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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수출주도형 성장체제는 무너졌는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2월28일 19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2월28일 18시58분

작성자

  • 이종규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박사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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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짙어지는 저성장 고착의 징조, 사회적 혼란까지 부추겨

 

우리나라는 근래 상당 기간 낮은 경제성장률을 경험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우리 경제의 활력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 

 

저성장으로 인한 문제는 비단 경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러 분야에서 소위 저성장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실업률 상승, 고용구조의 악화, 가계부채 누증, 자영업의 무한 경쟁 등의 이슈만 하더라도 경제 관련 문제로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증오나 갈등 현상도 저성장의 징후로 볼 여지가 있다. 경제성장이 지체되는 가운데 종전의 이윤 관성에 익숙한 각 주체들간의 경쟁은 날로 격화되면서 이 현상들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갑질”과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비슷한 관점을 적용할 수 있다. 저성장으로 인해 수익 여건이 바뀜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 차원의 권력과 지위까지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갑질이라는 행동이 표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성장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경제성장이 절실하다. 그렇지만 그 여망과는 달리 현실은 그 반대이다.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최근의 부진상은 경제개발 이래 비견할만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처음 겪는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제 상황이 전개되는 과정을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였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이 물음은 여러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원인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가설적 차원이지만 그 의미는 적지 않다고 본다. 그 원인은 수출주도 경제성장 체계가 와해되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다. 

 

우리나라는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한 이래로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그 성공에 힘입어 발전해왔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우리나라 수출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출부진은 수출 금액이나 물량의 감소라는 절대적 개념이라기보다는 경제성장을 주도하지 못한다는 상대적 개념에 입각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의 경기둔화 및 부진의 원인은 국내 요인보다는 수출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2010년대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게 된 배경 등을 심각히 고민하지 않았었다. 경제발전에 따른 자연적인 추세로 이해하려 하거나 생산성 향상의 지연 등과 같은 국내 요인 탓으로 돌리는 경향도 있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충격이 다수 발생하면서 경제성장세가 약화되었다고 인식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2013년 3월 경기 저점 이후 회복하던 우리 경제는 2014년 세월호 사고, 2015년 메르스 사태, 2016년 중국의 사드 보복 등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경기 확장이 제한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이러한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경제가 과거와 같은 호황을 누릴 수 있었을까? 결론은 여러 충격들이 없었더라도 경제성장률이 크게 상승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수출이 과거와 같이 호조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3년 이후 세계경기는 유럽 재정위기의 영향을 벗어나 회복국면에 진입하였다. 비록 회복세가 완연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감소하거나 위축하는 등 부정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수출은 과거와 같이 활기를 띠지 못하였다.

 

그 논거로는 다음의 사실을 제시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World Economic Outlook에 따르면 2013년을 전후한 시기에 우리나라 수출이 세계교역신장률에 비해 저조해지고 그 이후 그러한 추세가 지속되었다(아래 그림의 왼편 그래프 참조). 우리나라 수출 증가율이 세계교역신장률을 장기간 하회하는 일이 경제개발 이래 처음으로 발생한 것이다. 만일 예전처럼 우리나라 수출이 세계교역 신장률보다 빠르게 늘어났다면 2010년대에도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괄목할만한 성장률을 기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반대였다. 우리 수출이 세계교역 신장세보다 부진하면서 2010년대 세계 경기 회복으로 인한 수혜를 보지 못하였다.

 

수출 부진의 일차적 배경은  중국 경제의 부상

 

최근 우리나라 수출 부진에는 일차적으로는 중국의 부상이 그 배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좀 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중국이 우리나라 수출 주력 상품의 세계 시장을 침투하면서 우리 수출이 저조해진 것이다. 그리고 개별산업 내에서도 분업 구조상 중급기술 및 저부가가치 영역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역할을 중국 기업들이 대체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의 부상과 우리나라 수출 부진, 그리고 국내 경기의 위축은 1990년대 일본의 경험과 유사하다. 일본은 1990년대초 우리나라에게 수출 시장을 점령당하고 국내적으로는 부동산 거품의 붕괴 등을 경험하면서 저성장 궤도로 진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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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부진은 국내 제조업의 출하 동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이후 수출용 출하 증가율이 내수용 출하 증가율을 지속적으로, 장기간 밑돌고 있다 (위 그림 오른쪽 그래프 참조). 2018년 상반기 한 때 수출용 출하가 호조를 보이기도 하였지만 이는 자동차 부품 및 제품 등 일부 품목의 수출이 일시적으로 늘어난 것을 반영할 뿐이다. 한마디로 수출용 출하가 내수 출하 증가율을 밑도는 일이 장기간 지속된 적은 과거에는 결코 없었던 현상이다.  

 

한편 내수용 출하도 종전에 비해 현격히 위축되었다. 앞의 그림 오른쪽 그래프에서 점선으로 표시한 내수용 출하 증가율도 2010년대 들어 증가폭이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는 수출 위축의 효과가 전후방 산업연관효과를 통해 내수를 연계적으로 위축시킨 결과로 풀이된다.

 

수출 부진은 국민소득통계로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이래 수출 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을 하회하는 데다 최종소비지출 증가율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13~2018년 기간중 수출은 연평균 2.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비해 최종소비지출은 2.7% 늘어났고 경제성장률은 3.1%를 기록하였다. 이제 수출이 경제성장을 더 이상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우리 경제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었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체제가 와해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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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그동안 이와 같은 수출부진이라는 기조적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 이면에는 무역수지 흑자 확대라는 착시 현상이 있었다. 2013년 이후 국제수지 흑자 폭은 점차 확대되었다. 수출에서는 주력 상품인 ICT 제품과 반도체 등의 국제가격이 강세를 보였다. 물량의 증가나 시장 점유율의 확대 등의 긍정적 요인보다는 가격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수입면에서는 국제유가 하락이 무역수지 흑자를 키우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요인들로 무역수지 흑자가 지속되면서 수출 부진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였다.

 

 새로운 경제시스템의 구축 논의, 조속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돼야

 

또 다른 차원에서는 좀 더 근본적인 요인들을 지적할 수 있다. 문제의 인식이나 현상을 분석하는 데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지 않는 경향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관점에서 제시되는 새로운 시각, 특히 부정적이거나 비판적 견해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풍조도 배경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무튼 절대적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경쟁상대국이나 여타 항목 등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는 현상을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였다. 

 

인식의 한계로 수출 경쟁력 수준에 대한 진단이나 경쟁 상대국에 비해 앞서나가기 위한 대책 등은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수출이 부진하면 내수라도 살아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였다. 내수주도형 경제성장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는 단계로의 이행도 원활하지 못하였다. 근래에 추진된 여러 정책들은 의도한 효과를 내지 못한 채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거나 내수를 위축시키는 결과에 먼저 맞부딪히고 말았다.  

 

이제 경제 여건이 더욱 어려워졌다. 내외의 여러 요소들이 악순환적 고리를 형성하여 우리 경제를 더욱 옥죄는 양상이다. 그나마 유지되어오던 수출이 최근에는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더욱 위축되고 있다. 외부 충격을 증폭시키는 국내적 요인도 허다하다. 인구 및 고용 구조와 고용 관행 등으로 인한 국내 수요 위축, 새로운 성장동력의 발굴 지연 등에 따른 불확실성 증폭, 자신감의 상실 등으로 인한 투자 부진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이다. 여기에 여러 사회적 갈등 등이 새로운 비효율 요소로 가세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경제성장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 여러 부정적 요소들의 악순환적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는데 이를 벗어나는 것이 새로운 정책과제가 되고 있다. 이과 같이 종전과 차원이 전혀 다른 새로운 정책과제가 대두되는 것이 수출주도형 경제체제로부터 내수주도형 체제로 이행된다는 것의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과거 수출 주도 경제성장체제에서는 세계경기가 회복되면 국내 경기도 자동적으로 회복되었다. 수출 증대로 국내 경기가 회복되면 사회적 갈등도 완화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과정을 기대하지 못하게 되었다. 수출 증대를 통한 경기 진작 효과가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바람직한 경제성장률 수준을 달성함과 동시에 우리 스스로 내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새로운 차원의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경제시스템의 성격 변화로 앞으로 직면하게 될 정책과제는 더욱 난해하게 되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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