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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의 군사적 의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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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07월25일 21시16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6시00분

작성자

  • 차영구
  • 前 국방부 정책실장,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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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의 군사적 의미
2014년 7월 3-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하여 한중 정상회담을 포함하여 많은 활동을 하고 돌아갔다. 이번 시 주석의 방한은 주석 부임 이후 최초로 북한 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고 다른 나라를 겸하여 방문 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만 단독으로 방문한 것으로 양국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번 시 주석은 처음으로 서울대학교에서 “평화를 수호하는 중국, 협력을 촉진하는 중국, 겸허하게 배우는 중국”을 강조하는 강연을 하였고 공동성명에서는 전략적 협력동반자를 더욱 내실화하기 위해 양국 관계를 “공동발전을 실현하는 동반자, 지역평화에 기여하는 동반자, 아시아의 발전을 추진하는 동반자, 세계번영을 촉진하는 동반자”로 규정하였다. 또한 12개의 협정에 서명하고 23개 분야 90여개의 협력 프로젝트를 확정하여 풍성한 경제협력의 성과를 보이기도 하였다. 
 
안보 분야는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한반도 평화와 안정유지가 6자 회담 당사국들의 공동 이익이며 9.19 공동 성명과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의 성실한 이행과 6자 회담프로세스의 추진을 위해 당사자들 간 양자 및 다자간 소통과 조율을 강화하자는 합의를 하였다. 
 
이번 한중정상 회담에서 양국 간 군사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한 것은 없지만 양국 간의 정치, 경제, 문화 분야의 교류 협력 확대를 위한 합의와 북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한 공동 이해와 인식의 공유는 군사전략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잘 알고 있듯이 중국은 한국 전쟁 때 우리와 교전한 전쟁 당사국이다. 역사적으로는 같은 편에 있었을 때도 있었고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적도 있었다. 양국 간 국교정상화는 불과 22년 전인 1992년이다. 한 중 국교 정상화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에 이룩한 양국의 발전은 경이 적이다. 수교당시 양국의 교역규모는 불과 64억 달러였는데 작년의 교역 규모는 2,299억 달러로 년 평균 19% 성장하였다. 1990년 중국이 우리나라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였으나 작년은 26.1%로 최대 교역국이 되었다.
 
양국의 경이적인 경제관계의 발전에 따라 한 중 간의 군사 관계도 좀 더디기는 하지만 꾸준히 발전 하여 왔다. 1995년 최초로 중국 당 중앙 군사위원회의 승인 하에 당시 한국 국방부 정책 실장 이였던 조성태 중장(후에 국방장관역임)이 중국을 공식 방문하여 중국의 군부대를 시찰하고 중국군의 고위층 인사들을 다수 만났다.  그 이후  양국 간 군사교류의 폭을 꾸준히 넓혀 오다가 1999년 당시 조성태 국방 장관이 한국 국방 장관으로써는 처음으로 중국을 공식 방문 하였다. 이어서 답방 형식으로 2000년 1월 당시 중국 국방 부장(우리의 장관) 즈하오티엔 이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하였다. 그는 한국 전쟁 때 중국 인민 행방군의 정치 장교로 참전하여 3년 동안 우리와 싸웠던 인물임을 고려하면 참으로 의미 있는 한중 최고위급 군 인사 접촉이었다. 
 
한중간에 군사 교류는 즈하오티엔 중국 국방부 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체계적으로 발전하여 왔으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양국 정상 간의 합의를 군사적 차원에서  확고하게 뒷받침하는 노력을 지속 하여 왔다.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는 군사적 수단은 한미 군사 동맹이 핵심이다. 한미 연합 세력으로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고 억제 실패 시 즉각적으로 적을 격퇴 할 수 있는 노력을 경주하여 지난 60년 동안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 왔다. 그러나 오늘날 동북아의 정세는 북한의 남침억제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세력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미중의 양 강 체제가 태동하였고 일본이 60년 동안 지켜온  평화 헌법의 틀을 깨는 변화를 시작 하였다. 북한은 핵무기 수준을 계속 정교화 하고 있으며 장/중/단거리 미사일 실험을 계속 하면서 유엔 등 국제적인 제재를 무시한 군사적인 행동을 국제사회에 보여 주고 있다. 
 
이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전대미문의 3대 세습과 공산주의 독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의 미래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할 때다. 한미 동맹은 전쟁을 억제하는 핵심수단이다. 그리고 북한이 남침을 한다면 즉각 반격하여 무력통일을 완성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평화적인 통일을 확고히 보장하려면 반드시 중국의 도움이 필요 하다. 즉 한미 동맹이 군사력을 통한 전쟁 억지(deterrence)를 달성하고 있다면 한중 군사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전쟁 없이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확실한 보장(reassurance)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과 1300km의 긴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실제 그 기능이 얼마나 작동 할 지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양국은 1961년 “조 중 우호협력 원조조약”을 체결한바 있다. 또한 중국은 북한의 레짐 안정이 이념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동북 3성 지역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최소화가 핵심적 이익이기 때문에 북한의 내부혼란을 예방 또는 관리해야 하는 절실한 필요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중국과 한국 간에 군사적 공동이해와 사전 협조 없이는 한반도에서 평화적 통일을 달성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 중국이 반드시 협조 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독일의 평화적인 통일과정에 구소련과 미국의 역할이 어떤 것이었는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중국과 군사적으로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인가?
 
국가 간 군사관계는 동맹(alliance), 불가침(non-aggression), 중립(neutralism) 등 으로 구분 해 볼 수 있다. 중국은 북한의 동맹 국가이고 우리는 미국의 동맹국이므로 남북 적대적 대치 관계 하에서는 한중의 군사 관계발전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렵게 되어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중국과 불가침 혹은 중립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군사 관계를 끌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 동맹조약을 맺고 있어서 중국과 어떤 군사 우호 협정을 생각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호 이해와 전략적 공동의 이익을 확대해 가는 것은 양국 군사 관계발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와 중국 간 군사 관계 발전은 북한에게는 치명적 타격이 될 것이다. 
 
한중 간 군사관계 발전의 첫 단계는 우선 두 나라 간에 군사적인 신뢰구축(confidence building measures)조치들을 적극적으로 발전 시켜야 한다. 1995년 이래 한중간에는 군사적인 신뢰구축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여왔다. 1999년 조성태 장관과 즈하오티엔 장관 간에 “ 한반도 전쟁억지, 비핵화, 동북아 군비경쟁지양” 이 양국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확실히 한바 있다. 그리고 양국 군부 간에 상호 방문을 적극 권장 하였다. 아직 해상의 수색 및 재난 구조(search and rescue)훈련 등 가시적인 군사 협조 합의는 없지만 양국해군의 함정 상호 방문 등 군부 간에 상당한 이해와 신뢰가 형성 되었다고 본다. 지금까지 한중 국방장관 회담을 8회나 했고 차관보급 국방 교류채널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한중군사 관계는 미국과의 공조 하에 진행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미와 한중간의 3국 군사 대화 투명성을 보장하면서 발전시킨다면 한반도의 군사적 평화 보장은 한층 강화되고 평화적 통일 달성의 밑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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