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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8월14일 18시13분
  • 최종수정 2016년08월14일 18시13분

작성자

  • 김진해
  •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장

메타정보

  • 55

본문

 

TV 없이 생활한 지도 한참이다. TV를 보지 않으면 그 시간에 다른 일이 가능하다. 독서라든지 이를테면 운동이나 산책이다. 독서는 적극적인 뇌운동이며 산책이나 등산, 수영 등은 신체운동임과 동시에 뇌를 젊게 만든다. TV 대신 핸드폰이나 컴퓨터 등을 통해 언제든 뉴스나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에 굳이 TV 없이도 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UHD 고급 TV가 생기면서 그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덕에 전혀 색깔이 다른 방송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두 편 보게 되었다.

 

마닐라/필리핀

 

런던의 버스기사 조는 10일간의 일정으로 마닐라에 왔다. 그의 목적은 교통이 혼잡하고 무질서하기로 소문난 마닐라에서 직접 버스를 몰아보기 위해서다. 프로그램의 제목이 ‘세계의 극한직업’으로 기억된다. 덩치가 큰 흑인 조가 머문 곳은 그곳 버스기사 로헬리오의 집이다. 그의 집은 하층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다. 10평이 채 안돼 보이는 땅에 그가 직접 지은 블록집이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길게 이어져있으며, 골목마다 바깥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있는 아낙들과 노인들, 강아지와 동네 꼬마 아이들이 뒤엉켜있다.

 

1층의 부엌과 옥탑 방을 포함, 로헬리오의 집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물론 무허가다. 그래도 로헬리오는 그가 손수 지은 집이라는 데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벽돌로 벽을 세우고 그 위에 적당하게 지붕을 얻은 형편없는 건물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상존하는 가옥이다. 좁디좁은 방 2개에 그의 여덟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조와 그의 아내, 결혼한 아들과 며느리, 나머지 아이들이다. 거기에 런던 버스기사 조 까지 가세하니 집은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인다. 열악한 주거 환경이다. 

 

로헬리오의 버스는 말이 버스지 미군이 버리고 간 지프차를 개조해 만든 60년이 다 된 완전 고물차다. 한 손으로 운전하고 다른 손으로 운임과 거스름돈 주고받으며 곡예에 가까운 운전을 한다. 그는 운행 중에 버스가 멈추면 이를 직접 수리해 고친다. 연료가 떨어지면 승객을 태운 채로 주유소에 들른다. 수시로 고장 나는 버스를 몰면서 자신의 노선을 하루 12번 왕복한다. 하루 12시간의 노동으로 번 돈은 약 천5백 페소. 이중 유류 대와 버스 할부금을 빼면 하루 6백 페소(한화 약 1만4천원)의 수입이란다. 이 돈으로 여덟 식구가 먹고 산다.

 

조와 로헬리오는 하루 시간을 내어 로헬리오의 시골 어촌 마을을 간다. 평화로운 마을이다. 거기도 생활이 어렵지만 그래도 평온하다. 조가 왜 이런 평화로운 고향을 놔두고 마닐라에 사느냐고 묻자 일자리 때문이란다. 로헬리오처럼 시골서 올라온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다. 평방킬로미터에 9만 명이 몰려 사는 슬럼가의 이들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썩어가는 음식찌꺼기를 골라낸다. 이를 요리해 먹는다. 꿀꿀이죽과 같은 ‘팍팍’ 한 그릇이 5페소(한화 24원)다. 이 길거리 음식점 주인의 하루 수입은 70페소(한화 1천6백60원). 병든 남편과 한 끼 해결이 힘들다고 아주머니는 울음을 터뜨린다.

 

조가 느끼는 점은 이들 모두 노력에 비해 대가가 적다는 것이다. 로헬리오나 빈민가 ‘팍팍’ 노점상 모두 하루 벌어먹고 사는 신세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시골에서 도시로 온 농어민들이 다시 빈민층으로 전락한다. 음식쓰레기 봉투를 뒤지고 하수구 옆에 사는 그들에게 위생이나 보건의 개념은 아예 입에 꺼낼 수조차 없다. 최악의 상황에서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마닐라의 버스기사 집에서 기거하며 교통상황, 주거환경, 먹고사는 문제를 경험한 조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버진 아일랜드/카리브 해

 

아름다운 비취빛 색깔의 바다가 태양을 받아 일렁인다. 그 가운데 눈부시게 하얀 모래사장과 야자수, 멋진 열대식물들이 시원스럽게 자라 한 눈에 봐도 가슴 설레게 멋진 휴양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 속에 그림 같은 호텔이 들어서있다. 카리브해 버진 아일랜드에 있는 개인 소유의 네커 섬이다. 섬의 주인은 버진 애틀랜틱 항공사 사장 리처드 브랜손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그는 괴짜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CEO들과는 다르다. 음반 사업으로 돈을 모은 그는 1978년 1만8천 파운드에 무인도인 이 섬을 구입했다.

 

이 네커 섬에 그는 모든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낙원의 휴식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최고의 시설과 음식과 서비스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노력 덕에 유명해진 이곳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배우 멜 깁슨 등 유명 인사와 부자들이 줄지어 방문하고 휴가를 즐겼다. 이 섬이 처음부터 이렇게 아름다운 곳은 아니었다. 천혜의 바다와 빛나는 태양, 맑은 공기와 천연의 숲과 나무가 전부였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일을 그는 벌였다. 원시의 섬에 인공을 가미하여 새롭게 가꾸었다. 이 섬을 세계 최고급 리조트로 만든 주인공이 리처드다. 

 

그는 실제 이 섬에 살고 있다. 머리도 장발이고 양복도 입지 않으며 컴퓨터도 할 줄 모른다. 매일 아침 업무 지시를 두 명의 비서에게 한다. 그들이 그를 대신해 지시를 전달한다. 그는 버진 항공사를 포함해 전 세계 4백여 개의 회사에 연매출 2백50억 달러에 달하는 그룹의 총수다. 그룹 총수의 사무실은 리조트 수영장 한 옆에 마련되어 있다. 알려진 데로 그의 학력은 중학교 중퇴가 전부다. 총매출과 순이익도 구분할 줄 몰랐다고 한다. 그런 그가 재벌의 총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남들과 다른 생각,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일들을 과감히 추진하는 그의 예술가적 기질이었다. CEO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린 장본인이다.

 

자신의 휴식을 위해 돈을 지출하는데 전혀 고민이 없는 부자들을 위한 최고의 휴양지 네커 섬. 그 리조트의 종업원들은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세상 어느 곳과는 차별되는 최적의 침실과 욕실을 제공하고 매끼 최상의 음식을 준비한다. 까다로운 부자들의 기호에 맞추어 캐비어 요리와 돔 페리뇽 등 고급 삼페인과 칵테일, 통돼지 바비큐와 신선한 생선요리와 스시까지 다양한 고급음식을 제공한다. 리조트를 통으로 빌리면 하루 4천만 원이 넘는다니 부자들은 돈으로 귀족 대접을 받는 셈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부자들만이 모이는 곳이므로 놀러 온 그들끼리 돈은 어떻게 벌었는 지와 무엇을 하는 지에 대한 서로의 호기심과 관심이 대단하다. 일부 고객은 버진 항공 대표 리처드와의 교류를 목적으로 방문하기도 한다. 물론 이곳에 부자들만 오는 것은 아니다. 저전거 수리공도 부인과 함께 온다. TV에 소개된 그들은 일 년 내내 돈을 열심히 벌어 단 한 번의 여름 휴가를 위해 모은 돈을 몽땅 투자한단다. 그만큼 매력 있는 리조트인가보다. 마닐라의 극빈민층의 생활과 네커섬의 최상류층의 휴가를 TV로 간접 체험 하고보니 텔레비전이 꼭 바보상자인 것만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한국/미국

 

얼마 전 인터넷에서는 朝이라이트 제157화 ‘오랜만에 찾아온 조국’이란 카툰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오랜 미국 생활 끝에 잠시 한국에 휴가 온 지인, 오자마자 우뚝우뚝 솟은 고층 브랜드 아파트에 놀라고 골목마다 중형차들이 가득함은 물론 어디서나 빠른 인터넷, 가는 곳 마다 놀랍고 편리한 것투성이. 뛰어난 교통카드, 저렴하고 편리한 택시, 거미줄 같은 지하철, 안전한 스크린 도어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대중교통 시스템에 감동하고, 수많은 채널, 전화 한통화면 먹을 수 있는 음식, 거리마다 널린 카페, 비싼 폰들, 순식간에 배송 서비스, 해외여행 인파로 공항은 늘 북적북적, 십 수 년전 한국을 떠날 때만해도 상상도 못한 것들이 수두룩. 

 

미국서 엄두도 못 내던 건강검진과 치과 치료를 마친 후 며칠 후면 발전된 조국을 두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못내 아쉬운 해외동포, 그런데 이번 귀국에서 조국의 놀라운 발전보다 진짜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죽겠어, 힘들어, 정치가 개판, 나라가 썩었어’ 만나는 지인마다 한국이 얼마나 살기 힘드는지 성토하는 모습들. 전세값 올라가서 살 수가 없어, 교육시키느라 등골이 빠진다. 반값 등록금 실시하라, 여자라서 밤길도 못다닌다. 정리해고 당하는 나라, 55인치 대형 TV속 다들 힘들어 죽겠다고 난리다....이어서 그의 말이다.

 

“난 전세는커녕 월세 3천 달러 인데, 미국은 남자도 밤길 무서워서 조심해야하는데, 미국 등록금은 더 비싼데, 미국은 보험, 병원비도 훨씬 비싸고 밥 한 번 먹어도 세금 25% 추가로 내는데. 내 주변의 인텔 등 IT회사들도 수천 명 씩 정리해고하고 난린데... , 세계 최고의 나라라는 미국보다 더 나은 점이 많은 자랑스런 조국. 평균수명, 치안, 위생, 기술, 도시 인프라 등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에서 다들 죽는 소리라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 물론 어려운 사람들도 잇겠지만 이렇게까지 다들 죽는 소리하는 것들이 뭔가 납득이 안돼요....”

 

어느 미국교포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면면은 사실이다. 그가 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가 나은 점이 많은데 불평불만이 많다는 생각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서울은 그의 말처럼 발전되고 번화하고 편리한 많은 점들이 많지만 한편으로 헬 조선과 흙수저 현상도 분명히 존재한다. 미국보다도 나은 한국이지만, ‘못 살겠다 전세 값, 힘들다 교육비, 썩었다 우리 사회’ 라는 외침에도 공감이 간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다. 이 당대의 문제점을 해결할 시대정신을 우리는 필요로 한다. 그것은 바로 사회 정의와 경제적 불균등 해소가 아닐까.

 

TV덕에 극과 극의 다른 세상을 그린 두 편의 외국 다큐멘터리와 인터넷에 회자된 한국 카툰을 보면서 산다는 것의 의미, 돈을 번다는 것의 의미, 삶을 즐긴다는 것의 의미, 나와 가족, 나와 사회, 나와 국가, 나와 세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CNN 뉴스를 틀어 보면 연일 미국 대선 이야기로 가득한다. 민주당의 힐러리와 공화당의 트럼프 진영의 정책대결이 볼만하다. 마닐라 빈민층 생활이 남의 일이 아니다. 유럽의 난민문제와 전 세계적인 테러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니다.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다. TV 다큐멘터리를 보며 세상 모두 잘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정의(正義)’라는 말이 떠오른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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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8월14일 18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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