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선거법 개정 없이 적폐 청산 없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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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8월04일 16시43분
  • 최종수정 2017년08월04일 18시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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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바짝 앞으로 다가왔다. 촛불 정부의 출범 이후 처음으로 맞는 선거이기에 그 과정과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나 탄핵과 촛불 국면에서 쏟아진 국민들의 목소리는 대의민주주의의 실패를 강력히 규탄했다는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과거의 구태정치와 결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유권자의 정치적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는 현행 공직선거법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더구나 이것이 국회의 이기적인 담합에 의해 무산된다면, 이로 인해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제대로 대표되지 않는다면, 촛불이 실현되는 사회는 기대할 수 없다. 오랜 기간 동안 시민단체, 학계의 지적을 받아온 현행 공직선거법은 개정 논의가 지지부진했고,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난제와 같았다. 절호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현행 공직선거법, 무엇이 문제인가?

 

2017년 5월 9일 대통령선거를 앞둔 4월 15일, ‘사드(THAAD)' 배치에 찬성하는 정치인들(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대선 후보)을 비판하고자 이들의 사진과 “평화 가고 사드 오라?”라는 문구를 담은 인쇄물을 광화문광장 바닥에 부착하고 있는 사람들이 연행되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용산참사 유가족 등은 용산참사 당시 서울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 후보의 출마(지역구)에 반대하여 이를 규탄하는 피켓, 인쇄물을 사용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이들은 인쇄물 배포, 현수막 게시, 확성장치 사용, 집회 개최 등의 행위가 선거법에 저촉되어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위의 예시들과 같이, 국가가 선거법을 통해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범위가 방대할뿐더러 세부 조항이 지나치게 세세하여 유권자의 정치적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촘촘한 선거법의 거미줄을 통과하다 보면, 유권자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제도적인 강압에 의해 유권자의 권리는 삭제되는 꼴이다. 

선거일 180일 전부터, 후보자와 선거 캠페인 참여자가 아닌 일반 유권자는 후보자나 정당에 대한 의견, 선호를 표현하는 광고, 벽보, 사진, 인쇄물, 현수막, 피켓 등을 공개적으로 부착, 게시할 수 없다. 

 

심지어 후보자나 정당의 명칭이 들어간 소품을 옷에 붙이기만 해도 선관위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이는 공정한 선거 관리를 위해 규정된 규칙들이다. 기존 정치 제도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정당 간의 불평등한 위계를 고착화시키기 때문에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이를 제한하고자 만들어졌다. 강력한 힘을 가진 거대 공룡 정당들이 돈과 머릿수를 동원하여 선거 과정에서 소수 정당의 발언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합리적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공정성’에 방점을 찍다 보니 선거법은 시민의 자유를 제약하는 역효과를 야기했다. 공정과 자유의 가치가 충돌할 때, 긴장을 조정해야 할 의무를 가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절충점을 찾기보다 공정성을 과장하여 소수 의견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거법을 사용했다. 강력한 기득권 정당의 힘으로부터 소수 정당을 보호하여 공정한 선거를 담보하기 위한 선거법이 오히려 소수의 목소리조차 삭제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대변되는 후보자, 정당 사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기보다 심화시키는, 기득권 보호를 위한 기제로 작동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속적으로 선거법 개정을 촉구해왔지만, 여전히 개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거법 개정 앞에 놓여진 가시밭길

선관위 역시 현행 공직선거법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시민사회의 비판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5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선거운동 규제와 표현의 자유 : 공직선거법 쟁점과 개정 방향>에서 신광호 선관위 법제과장은 현행 선거법의 복잡하고 비현실적인 규제로 인해 선거의 자유가 위축, 침해된다는 비판을 인정하며, 유권자의 자유를 중점적으로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는 헌재가 인정한 민주주의의 존립 가치이기 때문에 국가기관으로서 이를 억누르는 것은 헌법 파괴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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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시민사회와 선관위의 노력만으로는 선거법 개정을 완성할 수 없다. 법안의 개정은 결국 국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회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작년 8월, 선관위는 선거운동의 자유, 유권자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국회에 공직선거법 개정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선관위의 개혁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개혁적 성향의 몇몇 의원을 제외하고는 선거법 개정에 국회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김영재 더불어민주당 안전행정수석전문위원의 말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 확대는 국회에 불리하기 때문에 이들은 철저한 “이기주의에 따라 행동하는 숨겨진 담합”을 하고 있다. 기존 선거법은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의 입장을 중점적으로 대변해왔기 때문에 국회는 유권자 표현의 자유를 증진시켜주는 선거법 개정에 소극적 반대 입장을 표하는 이기적 행태를 보인다. 또한 기득권 정당의 의원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착화 시켜주는 현행 선거법으로부터 이득을 누려왔기에 더더욱 그렇다. 이는 국민의 목소리를 대표해야 하는 국회의 책무를 방기한 것으로, 국회가 손익에 따라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이익집단에 불과함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선거법 개정 없이 적폐 청산 없다

일반 시민의 정치참여욕구가 폭발했던 지난겨울의 광화문 광장은 대의민주주의가 명백한 한계를 보였을 때, 우리 사회가 이를 어떻게 극복, 개선해야 할 지 논의하는 공론장이었다. 국민의 목소리를 정치 제도에 반영하는 선거는 대의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지만, 선거의 규칙을 규정하는 선거법이 불합리하고, 불평등하며,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형태로 존재한다면 적폐는 끊임없이 재생산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는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 “표현의 자유 신장”, "국민주권적 개헌 및 국민 참여 정치개혁“ 등 이 명시되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점에서 적폐를 재생산하는 구태정치의 표본이다. 이를 방관하고 있는 국회 또한 적폐 재생산의 책임자이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가 실제 국민의 삶에서 실현되려면,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일반 시민의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해 선거법을 개정하여 “국민 참여 정치개혁“이 이루어야 한다. 무르익고 있는 개헌 논의 속에서 시민사회, 학계, 정부, 그리고 국회 모두 책임감을 절실히 깨닫고, 선거법 개정을 공론화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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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7년08월04일 18시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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