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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SLBM 발사, 트럼프 ‘탄핵 위기’에 대한 김정은의 '트럼프놀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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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10월03일 09시02분
  • 최종수정 2019년10월03일 23시11분

작성자

  • 장성민
  •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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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로 예정된 북·미 간 실무회담 재개를 불과 이틀 앞둔 2일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가 이뤄졌다. 또다시 트럼프를 가지고 놀겠다는 김정은의 '트럼프놀이'가 시작됐다.

북한이 어제 강원도 원산 북동쪽 해상에서 SLBM으로 추정되는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2일 오전 7시 11분쯤 강원도 원산 북동쪽 17㎞ 해상에서 동쪽으로 발사한 미상의 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며 “이번에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SLBM인 북극성 계열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미사일의 최대 비행고도는 910여㎞, 거리는 약 450㎞로 탐지됐다.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지난달 10일 평안남도 개천 일대에서 단거리 발사체를 쏜 지 22일 만이며, 올해 들어 11번째 미사일 도발이다.

왜 지금 이 시점에 북한이 SLBM을 쏘았을까? 그것도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3개월 넘게 지연됐던 북미 간 비핵화 실무협상 일정을 발표한 지 13시간 만에 발사했을까? 북한이 SLBM을 발사한 배경과 전략적 의도는 어떤 것이고, 임박한 북미 실무협상에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북한의 해상 SLBM 발사는 3년여 만이다.
북한은 2016년 8월 24일 동해상에서 SLBM인 북극성-1형을 2200t 규모의 신포급(고래급) 잠수함에서 시험 발사해서 약 500㎞를 비행했다. 이후 북한은 성능을 개량한 북극성-3형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발사된 미사일의 비행고도가 910여㎞로 북극성-1형 발사 당시의 500∼600㎞보다 최소 300㎞를 더 올라갔다는 점에서 비행거리가 2천∼2천500여㎞에 이르는 ‘북극성-3형’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2017년 8월 23일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의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 시찰 소식을 전하면서 벽에 붙어 있는 SLBM '북극성-3형'의 구조도를 슬쩍 공개한 바 있다. 한미 군 당국은 북극성 계열을 준(準)중거리 탄도미사일(MRBM)로 분류한다. MRBM은 사거리가 1000~3000㎞다. 한반도 전역은 물론 일본까지 사정권에 둔다.

이와 관련 북한은 지난 7월 23일 김정은이 신형 잠수함을 시찰하는 사진과 동영상을 공개했는데, 기존 신포급 잠수함보다 크기가 훨씬 큰 3000t급일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도 위성 사진을 분석해 3000t급 잠수함 건조 가능성을 시사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이번 북극성-3형이 신형 잠수함에서 발사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 CNN 방송은 미국 정부가 이번에 발사된 ‘북극성 계열’의 탄도미사일이 수중 발사대에서 쏘아 올려진 것으로 파악한다고 보도했다. CNN은 관련 상황에 밝은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미사일이 SLBM으로 쓰일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이날 시험에서는 잠수함으로부터 발사되지 않은 것으로 미국 정부가 평가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과거에도 수중 발사대로 미사일을 발사한 적이 있다”며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대화를 시작한 이후로는 이번 미사일 발사가 처음”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 문재인 두 대통령이 김정은과 연애편지나  주고 받으며, 또는 '중재자' '촉진자'를 자처하며 지난 20개월간 대북 협상에 허송세월을 보내는 동안, 북한은 핵(核)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SLBM, 이스칸데르, 초대형 방사포 등 각종 무기 체계를 완성해 나갔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이번에 기존의 단거리 미사일이나 대형 방사포가 아닌 SLBM을 발사했을까? 가장 직접적으로는 1일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우리 군이 도입한 F-35A 스텔스 전폭기 등 전략 무기가 공개된 것에 대한 반발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그동안 북한은 자신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고 북한 상공에 진입해서 김정은의 주석궁이나 핵 시설, 미사일 기지 등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F-35A 전투기에 대해 강도 높게 비난해왔다. 특히 지난 8월에는 외무성 담화를 통해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남한 당국이 합동군사연습이 끝나기 바쁘게 F-35A 스텔스 전투기들을 미국으로부터 또 끌어들이고 있다”며 “이러한 첨단 살인장비들의 지속적인 반입은 북남공동선언들과 북남군사분야합의서를 정면 부정한 엄중한 도발”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과거 김정일 때부터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었던 스텔스 전투기 공개에 맞서 자신들도 가공할 신형 SLBM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북한의 갑작스러운 SLBM 발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북한이 북미 실무협상 시점을 5일로 발표한 지 불과 13시간 만에, 그리고 실무협상을 사흘 앞둔 시점에서 미국이 위협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SLBM을 발사했기 때문이다. 특히 SLBM은 은밀한 기동(機動)이 가능한 잠수함에서 발사하기 때문에 탐지와 추적이 어렵고 요격이 쉽지 않아 미국에도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전략무기라는 점에서, 그동안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 의미를 축소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의 SLBM 프로그램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함께 미국과 역내 동맹국에 대한 가장 큰 군사적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발사가 북한과 미국이 5일 비핵화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수 시간 만에(just hours after) 이뤄졌다”면서 미국 국익연구소(Center for the National Interest: CNI)의 해리 카지아니스(Harry J. Kazianis) 한국 담당 국장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그는 “북한이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협상 입장을 매우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하루하루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워싱턴포스트>(WP)도 “미사일 시험은 북한의 군사 능력을 상기시키고 (북한이) 협상에서 거의 양보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시사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면서 “이는 협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긴장을 더 높이겠다는 은연 중의 위협으로 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북한이 협상테이블을 목전에 두고  ‘SLBM 카드’까지 동원한 무력시위를 통해 긴장을 고조시켜서 협상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줬다고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이 미국에 요구하는 ‘새로운 계산법’에는 제재 완화와 더불어 체제 안전보장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달 16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담화를 통해 “우리의 제도안전을 불안하게 하고 발전을 방해하는 위협과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제거될 때에라야 비핵화 논의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제도안전’은 ‘안전보장’을, ‘발전을 방해하는 위협’은 ‘제재’로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미국이 다가올 실무협상에서 북한이 수긍할만한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나오지 않으면, 도발의 수위를 더 높이고 레드라인을 넘는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는 압박의 성격이 강하다. 이는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해 북한이 원하는 정상 간 톱다운 방식의 비핵화 해법과 체제보장, 제재 해제를 미국으로부터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이번 북한의 SLBM 발사는 ‘탄핵 위기’라는 돌발 변수에 대한 김정은의 전략적 판단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김정은은 탄핵 위기에 쫓기고 있는 트럼프를 SLBM 발사라는 위협적인 무력시위를 통해 더욱 다급하게 만들어서 자신이 원하는 협상의 결과에 합의하게끔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이 기존에 고수하고 있는 ‘영변+α’나 ‘제재 고수’ 등을 철회하고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낮은 수위’의 협상안을 들고 실무회담 테이블로 나오게 하겠다는 전략적 의도인 것이다. 하지만 과연 김정은의 의도대로 북미 비핵화 협상판이 움직일지는 의문이다. 지금 탄핵 문제에 골몰해 있는 트럼프가 북한이 원하는 ‘낮은 수준’의 비핵화 협상에 합의한다면, 이는 탄핵 문제를 희석화시키거나 덮을 수 있는 ‘외교적 성과’로 인식되기보다, 오히려 의회와 여론의 더 큰 비난과 비판 속에 더욱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북미 간 긴박한 외교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여전히 상황파악이 전혀 안 되는 ‘깜깜이 외교’속에서 헤매고 있다. 실제로 북한이 실무회담 일정을 발표하는 순간에도 우리 외교당국은 관련 동향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도 정보 공유에 미온적이고, 북한으로부터도 별다른 메시지를 받지 못한 채 ‘배신적 행위’, ‘수작질한다’는 막말로 얻어맞기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연일 11월 김정은의 부산 답방 띄우기에 급급하면서 애걸복걸하고 있고, 국방부 장관은 이번 SLBM 발사도 ‘미사일 발사 금지’는 문구에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에 ‘9.19 남북군사합의’에 위반하지 않는다는 기막힌 해석을 내놓고 있으며, 2년여 전 북한의 북극성 미사일 발사를 ‘강력 규탄’했던 문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잠시나마 ‘조국(曺國) 사태’에 쏠린 관심을 돌려준 데 대한 고마움 때문일까, 아니면 사활을 건 내년 총선 승리를 가져다줄 김정은의 ‘간계(奸計)’에 대한 맹신(盲信)때문일까?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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