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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 외면하는 예술교육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2월26일 00시52분

작성자

  • 김진해
  •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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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예술이 없다
한국에는 예술이 없다. 예술이 한 번도 세상의 중심에 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는 사대부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사농공상(士農工商). 즉 선비가 사회를 지배하는 구조였다. 이제 그 서열이 바뀌었다. 천대받던 상인이 실세로 등장했다. 사농공상은 상공농사로 역전되었다. 상사공농이든 상공사농이든 역전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조선 왕조가 성리학적 유가 전통에 기반을 둔 반면 지금의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다. 시대가 바뀐 만큼 주도 계급이 바뀌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고 선비(士)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현대국가에서 사(士)는 법(法)이다. 한국은 왕정이 아닌 법치국가다. 법은 정의(正義)다. 정의, 영어로 Justice는 라틴어 ius-iustitia 에서 유래한다. ius는 법이며, iustitia는 정의를 뜻한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며 정의를 어긴 죄인은 형벌에 처해진다. 그럼에도 종종 법의 정의는 자본의 권력 앞에 무너지기도 한다. 사(士)가 지배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은 상(商)이 우위다.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옛 선비들의 시서화(詩書畵)는 어디 있나? 정도전(鄭道傳)은 문학을 도를 싣는 그릇, 즉 재도지기(載道之器)로 파악하고, 시서예악(詩書禮樂)의 가르침에 충실한 시와 문을 최고의 표준으로 삼았다. 이런 인문숭상의 전통은 사라지고 있다. 옛 양반들의 시서화는 오늘날 문학, 서예, 고문, 미술이다. 고급예술인 셈이다. 이조시대 저잣거리의 광대는 천민 취급을 받았다. 이런 현상도 역전되었다. 순수예술은 지고 광대들인 가수, 배우가 뜨고 있다.

위축되는 예술교육
최근 청소년들이 제일 선호하는 직업이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다. 부와 명예가 따라온다. 그러다 보니 대학의 인기 판도가 바뀌었다. 공무원 시험 광풍과 더불어 요즘 최고로 각광받는 직업이 연예인이다. 수십만 명에 이르는 9급 공무원 시험 응시자 이상으로 연예인을 지망하는 청소년들의 숫자가 많다. 뮤지컬, 영화연기전공이나 실용음악전공의 입시 경쟁률은 100대 1을 상회한다. 텔레비전의 연예인 오디션 프로그램은 인기 만발이며 지원자 수는 백만 명에 육박한다.
 
그런데 정작 이들의 뿌리인 음악, 미술, 문학 계열은 폐과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연예는 성행하고 예술은 퇴조하고 있다. 예술학과의 위기는 전공이 직업으로 연결되지 않고 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이들 학과의 지원자 수가 줄어든 것에 기인한다. 지원자가 적다고 예술계열 학과들을 없애거나 사라지게 내버려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학을 자본의 시장논리로 내몰면 문제가 생긴다.
 
문제가 목도되고 있다. 바로 교육부의 <프라임 사업>이다. 교육부는 인력의 미스매치 즉 산업체 수요와 대학 교육의 공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구조 조정을 유도하고 있다. 공학과 의학계 정원을 대폭 늘이고 인문사회, 예술계열은 확 줄이는 것이 골자다. 큰 사업이 연간 150억~300억 원으로 3년간 9곳, 작은 사업은 50억씩 3년간 10곳, 적지 않은 지원금에 대학들이 성급히 달려들어 학과 구조조정을 서두르다보니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
 
반값 등록금 정책과 등록금 인상 억제로 재원 난에 봉착한 대학들은 교육부의 지원금에 목은 멘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학령인구가 다시 증가하는 순간 직업 미스매치가 또 발생할 것이다.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직장이 있어도 취업을 하지 않는 세태가 더 문제다. 중소업체에서 학생들을 보내달라고 하지만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눈은 높고 고된 일은 하기 싫다는 거다. 적당히 알바로 버티거나 잠시 취업했다 노동청에서 지급하는 실업급여 타서 놀고먹는다.
 
재밌는 현상은 취업이 어렵고 경제가 점점 팍팍해지는 요즘 10년 전과 비교해서 예술종사자의 숫자가 10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생존경쟁은 치열한데 예술인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놀이를 즐긴다는 점이다. 과거에 비해 형편이 나아진 지금 더욱 그러하다. 유희(遊戱)는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다. 하위징아가 명명한 호모 루덴스 즉 유희적 인간은 놀이를 예술로 승화한다. 시대와 상관없이 예술은 육성되고 존중되어야 할 영역이다. 그런 면에서 예술을 고사시키는 최근 교육부의 인위적인 구조조정 정책은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인다.
 
예술과 인문 육성에 재벌도 나서야
우리 사회의 이슈중 하나가 재벌의 문제다. 부익부 빈익빈. 재벌의 과도한 자본집중, 더 나아가 재벌가의 부도덕성, SK그룹 회장의 일탈, 대한항공 조모의 갑질, 몽고간장 김 모의 안하무인. L,K,L 등 비리를 지지르고도 검찰소환에 불응하는 정치인, 대학이사장의 공금횡령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비리와 부도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들의 윤리의식 부재와 방향성 상실을 보며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이것이 비단 개인의 윤리에 국한되는 것일까?
 
그들의 비리와 파렴치함을 개인 문제로 돌리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사회 윤리의 부재가 심각하다. 자본주의가 우리보다 앞선 미국, 유럽의 경우 그들의 공공윤리는 견실해 보인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공헌이 가진 자의 의무로 자리 잡고 있다. 기부를 유도하는 세금 면제 등 제도가 잘 확립된 것도 사실이다. 카네기재단, 록펠러재단, 빌게이츠재단 등 재벌은 돈을 벌어 사회에 환원한다. 자선과 기부가 일상화되어 있고 가진 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확고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를 한국의 부자들이 본받아야 한다.
 
한국의 재벌들은 교육과 예술에 투자해야 한다. 미국의 예를 들자.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 등 세계 최고의 대학들은 기업가들의 기부로 대학 재정의 상당 부분을 충당한다. 기업가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세우고 복지재단을 만들어 나눔을 실현한다. 반면 한국 재벌들은 문화재단을 재산 축적과 절세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한국 기업들의 예술후원제도인 메세나 예산이 연 2천억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세 유럽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가를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로부터 재벌이 경멸당하지 않을 것이다.
 
문화융성과 교육정책의 조화가 절실하다
지난 다보스 포럼에서 앞으로의 답은 문화라고 했다. 대통령은 문화가 창조경제를 선도한다고 했다. 더 정확히는 문화산업이 창조경제를 만든다고 했다. 조엔 롤링의 <반지의 제왕>은 문학이다. K팝과 K드라마의 근간은 음악이며 문학이다. K뷰티의 화장품은 화학이며 미술이다. 뮤지컬도 음악과 무용이 뼈대다. 뮤지컬 배우의 몸동작과 신체훈련, 안무지도는 무용 강사가 맡는다. 성악전공 강사는 배우들에게 발성과 가창을 가르친다. 그럼에도 무용학과와 음악학과가 폐과 위기에 몰리고 있다. 뿌리 없이 자란 나무는 쉽게 시들고 바람에 약하다.
 
전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린 스튜트가르트 발레단 출신의 강수진, 소프라노 조수미, 지휘자 정명훈, 체육계 박찬호, 박세리, 김연아를 떠올려보자. 이들은 모두 예체능계 스타들이다. 노벨상 수상자 하나 없는 마당에 그나마 이들이 국위 선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예체능을 죽이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얼마 전 뉴욕 타임스에서 “문학을 사랑하지 않는 나라가 노벨문학상을 탐낸다”는 기사로 한국을 비꼬았다. 정확한 지적이다.
 
정부는 부처 간의 소통을 강조한다. 그런데 정부의 문화융성과 교육부의 프라임 사업은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교육부의 <프라임 사업>은 취업 안 되는 예술.인문.자연계열을 없애는데 있다. 기초학문과 예술이 고사된다면 과연 건전한 학문생태계가 유지될 것인가? 오히려 이 와중에 이들을 더욱 키워야 맞지 않는가? 교육 정책은 미래를 개척하는 첨단 분야에 투자함과 동시에 보호 육성해야 할 가치가 있는 학문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문화융성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교육부와 문화부의 코드가 맞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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