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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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민들의 일상을 바꾸는 공공미술 <서울은 미술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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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9월01일 16시39분
  • 최종수정 2017년09월01일 17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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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은 시민의 삶을 위한 것“

 

 서울시는 문화도시 서울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우리의 시대와 서울의 지역적 특성에 맞는 공공미술 작품의 필요에 의해 2017년 「서울은 미술관」이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설계하였다. 그간 꾸준히 서울시 내에서는 공공미술에 대한 문제가 논의됐다. 단순히 경관을 아름답게 꾸미는 방면만 고려하여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때론 예술의 영역이 아닌 행정적인 복지로써 사무적인 프로젝트도 있었고, 민간의 시도 또한 그것이 공공미술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 사이 공공미술로 인한 적잖은 문제도 발생하였다. 주거지 미화 사업으로 주로 추진된 벽화 마을 조성은 가장 손쉽게 미술을 이용하면서 동네를 가꾸는 활동이었다. 예술가들이 가꿔놓은 마을의 벽은 젊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벽화마을은 어느새 명소가 되어 도시의 모습을 새롭게 바꾸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람이 몰려들자 주변의 환경은 급격하게 상업화되어갔다. 사생활을 침해하는 관광객들은 물론 치솟는 임대료에 터전을 잃고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생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는 2017년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로 공공미술을 좀 더 조심스럽고 전문적으로 접근해야한다는 반성적 성찰 하에 공공미술 정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부여하고자 한다. 

 

서울은 미술관의 약속

 2016년 11월 발표된 「서울은 미술관」의 약속은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반성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공공미술은 도시의 결점을 가리고 표면을 치장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문제를 찾아내고 개선한다.”, “공공미술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함께 변화한다. 가변적이고 일시적일지라도 지금 이시대의 의미와 가치를 담는다.” 이와 같은 약속들은 공공미술이 겉으로 보이는 것을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와 얽힌 문화, 사회, 경제적 현상들을 전부 통찰할 수 있는 창의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제시하는 대안으로 정책에 활용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서울은 미술관」의 정책방향은 ‘서울 시민의 일상’, ‘시대와 지역의 맥락’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는다. 일상이 되게끔 하지만 주민이 원하지 않는 일상의 변화는 없어야 할 것. 시대에 맞춰 지역을 변화 시키지만 기존의 맥락을 잃지 않는 것. 이 두 가지의 까다로운 문제에 직면하여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는 정책들이 이제 새로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공공미술의 주인은 시민이다.”, “공공미술은 시민의 삶을 위한 것이다.” 단순한 명제에서부터 다시금 시작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공공미술에서 시민의 참여의 중요성에 대해 분명히 하고 있다. 서울시가 발표한 2017년 서울은 미술관의 주요 프로젝트는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시민의 참여를 전제로 하고 있다. 시에서 조성한 공공미술을 평가하거나 감상하는 수동적인 입장에 머물렀던 시민들이 이제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만들고 팀을 만들어 프로젝트성 활동을 진행하는 도시의 예술가가 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시의 주도 하에 시민이 주인이 된다는 독특한 정책 방향성이 실제 실행된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민이 선정한 공공미술 작품

<시민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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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에 설치된 <시민의 목소리> (김승영 作)

 

 

공공미술 프로젝트 ‘오늘’은 서울광장에 시민들의 공모와 투표를 받아 선정된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는 작업이다. ‘오늘’ 프로젝트의 주제는 서울의 오늘이다. 구시청사를 배경으로 오늘날 서울이 전해야할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설치되는 것이다. 

 

제 1회 ‘오늘’ 프로젝트 작품은 6000여명의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해 51%의 지지로 최종선정 된 김승영 작가의 <시민의 목소리>이다. <시민의 목소리>는 1970~80년대에 사용되었던 오래된 오디오 스피커 모양을 청동으로 본떠 제작된 5.2m 높이의 조형물이다. 200여개의 스피커가 사면으로 높게 쌓아올려져 타워 형태를 이룬다. 스피커에서는 자연의 소리, 시민의 참여로 기록된 목소리 등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소리가 재생된다. 구시청사를 바라보는 면에는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다. 관람객이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면 <시민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배경 소리에 관람객의 목소리도 섞여든다. <시민의 목소리>를 관람하는 한 시민에게 작품에 대해 느낀 점을 묻자 “시청 앞의 광장에 전부 들리게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이 인상적이다.”라고 평했다. 이 작품이 3000여명의 찬성투표로 공모된 작품인 것을 알자 “시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며 “서울시에 있어서 상징적인 이 광장에 시민 투표로 선정된 작품을 세우겠다는 취지가 좋게 느껴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청동의 투박함이 선뜻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좀 더 예쁘게 들어서 화제성을 가진 작품이어야지 작품이 전하는 의미에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갖지 않겠나. 그렇지만 아무리 예쁜 조각상이라도 이 자리에 세울 것이면 꼭 서울광장와 관련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아쉬운 점을 말했다. <시민의 목소리>는 지난 7월 5일 제막식을 개최하고 전시된 지 두 달이 되어 가고 있지만 시민들의 뚜렷한 반응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예술작품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SNS에 게시하는 것이 일상이 된 지금 공공미술은 즉각적인 시민과의 교류가 가능해졌다. 인터뷰한 시민이 지적한 것처럼 화제성이 떨어진다면 시민의 관점을 대변하는 작품이라는 취지가 빛을 발하지 못할 수 있다. 시민의 투표로 공모작을 선정을 하는 만큼 ‘오늘’ 프로젝트의 작품에서 좀 더 많은 관심과 반응이 도출된다면 ‘오늘’ 프로젝트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로서의 의미가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서울대 52-2동 프로젝트

공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의 포인트  

 

 조형물 설치가 아닌 프로젝트성 작업들에는 좀 더 시민 참여자가 주도적인 입장이 되도록 하며, 다양한 주체들이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도록 하고 있다. 대학 협력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대학생과 지역 주민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시도 중이다. 서울시는 올해 4월부터 12월까지 서울시내 미술대학 수업과 연계한 대학생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교류하지 못했던 주민과 학생들이 예술로 함께 소통하고 학생들이 직접 지역 곳곳에 소외된 공간이나 지역의 문제를 찾아 공공미술을 통해 지역환경을 바꾸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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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52-2 기록방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공공미술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을까? 직접 동네의 문제점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기위해 서울대학교 52-2동 프로젝트 팀의 작업실을 찾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생들로 팀원이 이뤄진 52-2동 프로젝트는 서울대 근처 관악구 봉천동 인헌시장에 마련된 기록방을 거점으로 마을 주민과 다양한 교류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의 주요 작업은 기록방에 프로젝트와 봉천동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 기록방 한쪽 벽면에는 52-2동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처음 제기한 ‘공공미술’이라는 용어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팀원들이 동네를 알아가는 과정들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인헌 시장의 지도 위에 동네 거주자, 토박이들의 동네에 대한 코멘트와 일시적인 방문객들의 코멘트 지도가 각각 부착되어 있다. 거주자로서 지역의 역사를 직접 살아온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와 스쳐지나가듯 인상적인 면을 적어둔 방문객의 지도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처럼 대학생과 거주민들 간의 교류는 각자의 시각과 입장을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기록의 형식을 택한 것은 공공미술이 함부로 시민의 일상에 개입하는 것을 경계해야하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고민의 결과였다. 팀원들은 주민의 참여를 통해 작품을 만들어야하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강요할 수 없는 위치에 있어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기록방에 주민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기록방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여름 쉼터로 이용하게끔 하는 등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과 더불어 동네 곳곳에 프린트물과 부채를 배포하며 홍보에 힘쓰고 있다. 

 

 서울시가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대학생을 참여하도록 하는 정책에 대해서 박진희 씨(조소과)는 “학생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정책이다. 학부 과정에서는 공공미술이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볼 일이 없었고 작업해볼 일도 없었다. 그래서 서울시에서 이런 사업을 하면서 기존의 한국 미술 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게 만드는구나. 대학협력을 서울시에서 제안을 한다는 게 학교 안에 공공미술이라는 장르는 신중하게 다루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한편 정서희 씨(서양화과)는 “아직 공공미술이라는 장르 자체가 한국에 자리 잡힌 것 같지 않다. 주민들과 무형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맺는 것이 힘들다. 주민들의 참여가 저조한 것이 문제다. 주민들과 (예술을 통해) 소통을 하는 방식 자체도 여기서는 너무 낯선 것이다.”라며 학생의 입장에서 공공미술의 불모지인 작은 동네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데에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또한 공간 임대와 가이드라인의 부제 역시 현실적인 난관이었다. 불편한 점과 제약들도 많지만 그래도 이 모든 게 “익숙해지는 과정인 것 같다”고 박진희 씨는 말한다. “미술대학 학생들한테도 공공미술이라는 영역을 정책적이거나 활동적인 면, 개인작업의 측면에서 익숙해질 수 있는 과정인 것 같다.” 현장을 경험하면서 예술대학 학생들과 공공미술이라는 것에 대해 얘기를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미술계 내에 공공미술이 하나의 정립된 장르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미술을 통한 사회 문제 해결에 대해서 팀원들은 ‘단기적인’ 방식으로는 어렵다는 것이 공통된 관점이었다. 김지수 씨(조소과)는 “단기적으로 결과물을 기대하는 때는 이제 아닌 것 같다. 좀 더 문화적이거나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를 원한다면 1년 안에 결과물이 제출되는 공모전 보다는 좀 더 지속가능한 주민들과의 뜻 깊은 교류 방안이 발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정서희 씨는 “미술 자체로서는 정치적으로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술과 그 외부에서 진행 중인 사회를 바꿔보고자 하는 활동들, 이걸로 억지로 주민들을 끌어들여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닌 것 같다”며 일방향적이고, 주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시혜적 관점에서 시도되는 공공미술을 경계하였다. 주민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지 않는 한 공공미술 그 자체로 무언가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학생 입장에서 낯선 주민들과의 교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쉽지도 않고 그것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52-2호 프로젝트 팀이 기록방 프로젝트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믿음은 분명하다. “동네 분들에게 이런 공간(기록방)은 재봉틀이 돌아가는 공간으로 생각되고 있다. 신발 공장, 미싱 공장이 있던 곳. 기존에 마을에 대해서 경험했던 것이 확고한 상태인데 그것에 대한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는 것. 스테레오 타입의 공간에서 벗어난 유형의 공간에 와 있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시각적이든, 경험적이든 (일상이) 낯설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선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박진희 씨의 말에 따르면 기록방 프로젝트는 “기존에 알던 것을 깨트릴 수 있는 포인트”와 같은 것이다. 일상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가지는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52-2동 프로젝트는 프로젝트를 마치고 공공미술에 대한 실무서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텍스트북에서 만난 사례들과 현실의 괴리감과 그것에 부딪혀나가는 과정을 담아 학생들과 서울시와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이처럼 경험이 축적되고 이를 다음 단계로 전달해나가고 해결점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면 또 다른 형태의 대학가의 비전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사정에 맞는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학부, 대학원에서부터 현장에 맞부딪히고 스스로의 방법론을 정립해나가는 젊은 예술가들이 많아져야 한다.  학생들, 또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이런 기회를 주기 위해서 서울시는 대학 협력 프로젝트를 유지해나갈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프로젝트 참여 학생들과 소통을 통해 문제점을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다. 주민들이 느끼는 공공미술의 필요도에 대한 정보를 통해 지역 문제와의 연계성이 강화된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공공미술 분야 전문가가 행정업무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정책의 전문성을 보충해야 할 것이다. 

 

도시 곳곳에서,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모여 진행 중인 공공미술 프로젝트

공공미술에 대한 협의가 새롭게 시작되는 과정

 

 단순히 공공미술이 지역의 문제를 창의적이고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허울 좋은 방법’으로 쉽게 받아들여져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공공미술 정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지속성이다. 공공미술이 자리 잡고 주변의 환경에 개선되기까지, 또 한편으로는 문화적인 차원에서 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1~2년으로 성과를 재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각계각층의 시민이 참여하고, 경험자들을 늘리는 방식의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와 시도는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씨앗이 될 것이 분명하다. 시민들이 좀 더 공공미술로서 얻는 즐거움, 일상생활의 물리적 환경이 개선됨으로써 풍요로워지는 삶의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 지금부터 가까운 미래까지의 공공미술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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