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재정주도성장은 지속가능한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2월17일 17시05분

작성자

  • 김상겸
  •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메타정보

  • 20

본문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그 성과는 뚜렷하지 않은 채, 우리경제가 직면한 문제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란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논리이지만, 정책이 시행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데에도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소득, 소비, 재분배 어느 하나 나아졌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일자리 정부’라는 자임(自任)이 무색하게도 고용문제는 참사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소득’ 부문의 결과는 어떠한가? 2018년 우리나라 가구당 소득은 21만원 가량 증가하였으나 비소비지출이 20만원 정도 증가했기 때문에, 가처분소득은 채 1만원도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9,300원 증가). 이때 비소비지출이란 세금, 건강보험료와 같은 사회보험료, 이자비용 등 강제적 또는 의무적으로 써야하는 돈을 의미한다. 결국 가계 소득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세금 등 이것저것 내고나면 겨우 1만원 정도 남겼다는 의미이다. 가계입장에서는 그래도 손해나는 것 보다는 낫다고는 하겠지만, 현 정부가 그동안 생색낸 것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이다. 

 

여러 가지 논의들이 지속되고 있지만 사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성장’ 정책이라기보다는 ‘재분배’ 정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정책의 초점이 되는 이때의 ‘소득’이란 고소득계층을 제외한 중‧저위 소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재분배 성적 또한 좋지 않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가구동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3/4분기까지 저소득층의 소득은 감소한 반면, 오히려 고소득층의 소득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소득 하위 20%(1분위)의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은 10~20% 가량 감소한 반면, 소득 상위 20%(5분위)의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은 대략 10%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증가한 것이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소득재분배 정책이라면 저소득층의 소득을 증가시켜야 하는데,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결과는 오히려 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정책효과를 보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니 더 두고 보자’는 사람도 아직은 더러 있지만, 더 두고 본다고 극적인 반전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정부는 이제, 어지간한 성과부진에 대해서는 대규모 재정을 하는 동원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후유증으로 고용부진의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 스스로 고용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장담하던 고용의 ‘질적 개선’과는 거리가 먼, 1~2개월짜리 초단기 공공일자리 제공 등이 그것이다. 통계상 비극적 숫자가 나오는 것은 모면해야겠으니 일단 돈을 써서라도 고용참사를 막고 보자는 식이다. 자영업자, 중소기업 대책 등등도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에는 과거 ‘토건경제’라 그토록 비난해오던 SOC 투자확대까지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정권이 몇 번 바뀌는 동안에도 흔들림 없이 지켜왔던 원칙까지 허물어 가면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카드를 꺼낸 것이다. 이미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된 사업들까지 재추진하겠다며 내세운 명분은 구차스럽게도 ‘지역균형개발’이었다. 

 

정부의 재정운용 방식이 이렇다보니,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세금주도성장’ 또는 ‘재정주도성장’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구체적 정책이라 내놓은 것들이 결국은 정부가 전보다 돈을 더 쓰는 것으로 귀결되는 현상을 비아냥대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런 말을 그저 웃으며 흘려들을 수도 없는 것이, 실제로 2018년 우리나라 경제성장 가운데 재정기여도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8 재정정책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GDP 성장률 가운데 정부재정의 기여도는 대략 0.9% 정도로 예상한 바 있다. 이는 2018년 우리나라 GDP 성장률을 2.7%라고 보았을 때, 대략 1/3가량을 재정이 담당했다는 의미가 된다.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정부부문의 기여도가 이렇게 큰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 평가된다. 

 

풍선의 어느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온다. 정부재정도 이와 비슷해서, 경제 내에서 정부의 기능이 증가하면 그만큼 민간의 기능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정부는 생산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쓸 돈은 대개 민간에서 세금 등으로 거두어 온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돈을 더 쓴다는 것은 그만큼의 돈을 가계나 기업에게서 가져왔음을 의미한다. 아마도 그 돈은 소비나 투자 등에 쓰였을 것이다. 결국 재정지출이 증가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부가 누군가를 위해 돈을 쓴다는 뜻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그만큼의 소비나 투자가 감소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경제성장에서 재정기여도가 높다는 것은 정부가 민간의 기능을 그만큼 많이 위축시켰음을 함의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정부지출이 민간지출을 시장에서 몰아낸다는 뜻에서 구축효과(crowding out effect)라고 일컫는다.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계획경제 체제가 아닌 다음에야, 재정기여도가 높은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재정이 주도하는 경제’가 가진 또 다른 문제점은 경제의 지속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는 이웃한 일본경제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우리경제와 과거의 일본경제는 여러모로 유사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경기침체’과 ‘고령화’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은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바 있으며, 고령화로 인한 각종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대규모의 복지지출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한 경기부양책들이 당초에 예상했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서, 여전히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란 말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재정주도 체제가 지속되면서 불거진 매우 심각한 또 다른 문제는 국가부채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는 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본의 국가부채(엄밀하게 말하면 일반정부 부채: D2)는 GDP의 200%를 훌쩍 넘어선지 오래다(2016년말 기준 234%). 이는 일본 전체 국민이 2년 넘게 번 돈을 고스란히 나랏빚 갚는데 써도 부족함을 의미한다. 빚이라는 것은 그 속성상 이자부담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원금 갚기도 벅찬데 이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그야말로 파탄지경이 되는 것이다. 혹시라도 ‘지속가능한 빚더미’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가? 재정주도경제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의 많은 우려와 제언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고집스럽게 고수하려는 듯이 보인다. 미숙한 정책실험 속에서도 우리 경제가 잘 버텨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20
  • 기사입력 2019년02월17일 17시05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