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무계원의 푸른 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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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8월04일 16시45분
  • 최종수정 2017년08월04일 14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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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명한 하늘의 색이 짙어지는 7시 무렵, 시원한 바람이 귀를 간질인다. 은은한 나무 내음이 풍기는 처마 밑에 한 둘씩 사람들이 모인다. 발밑에서 바지락거리는 자갈 소리를 리듬 삼아 익숙한 노래가 들려온다. 달콤한 시어들이 멜로디를 입고 귓가에 나풀거리자 절로 박수가 얹어진다. “힘이 들 땐 하늘을 봐/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 /비가와도 모진 바람 불어도…”

 

 일상의 갑갑함을 벗어던지고 인생을 노래하며 여유를 풍미하는 곳.  여기는 무계원이다. 

 

값비싼 영혼의 가치

 무계원의 밤을 더욱 푸르게 만들어줄 오늘의 연사는 정호승 시인이다. 말끝마다 음을 길게 늘이는 그만의 어투로 청중에게 물어본다. “우리는 무엇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살고 있습니까?”

 “시인이라고 돈을 싫어할까요? 시인에 대한 결정적인 오해죠.” 시인의 솔직함에 관객들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이제는 다소 진지한 목소리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학습됩니다. 생존에 필수조건인 재화를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죠. 하지만 우리는 돈만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돈도 중요하지만 돈이 제 값의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 위에 또 다른 가치가 얹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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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강연하는 정호승 시인.

 

 또 다른 가치란 무엇일까. 시인은 군에서 갓 휴가를 나왔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무 살의 젊은 정호승은 집안 어르신이 던지다시피 주었던 만 원을 받았다. 맛있는 것을 사먹어도 어찌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더라. 반면 문학의 꿈을 키워주신 은사님을 방문하자 은사님 당신은 문예 잡지를 손에 쥐어주시며 “군에서도 문학에 대한 꿈을 접지 말라”고 하셨다. 군으로 돌아가는 길에 꺼내들은 잡지 속에도 만 원이 들어있었다. 

 은사님의 사랑이 담긴 만 원, 아니 만 원에 담긴 사랑에 시인은 눈물을 훔쳤다. 값이 같은 만원인데도 은사님이 주신 만 원은 집안어르신이 퉁명스럽게 건넨 만 원보다 소중했다. 

돈 위에 더해진 가치. 돈의 무게를 다르게 했던 그 영혼의 가치가 달랐기 때문이리라.   

 

지구라는 작은 별 속 여행자들에게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찾아 그 먼 길을 헤매고 있는 건가. 정호승 시인은 한 시를 읊어준다.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때로는 그 길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설산일수도, 어떤 장애물이 나타날지 모르는 오지일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탐험한다. 인생의 진정한 성공은 타인의 마음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지구의 수많은 마음 여행자들에게 전하는 조언은 ‘모성애’이다. 현대인들의 많은 사랑은 상대적이다. 불공평한 관계 속에서 늘 사랑의 많고 적음을 계산하고 탓하기 바쁘다. 그에 비해 모성애는 너무나도 강렬하다. 사소한 조건 하나 따지지 않고, 조그마한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 “강렬한 사랑은 판단하지 않는다.”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말씀처럼 타인을 조건 없이 사랑하면 타인의 마음을 여행하는 길이 보다 편안해질 것이다. 

 

강렬한 사랑, 용서 

  지붕 위 밤하늘 색이 깊이를 더해가면서 대화는 더 무르익는다. 강렬한 사랑과 비슷한 맥락으로 ‘용서’를 곱씹어본다. <탕자의 귀환> 그림이 스크린에 뜨자 이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집안의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 차림새로 돌아온 작은 아들에게 아버지는 “아들이 다시 살아 돌아왔지 않느냐”라며 용서를 한다. 

 용서라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정호승 시인도 고인을 향해 용서하지 못한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긴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인생이 쉽지 않은 것이라며, “내가 한 가지를 용서하면, 내가 용서받아야 할 10가지가 용서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을 권했다. 마지막으로 관계에 있어서 “상대방이 사랑을 선택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을 선택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며 시를 낭송했다.

 

천년 바람 사이로

고요히

폭설이 내릴 때

내가 폭설을 너무 힘껏 껴안아

내 팔이 뚝뚝 부러졌을 뿐

부러져도 그대로 아름다울 뿐

아직

단 한번도 폭설에게

상처받은 적 없다

‘설해목’은 나무가 폭설에 해를 입었다는 뜻. 시인은 나무는 폭설을 사랑하다 스스로를 희생한 것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인은 청중에게 묻는다. ‘제목의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시의 내용의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시에 노래를 입히다.

 시인의 강연이 끝나자 다시 서율이 무대에 올랐다. 서율. ‘글에 운율을 붙여 노래한다’는 뜻의 이 밴드는 활동한지 어연 10년이 되어간다. 서로 눈빛으로 주고받는 신호 속에서 합을 맞추어 연주한다. 정호승 시인의 시구가 멜로디 안에서 춤추자 시인이 했던 말씀이 더욱 가슴 속에 스며드는 것만 같다. 이후 익숙한 노래가 들리자 청중들이 조그맣게 따라 부르는 목소리가 더해진다. 그들이 청중에게 마지막으로 선사하는 곡은 제주도 푸른 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노래를 듣고 나니 정말 여행이라도 온 것만 같다. 모든 것 훌훌 버리고 무계원 그 별 아래  우리는 낭만 가득한 밤공기를 한껏 들여 마셔본다.  시와 노래와 하늘과 바람이 맞닿은 이 곳, 무계원의 푸른 밤이 깊어간다. 

 

※이 글은 5월 30일자 조선토크 강연에 대한 르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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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7년08월04일 14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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