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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호원의 폭행, 알 권리 침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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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12월22일 16시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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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증은 국민으로부터 온 권리”

 

국민의 알권리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주권자인 국민은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아는 것을 바탕으로 정부활동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9월 20일 한계레신문의 ‘대기업돈 288억 걷은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 센터장’이라는 제목의 보도로 시작됐다. 최순실이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하나 둘 밝혀지며, 권력형 비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주권자가 준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챙긴 정권의 만행을 알게 된 국민들은 촛불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다. 국민의 모든 힘이 알권리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의 역할은 ‘알권리’를 충족해주는 것이다. 이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언론 존립의 이유가 생긴다. 따라서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 그 부분은 당연히 꼬집어야 한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불만으로 자신의 알권리를 포기해선 안 된다. 시민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알권리를 지켜내야 한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때 한국 기자가 중국 경호원에게 폭행을 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기자증이 완장이냐’라던가 ‘대통령의 성과를 가린다’는 등의 비난을 쏟아내기도 한다. 자신의 알권리보다 국가의 성과가 가려질 것을 더 걱정하는 모습은 위험하다. 기자증은 국민으로부터 온 권리이다. 정부로부터 오는 정보 뿐 아니라, 정부를 견제하는 감시견이 전달하는 정보를 알고 싶은 국민이 그들을 대신해서 보낸 대리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러한 언론의 역할을 알기에 헌법 21조가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청와대와 국회 출입기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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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권리 보장을 위해 수행하는 기자가 업무수행 중 폭행을 당한 사실은 문제시 돼야하는 게 맞다. 언론자유에 대한 인식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언론자유지표에서 176위를 차지했다. 중국 순위 아래엔 두 나라 밖에 없었을 정도로 언론자유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지난 2015년에는 언론자유를 외쳤던 사회운동가 재판 때 재판장 밖에서 취재를 하던 여러 명의 외신기자들에 대한 폭력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폭행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회사 직원이 외부 기업에 의해 폭행당한 것에 대한 언론사의 불만표출은 당연하다. 상식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기자’라는 이유로 폭행이 정당화되는 현실, 그리고 자신의 알권리보다 국가의 위상을 걱정하는 현재의 모습은 위험하다.

 

동시에 언론도 이와 같은 여론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 각성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에 대한 보도 방향을 살펴보면, 언론이 과연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한중 정상회담의 가장 큰 이슈는 사드배치로 냉각된 한중양국관계를 새 정부에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있었다. 따라서 한중 경제무역협력에서 어떤 성과가 나올 수 있는가가 주요 쟁점이었고, 중국매체들 또한 이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한국 매체는 달랐다. 대통령 혼밥, 기자폭행,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무례, 베이징에 있던 리커창의 식사거부 등 의전논란에 집중 보도했다. 국제문제평론가 임상훈은 “한국 언론은 중국과 한국이 어떠한 입장 차이를 보였으며, 향후 한중관계가 어떻게 흐를 것인지에 대한 보도는 비교적 뒷전”이라 평가했다. 물론 의전논란 또한 국민이 알아야할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의제 설정을 잘 하지 못하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알권리를 꼭 언론을 통해서 충족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지금은 정보접근이 굉장히 쉬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언론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지금, 언론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게 찜찜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은 여전히 시민을 위한 봉사를 행해야만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의견 또는 사실을 전달할 창구가 많아졌다는 것은, 동시에 사실의 탈을 쓴 거짓이 존재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 그들이 한 일에 대한 브리핑을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할지라도, 이것의 진실 여부를 국민을 대신해 점검할 언론이 필요하다. 또 그 내면에 있는 더 깊은 사실을 파내거나, 정부는 전달하지 않았지만 국민이 알아야만 할 내용을 전달할 대상이 필요하다. 이게 바로 언론의 역할이다.

 

언론은 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신뢰를 계속해서 쌓아나가야 한다. 기사로 보여줘야 한다. 국민을 대신해 감시견의 역할을 하는 언론의 예리한 눈으로 진짜 문제를 꼬집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언론은 그들의 존재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국민들도 언론 자체가 아닌 언론의 ‘행위’에 대해 비판하는 자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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