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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왜 실패하는가?…재난기본소득을 보는 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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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5월04일 17시10분

작성자

  • 조장옥
  •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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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기억 못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장영자씨는 과거 한 때 어마어마한 채권 사기로 유명 인사였다. 그녀가 한 말 가운데 ‘경제는 유통이다’라는 말이 있다. ‘유통’을 ‘순환’이라고 바꾸면 경제학이 가르치는 거시경제를 너무나 잘 묘사한 것이다. 아래 그림은 경제 교과서에서 묘사하고 있는 국민경제의 순환도이다. 다양한 경제주체가 여러 가지 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을 모형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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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순환이다 

 

경제의 순환에 참여하는 경제주체는 크게 구분하면 가계, 기업, 정부, 외국이 있고 이들이 활동하는 시장은 생산요소시장, 재화시장 및 금융시장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가계는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수단)를 소유한 경제주체로 생산요소시장에서 생산요소를 공급하고 그 대가로 요소소득을 얻는다. 그리고 요소소득을 소비의 대가로 재화시장에 지출하거나 금융시장에 저축한다. 

 

기업은 생산 활동을 하는 경제주체이다. 기업은 생산요소시장에서 생산요소를 고용해 산출물을 생산한다. 그리고 생산요소를 고용한 대가로 요소비용을 지급한다. 이윤이 발생하면 기업의 소유주(가계)에게 배당으로 지급한다. 한편 기업은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를 가계, 다른 기업, 정부 그리고 외국에 판매한다. 그리고 재화를 구매한 가계, 다른 기업, 정부, 외국은 기업에 대가를 지급(지출)한다. 

 

정부는 가계나 기업과 독립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기 때문에 외생적(exogenous)인 경제주체로 취급된다. 그렇다고 정부가 경제 상황을 완전히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부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정부지출(구매)을 늘리거나 조세를 깎아준다. 반대의 경우에는 물론 정부 지출을 줄이거나 조세를 증가시킨다. 거둬들인 조세가 정부지출보다 적을 때는 정부공채를 발행해 금융시장에서 빚을 내 쓰기도 한다. 이와 같이 축적된 빚이 정부부채이다. 

 

외국은 우리와 세 가지 교류를 한다. ① 재화와 서비스를 무역을 통해 거래한다. 때로는 수출보다는 수입을 많이 할 수(무역적자) 있고 반대로 수입보다는 수출을 많이 할 수도(무역흑자) 있다. 수출과 수입을 합해 국내총생산의 비율로 나타낸 것을 대외의존도라고 한다. ② 금융자산을 거래한다. 우리 국민이 외국의 주식, 채권, 부동산과 같은 자산을 취득할 수 있고 외국인도 우리나라에서 같은 금융투자를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거래에는 외환의 유출입이 따른다. ③ 인력을 포함한 생산요소를 교류한다. 우리 노동자들이 외국에 나가 일을 해 소득을 얻을 수도 있고,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소득을 벌 수 있다. 물론 인력의 국가 간 이동은 각국의 이민법 때문에 재화나 자본 거래만큼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가계, 기업, 정부, 외국과 같은 경제주체들이 활동하고 거래하는 시장에는 크게 재화시장, 생산요소시장, 금융시장 등 세 가지가 존재한다. 앞의 그림에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시장이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재화시장은 기업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장이다. 재화시장의 균형에 의해 생산량과 상품 및 서비스의 가격이 결정된다.

 

 생산요소시장은 기업의 생산 활동에 투입되는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가 거래되는 시장이다. 생산요소시장에서 각각의 생산요소의 고용량과 노동의 가격인 임금 및 자본의 임대가격 등이 결정된다.

 금융시장은 자금의 공급과 차입이 이루어지는 시장이다. 금융시장에는 국내 화폐가 거래되는 화폐시장, 외국 화폐가 거래되는 외환시장,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 여러 형태의 자산이 거래되는 자산시장이 있다. 화폐시장에서는 이자율이 결정되고, 외환시장에서는 자국 화폐와 외국 화폐의 교환비율인 환율이 결정된다.   

 

소득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과 너무나 가까이 존재하기 때문에 소득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그저 웃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 같다. 그러나 소득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원시 인류가 수렵채취로 생활하던 시대에는 저장의 방법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렵과 채취의 과실은 곧 소비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앞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제를 순환의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약 10,000년 전부터 세계 여러 지역에서 수렵채취인들이 독립적으로 농경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약 3,000~5,000년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면서 근동, 중국, 동남아시아,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대부분의 수렵채취인들은 농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농부가 되어 있었다. 

정착과 농업의 시작은 선사 및 역사시대를 통틀어 인간의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도 유·불리에 대한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농업의 시작은 인류 생활수준 진화의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정착과 농업이 시작되면서 소득은 수렵채취시대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하였다. 농업과 함께 생산의 잉여가 발생하고 그 덕택에 계급과 직업의 분화가 일어났다. 인류의 역사에서 소득이 일상적인 고민의 근거가 된 것도 아마 농업이 인류 대부분의 전업이 되고 소비와 분리되면서부터일 것이다. 

 

특화와 분업이 일상사가 되면서 경제의 순환이 소득을 유지 증대시키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핵심이 되었다. 앞의 그림에서 묘사하고 있는 바와 같이 순환으로서의 경제가 시작된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일찍이 설파하였듯이 누군가는 나의 생활에 필요한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나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활동이 합쳐져서 우리의 생활이 되고 경제가 된다. 순환이 없이 소득을 생각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 순환이 없이 경제와 생활수준이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생산이 소비와 분리되면서 소득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혼동이 초래된 것도 사실이다. 수렵채취시대라면 하루 사냥하거나 채집한 식량을 보면 자신이 생산한 가치 곧 소득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업과 특화가 극단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현대경제에서는 자신이 생산한 것의 가치 곧 소득이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내가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가 왜 이것밖에 되지 안 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의문에 대하여 경제학자들은 생산성이라고 답하지만 우리 각자가 자신의 생산성을 측정하기란 전혀 쉬운 과제가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소득은 생산과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앞의 그림에서 순환이 소득을 증가시키지만 순환만으로 소득이 증가하지는 않는다. 순환이 생산을 촉진해야만 한다. 그리고 생산은 순환에 의해 재생산되어야만 소득이 증가한다. 역사에서 서구의 상업혁명은 산업혁명보다 훨씬 앞섰다. 그러나 상업혁명으로 인해 향상된 인류의 소득과 생활수준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상업혁명에 산업혁명이 더해지면서 인류는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물질적 풍요를 달성하였다.  

 

기본소득

 

국민경제의 순환에 못지않게 소득분배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이다. 선진국 가운데 소득재분배를 추구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가만 다를 뿐이다. 기본소득도 그런 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일정한 기본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생계를 안정시키고 소득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을 제거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여 보겠다는 개념이다. 실제로 1970년대 미국과 캐나다에서 작지 않은 관심을 모은 바 있고 몇몇 지역에서는 실험적으로 실행해 본 바도 있다.  

 

최근에 핀란드에서도 기본소득을 실험하였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2017, 2018 2개년에 걸쳐 무작위로 추출한 25세에서 58세 사이의 장기 실업노동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선정된 사람들에게는 각각 월 560유로가 조건 없이 지급되었으며 실업 급여도 역시 중단 없이 지급되었다. 기본소득은 세금납부를 위한 과세표준에서도 제외되었다.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이 새로이 직업을 구해 취업하는 경우에도 기본소득은 변함없이 지급되었다. 비교를 위해 실업급여를 받는 178,000명을 비교대상으로 선정하였으나 기본소득을 지급하지는 않았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이미 끝났으며 지금은 데이터의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실험의 목적은 사회안전망이 사람들의 ① 직업선택, ② 노동의 인센티브, ③ 건강 등에 미치는 효과 등 객관적, 주관적인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전반적인 영향을 측정하고 ④ 관료행정을 어마나 축소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데이터의 분석이 완전히 완료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발표된 자료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지금까지의 분석 결과를 보면 기본소득이 노동시간에 미치는 효과는 없다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결과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을 지급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이 벌어들이는 소득에는 차이가 없음이 발견되었다. 물론 핀란드의 실험은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진행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기본소득이 갖는 함의를 모두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실험의 디자인에서도 몇 가지 결함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재난기본소득을 보는 눈

 

전쟁과 전염병은 역사에서 인류가 가장 큰 피해를 본 재난이다. 전염병이 더욱 그렇다. 실제로 현대적인 방역과 예방접종이 실시되기 전에는 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하기보다 전염병으로 사망한 군인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비롯하여 자가 격리 등 경제의 순환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거나 중단되고 있다. 세계의 가치사슬 또한 거의 멈추다시피 하였다. 몇몇 나라에서 발표한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은 국민경제와 세계 가치사슬의 순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중국, 스페인, 벨기에, 미국의 GDP 증가율은 각각 –9.8%, -5.2%, -3.9%, -1.2%로 소득이 모두 감소하였으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4%였다.

 

위기이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하여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기본소득을 정책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전염병으로 인하여 경제의 순환이 멈추고 수요가 위축되어 있으니 국민들에게 구매력을 부여하여 경기를 부양해 보겠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모든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한다. 지금의 위급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하여야 할 것은 기본소득은 아직 연구단계에 있으며 그 효과가 어떨 것인지도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밝혀진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현명한 정책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특히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방식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지급하겠다는 재난기본소득이 별 의미가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터인데 그런 사람들의 지출이 그만큼 증가할 것 같지 않다. 이재용, 정의선, 최태원 등에게 재난기본소득 30만원, 60만원, 100만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의 승수는 아마도 0.5가 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이야말로 예산을 현명하게 사용하여야 할 때이다. 소득의 순환이 회복될 때까지 견딜 여력이 있는 국민에게는 재난기본소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의 복귀가 무엇보다 긴요하다. 지금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몰락을 막아야 할 때이다. 

그리고 경제의 순환이 멈추면서 실업에 놓이거나 고통 받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크게 확대하여야만 한다. 정상적인 순환이 회복될 때까지 얼마나 더 많은 재정지출이 필요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을 유념해야만 한다. 

 

잘 살펴보고 시행하는 정책도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물며 따져보지 않고 펼치는 정책이 성공하기란 난망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경제의 순환을 회복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이다. 재난기본소득이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기 어려우나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문재인정부 3년 동안의 실정을 바로잡아 일상이 회복된 다음 국민경제의 순환을 보다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무조건적 정규직화,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최고 법인세율 인상, 무리한 노동시간 단축, 노동조합의 전횡 방치, 원전 축소와 같은 무리한 에너지 정책, 생각이 없는 현금복지 등 국민경제순환의 비용을 증가시키거나 경직성을 높이는 정책의 연속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재난기본소득을 열 번쯤 지급하고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다고 해도 그 이전으로 복귀하는 것은 난망하다.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일본식 장기불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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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5월04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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