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브렉시트를 앞둔 혼돈의 영국, 앞으로의 미래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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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2월15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2월15일 13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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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英 관계의 역사

 

지난 번 박태홍 청년기자가 베트남을 방문하여 소식을 전한 이후로, 필자도 최근 영국을 방문했다. 역시 마찬가지로 영국을 방문한 기념으로 특파원이 되어 국가미래연구원 독자들에게 브렉시트 관련 얘기를 전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영국이란 나라는 과연 어떤 느낌일까? 사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영국이 크게 교류가 있었던 적은 많지 않다. 일단 지리적으로 매우 멀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일본, 중국과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루고, 교류도 했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우리나라와 영국도 관계의 역사가 있다.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공존한다. 나쁜 감정은 영국이 이른바 거문도 사건을 일으켰을 때다. 거문도 사건은 19세기 후반 혼돈의 시기를 맞고 있던 조선이 거문도를 영국에게 불법 점령당한 사건이다. 당시 영국은 러시아가 남하하여 그 세력을 진출하기 위한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라도 지역의 거문도를 점령했다. 하지만 이후 청나라의 중재로 러시아가 조선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물러났다. 전형적인 제국주의 영국의 모습이었다. 

 

좋은 기억도 물론 있다. 영국은 한국전쟁 참전국이다. UN군의 일부가 되어 무려 56,700명의 병력을 참전시켰다. 이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국가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역사다. 이 중 1,078명이 전사했고, 2,674명이 부상당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알 수밖에 없는 ‘두유노클럽’ 1세대 박지성 선수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한 적이 있다. 손흥민, 기성용 선수 등도 현재 절정의 기량을 보이며 활약 중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축구팬들에게 영국은 심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다.  

 

브렉시트의 역사

 

영국의 국호는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이다. 한때 대영제국이라고 불리며 제국주의 국가의 위상을 떨치던 시기가 있었다. 전 세계에 수많은 식민지 국가를 거느리며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곤 했다. 

 

하지만 최근 ‘대영제국’의 모습은 과거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에겐 조금 당황스럽다. 이른바 무일푼으로 유럽연합에서 쫓겨나기 일보 직전이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2016년의 일이다. 영국의 젊은 리더였던 보수당의 캐머런 총리는 당시 ‘뜨거운 감자’였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주제로 국민투표를 시행한다. 과거 총선공약이기도 했지만, 유럽연합 잔류파인 자신이 투표를 승리로 이끌어 리더십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투표를 두고 영국은 둘로 쪼개졌다. 일반적으로 선거에선 보수당과 노동당의 대립구도였지만, 이번 선거만큼은 달랐다. 유럽연합 잔류파의 주요 리더는 캐머런 총리,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빈이었다. 국공합작을 연상케 할 만 했다. 반대로 보수당은 두 개로 쪼개졌다. 어릴 적부터 캐머런 총리의 친구였던 보리스 존슨 의원은 탈퇴파에 가담했다. 영국독립당의 나이젤 파라지 등도 합류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독일의 메르켈 총리 등 수많은 서방의 리더들이 나서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로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를 할 것이라는 예상을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양 측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투표함이 열렸다. 결과는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었다. 유렵연합의 탈퇴가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민자에 대한 공포와 온갖 가짜뉴스가 영국이라는 국가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캐머런 총리는 곧 사퇴를 결정했고, 내각은 해산되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단순히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분리주의, 보호주의의 바람이 영국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는 곧 미국으로 건너갔고, 2016년 12월 도널드 트럼프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브렉시트 앞둔 혼돈의 ‘대영제국’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주도하기 위해 테레사 메이 총리가 선출되었다. 영국이 2019년 3월 30일 0시부로 유럽연합을 떠나기로 결정하면서 영국 정부는 이후 상황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최근 협상에서 큰 난항을 겪고 있다. 

 

간신히 유럽연합과의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최근 영국 의회에서 역대급의 표차로 부결되었다. 이후 총리 불신임안까지 나왔지만 간신히 부결되었다. 쟁점은 결국 영국이 언제까지 유럽연합의 관세동맹에 남아있느냐이다. 강경파의원들은 영국이 즉각적으로 유럽연합을 탈퇴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브렉시트는 더욱 더 혼돈에 빠지고 있다. 

 

앞으로의 재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봐야겠지만, 최악의 경우 ‘노딜 브렉시트’로 향할 수 있다. 이는 아무런 협상 없이(no deal)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그 충격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각종 수입 식료품들은 더 이상 자유롭게 영국으로 들어올 수 없다. 유럽연합 회원국으로서 누리던 각종 혜택도 즉각 소멸된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유럽연합과만 진행하던 각종 협상을 이제는 영국과도 따로 진행해야한다. 자유무역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런던에 위치한 영국의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아직까지도 소수지만 브렉시트 관련 시위대를 볼 수 있었다. 각종 방송에도 아직까지도 뉴스의 많은 부분을 브렉시트가 관련 뉴스가 할애하고 있었다. 한 번의 국민투표가 국가의 미래를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우리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라는 인식이 불러온 충격적인 결과 앞에서 현재 영국인들은 방황하고 있다. 영국을 위해서라도, 우리나라를 위해서라도 부디 영국과 유럽연합이 합의안을 반드시 도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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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2월15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2월15일 13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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