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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이냐 분열이냐,국가흥망의 교훈#20 : 잔학한 황제로 이어진 북제北齊(Q)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04월16일 17시05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5

본문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

 

   

 <104> 고담의 화사개 총애(AD563)

 

고담이 화사개를 총애함이 지나쳤다. 고담이 정무를 보든지 연회를 열든지 항상 화사개는 옆에 있었으며 잠깐 사이라도 떨어지면 고담이 불안해했다. 여러 날 집으로 가지 않고 궁궐에 머무는 날이 많았고 하루에도 여러 번 독방으로 불러 들어가기도 했다. 놓아준 다음에도 다시 쫓아가 부르기도 했으며 돌아오지 않으면 또 다시 기병을 보내 독촉하기도 했다.  

 

화사개는 간사하게 아첨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으며 매번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여 고담을 즐겁고 기쁘게 만들었다. 당연히 고담이 화사개에게 내린 상은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었다. 좌우에서 시종할 때의 언사가 매우 비열하고 무례하여 군신간의 예의나 질서를 온통 무시하였다. 항상 이렇게 고담에게 말했다

 

 

  “ 천하 명군 요순이나 혼군 걸주나 무엇이 크게 다르겠습니까.

    폐하께서는 혈기가 왕성하신 연세이시니

    뜻하는 모든 즐거움을 다 누리십시오.

    하루의 즐거움은 천 년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하들이 국사를 잘못 다룰까 염려하시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나라는 잘 굴러가게 되어있습니다.”

 

고담은 나라가 제대로 잘 굴러간다는 말에 흡족해 하면서 오락놀이에 빠져들었다. 이 때 고담의 주변에서 정권을 완전히 장악한 사람은 화사개를 중심으로 조언심, 원문요, 당옹, 풍자종, 호장찬 이렇게 여섯 명이었다.  

 

 

<105> 북주-돌궐의 북제 침공(AD563-AD564)

 

북주가 돌궐의 목간가한과 연합하여 북제를 칠 계획을 꾸몄다. 북주는 목간가한의 딸을 받아들여 황후로 삼기로 하고 양천과 왕경을 돌궐에 사신으로 보내 동맹을 맺었다. 당시 돌궐은 지금의 몽골과 내몽골 지역 전역을 차지하는 막대한 세력이었다.

   

북제에서는 북주과 돌궐 연대 소식을 듣고 더 많은 선물과 혼인관계를 가지고 연대를 제의하였다. 목간가한은 북제의 조건이 북주의 조건보다 훨씬 더 나았으므로 북주 사신 양천과 왕경을 압송하여 북제로 보낼 생각이었다. 양천이 목간가한을 크게 꾸짖었다.

 

  “ 태조(우문태)께서 옛날에 그대와 더불어 우호를 돈독히 하고

    연연부락 사람들이 투항해 오면 하나같이 

    그대에게 보내 그대가 기쁘게 받았는데  

    그 은혜를 저버리고 부정하게 행동하다니

    하늘의 귀신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목간가한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 그대의 말이 맞다. 

    내 뜻은 결정되었으니 로 더불어 동쪽 적(북제)을 물리치도록 한다.

    그런 다음에 내 딸을 보내겠다.”

 

목간가한이 양천과 왕경을 돌려보냈다. 북주에서는 주국 양충이 1만 기병을 거느리고 돌궐군과 함께 북쪽으로부터 내려오고 대장군 달해무는 3만 보병을 거느리고 평양(산서성 임분)을 거쳐 북제의 수도 진양에서 합류하도록 계획했다.

 

북주의 양충은 파죽지세로 북제의 북쪽지역 성들을 함락시켰다. 돌궐에서는 10만의 기병을 보내와 세 갈래로 나누어 항주(산서성 대동시)로 내려왔다. 북제의 고담은 업에서 서둘러 진양으로 달려왔다.    

 

북제의 곡률광은 보병 3만을 가지고 평양 방어에 임했다. 고담은 궁녀들에게 군복을 입혀 수행하게 하면서 틈만 있으면 동쪽으로 피할 생각이었다. 고예와 고효완(고징의 아들)은 강력하게 항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전군을 통솔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고담은 6군의 통수권을 고예에게 내려주는 한편 병주자사 단소가 전쟁의 총지도자가 되게 하였다. 가까스로 북제군이 위용을 갖추고 전쟁에 임하는 동안 진양 북성 주변에 몰려온 돌궐은 북제 군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돌궐의 장수가 말했다.

 

  “ 너희들이 지난 번 북제의 군사기강이 흐트러졌다고 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다.

    눈에는 쇠의 기운이 보인다.(안중유철)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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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과 북주의 군대가 먼저 공격해 들어왔지만 눈이 많이 내린 까닭에 북주와 돌궐의 기병 움직임이 둔하여 북제의 단소가 훌륭하게 방어해 낼 수 있었다. 단소는 패주하는 돌궐과 북주를 쫓아가지 않고 수비에 치중했다.  

 

<106> 곡률광의 탄식(AD564)

 

평양을 공격하던 북주 달해무는 진양전투에서 양충이 패부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북제의 사공 곡률광이 그에게 편지를 띄워 보냈다.

 

  “ 큰 기러기는 이미 달아났건만

    그물 치는 어부는 아직도 습지를 쳐다보고 있구나.”

 

달해무는 그제야 양충이 후퇴한 것을 깨닫고 군사를 물려 돌아갔다.   

 

곡률광은 서둘러 진양으로 달려갔다. 고담은 큰 환난을 겪은 공포에 곡률광을 끌어안고 통곡했다. 임성왕 고개(고담의 동생이다)가 나서서 말렸다.

 

   “ 어찌 이렇게 나약함을 보이십니까. ”

 

고담이 울음을 그쳤다. 고양이 집권할 때(AD550-AD559)만 하더라도 북제가 두려운 북주는 겨울이면 황하의 얼음을 깨어서 군대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했는데 이제는 바뀌어 북제가 겨울 강바닥을 깨는 형편이 되었다. 곡률광은 이렇게 된 것이 고담이 집권하면서 형편없는 인간들이 조정을 휘두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국가는 항상 관(관중지역)과 농(농서지역)을 삼킬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오늘날에는 오로지 음악과 여색만 맑히고 있으니

   앞으로 나라가 어찌 될 것인가?  

 


<107> 북제의 율령반포(AD564)

 

북제는 오랜 숙원사업이던 율령체계를 완성했다. 율은 12편이었고 령은 40권이었다. 형벌은 크게 다섯 종류였는데 사, 유, 형, 편 및 장으로 되어 있었다. 

 

   ①死 : 환열-효수-참수-교수의 네 등급 

   ②流  

   ③刑 : 1년 - 5년의 5등급  

   ④鞭 : 40대 - 100대의 5등급

   ⑤丈 : 10대 – 30대의 3등급

 

일 년 전 북주가 마련한 25등급(각 등급마다 다섯 계단) 형벌체계 보다는 간결하였다. 18세가 되면 나라로부터 경작지를 얻게 되는데 그 대신 租(토지소득세)와 調(지역특산물세)를 내어야 한다. 또한 20세 이상 60세 까지는 반드시 병역에 동원되어야 한다. 66세가 되면 토지를 돌려주되 세금부담이 없어진다. 결혼한 한명은 80무, 부인은 40무, 노비는 성인으로 간주되었다. 소를 가진 사람은 추가로 60무를 받았다.

 

한 가정의 특산물세(調)는 비단 1필과 면 8량이었다. 토지세인 조租는 통상 2석이었다. 노비에 대한 조租는 양인의 절반이었다. 

 


<108> 고담이 조카를 죽임(AD564)

 

고담은 상서령 고예를 최고행정직인 녹상서사로 임명하고 사도 누예를 태위로 삼았다. 태부 단소는 태사로, 임성왕 고개는 대장군이 되었다. 

 

이 때 이상한 하늘에 징조가 나타났다. 겹 무지개가 태양을 둘러쌌는데 태양이 무지개를 지나치려고 해도 뚫지를 못했다. 그리고 밤에는 붉은 별이 나타나기도 했다. 고담은 불길하다고 생각하고 형 고연의 맏아들 고백년을 통해서 사전에 액땜하기로 했다.    

 

당시 여덟 살이던 고백년이 스승에게 글을 배우면서 ‘칙勅’이라는 글자를 여러 번 쓴 적이 있었는데 스승이 그것을 봉함하여 고담에게 건넸다. 고담은 황제만 쓸 수 있는 칙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쓴 고백년을 소환했다. 어린 고백년은 이 사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패옥과 요대를 풀어 벗고 부인 곡률씨에게 맡기고 황제 고담에게로 갔다.

 

고담은 고백년에게 칙자를 써보라고 한 다음에 자신이 갖고 있는 글자와 비교하여 동일함을 확인했다. 고담은 주변에게 명하여 마구 채찍질을 하도록 한 다음 피를 흘리는 고백년을 끌고 당하로 내려가 또 때렸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정신을 잃고 몸이 늘어지자 칼로 고백년의 목을 벤 다음 시신을 연못에 던졌다. 연못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낙릉왕비 곡률씨는 패옥을 쥐고 며칠을 울며 음식을 먹지 않다가 죽었는데 손에는 끝까지 패옥을 놓지 않았다. 아버지 곡률광이 딸의 손을 펴고 나서야 쥔 손이 풀렸다.     

 

 

<109> 북제가 우문호 모친을 돌려보냄(AD564)

 

북주 태조 우문태가 하발악을 따라 관중으로 갈 때 우문태의 어머니 염씨와 고모들은 모두 진양에 살고 있었다. 북제와 북주 사이가 나빠지면서 북제는 염씨와 고모들을 모두 궁궐 하녀로 배속시켰다. 우문태가 죽고 동생 우문호가 집권하면서 북제에 간첩을 들여보내 어머니를 찾았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북제가 북주에 사람을 보내 옥벽(산서성 직산)에서 물자교류를 하자고 제안했는데 우문호가 그것을 허락하면서 이 기회에 어머니를 찾도록 지시하였다. 동시에 사람을 북제 조정에 보내 서로 통교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북주가 돌궐과 함께 진양을 공격한 것이 일 년도 되지 않았고 또 북주가 돌궐과 함께 재침공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므로 북제는 흔쾌히 수교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호의를 보이는 뜻으로 우문호의 모친 염씨와 고모를 모두 장안으로 돌려보내기로 약속하고 먼저 고모들만 보냈다. 

 

우문호의 고모가 돌아올 때 북제에서는 우문호의 어머니가 기억하고 있는 우문호 어릴 적 몇 가지 일을 적어서 알리고 동시에 어머니 염씨가 입고 있던 비단 도포도 함께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보내 신임의 증표로 삼게 하였다.

 

 

  ” 내가 천 년에 한 번 있을 천운을 만나 

    북제의 은덕을 깊게 받아서 지금 이날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또 너희를 만날 것을 허락받았다.    

    이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늘 이후 나의 삶은 오직 네 손에 달려있으니

    어둡다고 하면서 속이고 나를 저버리려 하지마라“

 

우문호는 울면서 어머니에 대한 답신을 보냈다. 북제에서는 염씨를 인질삼아 우문호에게 편지를 여러 번 보내 확실한 불침 약속을 받아내고 싶었지만 편지만 몇 번 오고갈 뿐 확답은 없었다. 북제 고담은 진양에서 수비하고 있는 단소에게 사람을 보내 의견을 물었다. 단소가 이렇게 답했다.

 

  ” 주나라 사람들은 오락가락 하는 사람들입니다.

   통교하자고 해 놓고 아직 사신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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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먼저 어머니를 먼저 보내버리면

   우리가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꼴이 됩니다.

   약속만 해놓고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저쪽이 몸이 달아

   확실한 약속을 내놓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보내도 늦지 않습니다.“

 

고담은 단소의 말을 듣지 않고 바로 염씨를 장안으로 보내버렸다. 우문호는 35년 만에 생모를 만났다.

 

 

<110> 실패한 북주의 동진(AD564) 

 

북주 우문호는 고맙게 어머니를 돌려받았으므로 북제를 공격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돌궐은 그렇지 않았다. 독자적으로도 여러 번 유주(북경부근)를 공격하였지만 전에 약속한 대로 북주와 연합하여 북제를 침략하기를 종용했다. 우문호는 돌궐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군 20만 명을 징발하여 동쪽으로 군사를 일으켰다. 동관에 다다르자 우문호는 중군 10만 명을 주국 울지형의 지도아래 낙양으로 향하게 했고 권경선은 남쪽으로 나아가 여남을 포위하게 했다. 양표는 북쪽으로 나아가 제원으로 진군했다. 

 

양표는 과거 북제와의 전투에서 한 번도 진적이 었었으므로 매우 교만해 있었다. 깊숙이 북제 영역으로 진출하고서도 방비를 하지 않았다. 그런 무방비 상태를 알아차린 북제의 태위 누예가 매복 급습하는 바람에 양표는 사로잡히고 북주군사들이 패배했다. 반면 남쪽으로 나아간 권경선은 현호(하남성 여남)를 포위하자 북제의 예주자사 고사량과 영주자사 소세이가 북주에 항복하고 나왔다. 

 

우문호와 울지형이 10만 대군으로 직접 진두 지휘한 낙양공격은 30일이 넘도록 이기지 못했다. 북제에서는 곡률광을 낙양으로 투입하고 단소를 불러 물었다.

 

 

 

  ” 지금 낙양이 위태로우니 그대 단소를 보내 방어하고자 한다.

    그러나 돌궐이 북쪽을 위협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소가 대답했다.

 

  ” 돌궐은 옴이나 종기 같은 무리에 불과합니다.

    지금 급한 것은 서쪽의 북주입니다.

    이들은 가슴과 배의 질병과도 같습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고담은 기병 1천을 붙여서 단소와 함께 급히 낙양으로 보냈다. 그리고 자신도 낙양으로 내려왔다. 5일 만에 태원서 부터 낙양까지 400여 킬로미터를 달려 온 단소는 곧바로 군사를 조직하여 좌군을 맡고 중군은 난릉왕 고장공(고징의 아들), 그리고 우군은 곡률광이 맡았다.  

 

단소가 번개같이 진양에서 낙양으로 내려왔다는 소문을 들은 북주 군사들은 매우 놀라고 두려웠다. 단소의 좌군은 성공적으로 북주군을 격파했다. 난릉왕 고장공의 우군도 500여 돌격기병을 이끌고 북주군영으로 치고 들어가니 북주군들이 군영을 버리고 도주하였다. 

북주의 선봉 우문헌과 달해무가 곡률광과 싸워 곡률광이 쫒기는 형편이 되었는데 도만가던 곡률광의 화살이 북주군 장수 왕웅의 이마를 관통하면서 북주군의 사기도 많이 꺾이게 되었다. 달해무가 우문헌에게 말했다.

 

   ” 밤을 이용하여 군사를 물리시지 않으면

     내일은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저 달해무는 전쟁터에 오래 있어봤기 때문에 

     형세라는 것을 좀 압니다. 

     경험과 경륜이 부족한 공은 어찌 우리 군사를 

     호랑이 입에다 내맡길 수 있습니까?“

 

마침내 우문헌과 달해무가 군사를 돌려 후퇴했다. 권경선도 여남을 버리고 퇴각했다. 애초 북주 대총재 우문호는 장수로서의 지략도 없었지만 이번 전쟁을 이기고 싶은 욕망도 없었다. 우문호의 북제 침략 작전이 허망하게 실패했지만 북주 황제 우문옹은 죄를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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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4월16일 17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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