위기보다 훨씬 심화되었다. 20여 년 전의 북핵위기가 핵개발 시작단계의 위기였다면, 지금은 핵개발 마지막 단계의 위기이다. 어쩌면 정권 초기 강력한 모멘텀이 있는 지금 시기가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완료하기 전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선동결 후비핵화’론의 가시밭길

돌아와서 ‘선동결 후비핵화’는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하는 길을 제시한다. 현실적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 완료가 코앞에 있는 지금, 북한에게 개발을 완료할 인센티브는 상당히 크다. 따라서 현 상태에서는 더 이상 북핵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는 ‘현상유지’ 내지 ‘동결’을 위한 빅딜이 필요하다. 말로만 공허하게 ‘전면적 비핵화’를 외치며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제재와 관여를 적절하게 취하며 북핵위기를 풀어나가야 한다. 

 

국내정치적 반발, 언제 변할지 모르는 국제관계의 변수들은 한국의 ‘선동결 후비핵화’론이 앞으로 수많은 가시밭길을 걷게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북한의 갈수록 심해지는 미사일 도발도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는 원칙에 맞는 군사적 대응을 하면서도 주도권을 갖고 ‘선동결 후비핵화’론을 위해 대화정책, ‘빅딜’을 꾸준히 제시하는 모습을 보이며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가고 있다. 

 

불확실성이 판치는 국제무대이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의 일관된 외교정책이 강력하게 관철될 때 한 단계의 도약이 이루어진다. 북핵위기 해결과 통일이라는 목표로 가는 구체적 ‘전술’은 바뀔 수 있어도, 국가적 차원의 ‘전략’은 항상 일관성 있게 관철되어야 한다. ‘선동결 후비핵화’ 전략의 앞날은 가시밭길이지만, 새 정부가 복기를 통해 준비한 외교적 자산을 활용해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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