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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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의식과 불통으로 뭉친 “사장님 나빠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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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1월09일 17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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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호의 똥폼 = 권위의식 

 

 사장님이 사무실에서 사람도 치고 사고도 쳤다. 장성한 닭은 서슬 퍼런 일본도와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에 꼬꼬댁하며 비명횡사했다. 한국미래기술 사장 양진호는 리벤지 포르노, 음란물로 수익을 올리는 웹하드 업체를 운영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높은 영업이익률은 플랫폼만 구축한 뒤 이름 모를 여성들의 육체를 유료로 공유한 결과였다. 양진호 사장은 전방위적 폭력을 행사하였음에도 사법체계에서 교묘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대신 양진호 사장이 남긴 똥폼을 잡은 사진이 그의 권위의식을 부각했다.

 

 양진호 사건을 보며 내가 만났던 사장님들을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월급쟁이로 사장-사원의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사장님들 = 권위의식과 불통

 

 수능이 끝나자마자 유명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했다. 학원가에 위치해서 그런가? 피자가 고속도로휴게소에서 파는 가락국수처럼 팔렸다. 피자집 운영과 어울리지 않는 우락부락한 사장님은 외제차를 몰았다. 어느 날 회식을 했다. 사장님이 직원들을 집에 데려다준다고 차에 태웠다. 평생 배달만 해온 형이 술에 취해 사장님께 "사장님 제가 운전하면 안 돼요?"라며 주정을 부렸다. 다음 날 형은 잘렸다. 형이 차에서 내리고 사장님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싸가지 없는 **" 왠지 어제 탔던 외제 차에서 형이 배달한 피자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20살 여름방학 때 충북 제천 청소년수련관에서 조교로 일했다. 승마체험을 시켜주는 곳이라서 말이랑 노는 게 일이었다. 직원들은 교장 선생님(=사장님)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다. 달콤한 휴식일 교장 선생님이 삽을 들고 따라오라고 했다. 커다란 옥수수 줄기를 주면서 수련관 옆 캠핑장에서 곳곳에 캄프로취를 하라고 했다. 캄프로취? 카쿠로치는 아는데 캄프로취? 내가 못 알아들어 "네?"라고 묻자 그는 옥수수 줄기를 빼앗고 버럭 화를 내며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인마“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물론 내가 눈치만 조금 빨랐으면 캐모플라쥐(Camouflage : 위장하다, 변장하다)를 캄프로치로 알아들었겠으나, 개떡을 던져주면 찰떡같이 받아먹을 능력이 없었다. 알고 보니 농지를 캠핑장으로 사용하다 신고를 받자 농지로 보이기 위해 옥수수 줄기를 곳곳에 세워 위장하라는 것이었다. 

 

 군대 다녀와선 학과 85학번 선배님이 운영하는 샤브샤브집에서 일을 했다. 사장님은 대학 시절 날리는 운동권이었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샤브샤브가 불티나게 팔리는 집이었다. 문제는 점심시간에만 잘되는 집이었다. 내가 샤브샤브를 손님에게 잘못 갖다 주거나 그러면 분명히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데도 어떻게든 그 화를 바닥까지 닿을 한숨에 날려 보내고 다시 샤부샤부를 내줬다. 내가 학과 후배라는 이점도 있었으리라. 한바탕 손님이 몰아닥치고 사장님과 나는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을 기울였다. 좋은 선배였고 특이한 사장님이었다. 

 

 내가 만난 사장님들은 대부분 예의를 중시하고 조직에서 권위를 앞세웠다. 또한, 직원들과 능수능란하게 소통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사장님의 인간적인 면을 감추기 위해 권위의식과 분노에 잡혀 사는 사람 같았다. 사장님의 머릿속에 있는 걸 직원들이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면 굉장히 언짢아하는 사람들 같았다. 보통 군대처럼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 사장과 직원과 원활한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수평적인 조직문화에서도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경우는 드물다. 조직은 수평적이어도 곳곳에 인정받지 못하는 권위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직, 수평이 아니라 실제 작동하는 소통문화이다. 수직적 체계에서도 원활한 비판이 가능한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블랑카와 표현의 자유

 

 “사장님 나빠요~” 십몇 년 전 이주노동자로 분한 블랑카는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풍자했다. 어눌한 말투로 “뭡니까 이게~”라고 직언하는 블랑카의 모습에서 한국 사회의 웃픈 현실이 드러났다. 코너가 인기를 끌자, 사장님들이 우리를 매도하지 말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블랑카의 조국인 스리랑카 노동자를 사장님들이 고용하지 않자, 대신 스리랑카 대사관이 코너의 수정 혹은 폐지를 요구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였다. 결국, 프로그램의 핵심인 “사장님 나빠요”에서 사장님은 사라지고 대대적 수정이 가해졌다. 코너는 힘을 잃고 사라졌다.

 

 코너의 폐지는 한 코미디언의 쇠락으로 이어졌다. 폐지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우리 사회를 보여줬다. 블랑카는 눈앞에 있는 현실을 비판했지만, 현실의 .반작용 때문에 사라졌다. 억압된 표현의 자유는 일방적인 폭행의 자유로 이어졌다. 퇴사한 직원의 풍자에 가까운 댓글을 가지고 협박을 해 사무실까지 불러들여 폭행한 양진호는 음란물에 대한 표현과 공유의 자유엔 거리낌 없었다. 사장 양진호의 탄생은 블랑카가 터트린 우리 사회의 썩어있던 틈을 우리가 대충 덮은 탓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일벌백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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