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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보복의 수단이 돼버린 불화수소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7월22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19년07월22일 12시47분

작성자

  • 이덕환
  • 서강대학교 화학과 명예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

메타정보

본문

  낯선 불화수소(에칭가스)가 우리 사회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상황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중하다. 자칫하면 반도체 신화가 무너지고, 국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될 위기 상황이다. 반도체 신화를 이어갈 대안을 찾는 일이 만만치 않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대기업이 국산 불화수소를 의도적으로 쓰지 않는다는 중기부 장관의 어처구니없는 지적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산업 현장을 전혀 모르는 정치권의 선무당들이 쏟아내는 어설픈 훈수로는 난관을 극복할 수 없다. 기술적 문제는 세계 초일류로 성장한 반도체 기업들에게 맡겨두는 것이 상식이다. 정부와 여당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일본이 경제보복에 나서도록 만든 과거사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우리의 입장을 지지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우리의 외교력이 국제 사회의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정의 감초(甘草)

 

  대한화학회에서는 ‘플루오린화수소’라고 부르는 불화수소는 유리(산화규소)와 실리콘(규소)을 녹이는 별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특성 때문에 불화수소는 유리병에 담아둘 수도 없고, 유리기구와 함께 사용할 수도 없는 고약한 물질이다. 형석(螢石)을 진한 황산에 녹인 후에 섭씨 200도 정도로 가열해서 생산할 수 있는 불화수소는 톤당 1,200달러의 비교적 싼 물질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전 세계 불화수소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생산한다. 북한도 상당한 양의 형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리를 녹이는 불화수소의 별난 특성이 반도체 공정에는 기적과도 같은 것이다. 실리콘 웨이퍼에 감광액(포토레지스트)으로 새겨놓은 정교한 회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불화수소가 불필요한 실리콘 성분을 녹여내는 에칭(etching: 蝕刻<식각>) 공정을 가능하게 해준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웨이퍼에 남아있는 이물질을 제거하는 세척액으로도 쓴다. 불화수소는 끓는점이 19.5도로 낮기 때문에 별도의 건조 공정이 필요하지 않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반도체 생산에 엄청난 양의 불화수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거의 전량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반도체 공정용 불화수소는 연간 약 4만 톤 정도로 추정된다. 우리가 생산하는 D램이 세계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결코 많은 양이 아니다. 결국 불화수소는 반도체를 구성하는 핵심 원료는 아니지만 반도체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되는 감초와 같은 소재다.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99.999%(불순물 10ppm) 이상의 고순도 불화수소는 70% 이상이 일본에서 생산되고, 가격은 톤당 2,500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저순도 불화수소는 범용(汎用) 소재

 

  불화수소는 반도체 공정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오늘날 모든 가정의 필수품이 된 가정용 에어컨·냉장고는 1920년대 듀퐁의 화학자인 토마스 미즐리가 불화수소를 이용해서 개발한 프레온(CFC)을 냉매(冷媒)로 사용하면서 가능해진 제품이다. 프레온은 산업용 냉매로 사용하던 냄새가 고약하고 맹독성인 암모니아와 달리 무색·무미·무취·무독성의 물질이다. 그러나 프레온에 들어있는 염소가 성층권의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염소가 포함된 프레온은 생산이 금지되었다. 지금은 염소가 포함되지 않은 프레온 가스가 사용되고 있다. 불화수소 소비량의 35%가 그런 CFC 생산에 사용된다.

  불화수소는 알루미늄 제련, 코팅이나 필름으로 활용되는 테플론(PTFE) 합성, 정유 공장에서 휘발유의 옥탄가를 높여주는 알킬화 촉매 등으로도 널리 활용된다.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도 불소의 화합물이고, 우라늄 농축에도 불화수소가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 범용으로 사용되는 4만 톤 정도의 불화수소는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한다.

 

  1995년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테러에 사용되어 일본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사린가스가 불소의 화합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린가스의 제조에는 불화수소가 아니라 훨씬 쉽게 구할 수 있고, 취급하기도 좋은 불화나트륨이 사용된다. 불화나트륨은 인회석(燐灰石)을 재료로 사용하는 인산비료 공장의 굴뚝에서 채취할 수 있는 흰색 고체 물질이다. 반도체 공정에 사용하기 위해 고순도로 정제한 불화수소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김정남 암살에 사용된 VX는 불소의 화합물이 아니다. 우라늄 농축에서 저순도의 불화수소를 물에 녹인 불산을 사용한다. 일본산 고순도 불화수소가 반도체 산업이 없는 북한으로 밀반출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억지다.

  

쉽지 않은 반도체용 소재 국산화의 꿈

 

  불화수소를 정제하는 기술은 쉬운 것은 아니지만 개발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고 할 수도 없다. 불화수소에 남아있는 규소 성분의 불순물을 제거해서 99.99% 수준으로 정제하는 데는 일반적인 증류(蒸溜) 기술이 사용된다. 규소·붕소·비소·인·황·염소 등 불순물을 10ppm(순도 99.999%) 이하가 되도록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불순물의 종류에 따라 특화된 증류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불순물의 농도가 0.001ppb 수준까지 정제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도가 높아지면 불화수소의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하려면 당장 고도의 정제 설비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충분한 기술력을 축적한 인력을 확보하고,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 1980년대부터 정부 주도로 정밀화학에 대한 투자를 계속해왔지만 충분한 기술 인력과 품질관리 노하우를 확보하는 노력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원료의 투입에서 제품 생산이 자동화된 일관 공정으로 진행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도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소재의 품질을 확실하게 검증하지 않으면 제품의 품질을 보증할 수 없다. 불화수소처럼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경우에는 굳이 소재의 품질을 검증하는 모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소재 구입처의 다변화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은 그런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억지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일본산 불화수소에만 매달렸던 것은 아쉬운 일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과연 국산화가 최선의 대책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일본이 자유무역 체제를 거부한다고 해서 우리까지 국제적 분업과 협업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작정 추진한 국산화가 오히려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화학산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거부감도 소재 국산화의 걸림돌이다. 특히 2012년 구미 불산(불화수소) 폭발사고 이후 상황은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정밀화학 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유럽연합의 규제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제정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탓에 새로운 화학 소재를 활용하거나 개발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화학물질의 독성 자료를 핑계로 무의미한 동물실험만 강요하는 화평법과 화관법이 화학사고 예방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화학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고순도 불화수소와 같은 정밀소재화학산업의 발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꿈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된 후에 정부가 떠들썩하게 내놓은 부품·소재 국산화 정책은 의미가 없다. 그런 정책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일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준비도 없이 쏟아 붓는 예산은 아무 성과도 낼 수 없는 낭비로 끝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반도체 산업이 존재하지 않는 러시아가 반도체 공정에서만 사용하는 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한다는 사실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정부의 미숙한 외교의 불똥이 국민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현실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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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7월22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19년07월22일 12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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