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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 그 화려한 껍데기를 채우려면...(2)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10월09일 22시24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49분

작성자

  • 김진해
  •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장

메타정보

  • 32

본문

문화융성, 그 화려한 껍데기를 채우려면...(2)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하차하면 해밀턴 호텔이 있다. 호텔을 중심으로 좌우 양옆은 옷가게, 구둣가게, 금은방, 식당 등 참으로 다양한 가게들이 있다.

이국적인 풍경의 이태원에 인파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리단 길에 상점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는다. 뜨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서 걸을 수 없을 지경이다. ‘추러스’라는 긴 말발굽 자석 모양의 밀가루로 만든 과자가게 앞에 어림잡아 백여 명 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가게가 한 두 곳이 아니었다. 피자가게 ‘트레비아’, ‘스탠딩 커피’, ‘오지상의 함박 스테이크’ 가게 등도 대박 수준이다.

경리단 길이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오래된 동네 떡집, 철물점, 정육점, 꽃가게, 순댓국집을 사이에 두고 월남국수, 아이스크림, 시가 바, 로큰롤 바, 수제맥주, 독일 샌드위치 가게들이 순식간에 자리를 잡았다. 경리단 길에 젊은이들이 모이니 주택가 뒷골목까지 상점들이 진출하기 시작했다. 정말 순식간이다. ‘장진우 거리’라는 식당 골목이 생겼다. 20대 젊은 청년이 시작한 가게가 동업자들이 참여해 열 개가 넘었단다. 불과 일 년 만에 1~2개에 불과하던 상점들이 30여개가 넘게 생겼다. 놀라웠다.

 

이슬람 사원 위 우사단 길에도 사람들이 몰려들고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섰다. 이곳을 개척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바로 문화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이다. 20~30대 가게 주인들은 커피 볶는 집을 내고 커피 문화를 새롭게 정착시킨다. 소품가게를 내고 그들이 직접 제작한 가죽제품, 은수공예품 등을 팔고 있다. 조명가게를 내고 직접 디자인한 등(燈) 제품을 만들고 캔들 스토어를 오픈하고 양초를 만들어 판다. 의상 디자이너는 자신의 옷을 만들어 팔고 있다. 이곳에 둥지를 틀고 모여드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예술가들이다. 희곡작가, 연극배우, 작곡가, 기타리스트, 플라워디자이너, 영화미술감독, 화가, 금속공예가, 요리사, 의상디자이너 등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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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은 우리의 옛 것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음식점과 전통 찻집과 고미술상과 고서점, 화랑, 필방 등이 점점 밀려난다. 퓨전 음식점과 커피점, 제과점, 의류점 등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을 보여주는 예술의 거리에 외국 관광객이 찾아오고 사람들이 넘쳐나자 상점들이 성업 중이다. 전통과 예술을 전시하는 공간들은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덕성여고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삼청동, 가회동, 운니동, 계동, 원서동의 북촌 한옥 마을도 볼 만하다. 이 곳 역시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북촌이 넘치자 경복궁 동쪽 서촌으로 상권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전통과 예술은 대중을 모으고 대중은 공간의 임대료를 공중으로 띄운다.

 

이들을 보면 뉴욕 생각이 난다. 60년대 그리니치빌리지는 ‘빌리지 보이스’라는 다양한 언더그라운드 예술을 알리는 잡지가 발행되었다. 전 세계에서 젊은 아티스트들이 모여들고 필름 포럼과 레퍼토리 극장이 생기고 화랑이 문을 열었다. 도시 미관이 살아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자 입셍 로랑, 샤넬, 구찌, 헤르메스, 페라가모 등의 명품 의류와 가방, 파텍 필립, 피아제, 카르티에 등의 명품 시계 상점들이 입점하면서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그러자 가난한 예술가들은 비싼 월세에 밀려 변두리인 이스트 빌리지로 이동했다.

 

뉴욕대학이 자리한 워싱턴 스퀘어가든 4가 부터 12가 까지의 이스트 강 동쪽으로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었다. 낡고 음침한 골목은 마약 밀매와 매춘과 강도 사건이 난무하던 무법의 거리였다. 마리화나 연기가 피어오르고 문신한 갱단들이 활보하던 거리가 춤과 사진과 영화와 디자인과 전위 예술가들의 활동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화구점(畵俱店)과 식당들이 생기고 소극장이 문을 열고 밤은 하드록 카페가 불을 밝혔다. 다시 상업이 예술을 압도하자 예술가들은 총소리, 경찰 사이렌 소리가 쾅쾅대는 브루클린 브리지 너머의 험악한 동네로 이사를 해야 했다. 브루클린이 변했음은 물론이다. 예술이 창조한 평화로운 공간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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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천박한 거리에 품위를 가져오고 폭력의 무질서를 미소와 질서로 바꾼다. 조잡한 상품에 조형미를 더하고 건조한 인간관계를 소통하는 교감의 커뮤니티로 만든다. 구태와 구습을 부수고 새로움을 창조한다. 구악과 적폐를 일소하는 힘의 원천, 기성의 제도와 질서를 전복하고 일상의 평범함을 비틀어 변하게 하는 것이 예술이다. 이는 곧 예술의 힘이자 사회적 역할이며 역동적인 문화인 것이다. 돈 안 되고 경제적 이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상식은 잘못된 것이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경제성, 예술가의 사회적 공헌을 우리는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

 

문화융성이란 무엇인가? 문화가 있어 왜 행복한가? 문화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변하는 모습 속에서 문화를 본다. 주거환경문화라고 한다. 내가 사는 동네 도서관에서 신문을 보고 잡지를 보고 책을 빌려 읽는다. 그리고 그들이 기획한 철학자와 사회학자와 생물학자의 강연에 참석한다. 이것이 독서문화다. 나의 책읽기 공부모임 하나가 지식 문화의 작은 거름이다. 우리 동네 중학교 운동장의 일요 조기축구회가 생활체육문화의 한 예이다. 이런 것들이 모여 지역문화가 형성된다.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되고 샛강이 모여 큰 강을 이루듯 내 주위의 소소한 일상이 중요하다.

 

2년차 문화융성위원으로 대중가요 톱스타와 광고감독이 추가 선임됐다. 현 문화융성위원들은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가 다 아는 예술계 유명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명단에 청년문화의 리더들인 영 아티스트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문화는 항상 새롭게 탄생된다. 주역은 바로 젊은 세대들이다. 그들 때문에 도시 공간이 바뀌고 있다. 이태원이 변하고 홍대 앞과 신촌이 바뀐다. 당인리 발전소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성수동 구두거리를 패션 거리로 변모시키는 주역은 도전하는 청년들이다. 오래되고 해묵은 동네들을 재생시키는 문화융성의 주역이 바로 젊은 그들이다.

 

우리는 너무 올드하지 않은가. 나이에 관계없이 올드한 사고방식부터 바꾸고 소통해보자. 현재의 젊은이가 기성세대가 되면 그들 또한 젊은 세대의 도전과 개척정신을 장려 할 것이다. 전통예술을 보호하고 창작 예술 활성화에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하자.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그들의 창작 공간을 더욱 확대하자. 그들이 상업화에 밀려 쫓겨나지 않게 보호 대책도 마련하자. 예술가들의 자유로움을 존중하자. 이것이 문화융성을 바라는 우리의 기본 자세여야 한다. 비틀어 표현하고 엉뚱함으로 새로움을 창조하는 참신성과 실험성을 칭찬해야 한다. 정부의 문화융성 기조에 기대가 크다.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와 청년위원회의 역할에 참으로 기대가 크다. 아쉽다. 껍데기로 화려함이 아닌 진정한 콘텐츠의 알맹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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