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정권은 정녕 ‘재난' 핑계로 개인 빚을 은행에 떠넘길 작정인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02월15일 17시10분

작성자

메타정보

  • 0

본문

요즘 세상 돌아가는 사정이 하도 수상하기도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일마다 대충 대경실성(大驚失性)할 것들이다 보니 이제 어지간한 충격에는 다들 무덤덤한 모습이다. 그런 와중에도 충격적인 소식이 들린다. 일부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재난 시 영업이 폐쇄되거나 제한되어 타격을 입는 자영업자들이나 소득이 현저히 감소한 개인들이 종전에 은행 등 각종 금융 사업자들에게서 빌려간 빚(대출)을 탕감해 주겠다”는 내용의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지난 2일 영업 제한 또는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거나 경제의 급격한 변동으로 소득이 현저히 감소한 사업자가 은행에 대출 원금 감면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 의원이 발의한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은 강도가 더 세다. 은행법 개정안이 '사업자'로 지원 대상을 한정하고 있는 반면, ‘금소법’ 개정안은 실직•휴직으로 소득이 감소한 개인들을 포함한 모든 '금융소비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은행뿐 아니라 카드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도 대출 원리금 감면 등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밖에도 재난지원책으로 이자 탕감을 제시한 법률 개정안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대규모 자연 재해나 감염병의 대유행 등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영업 제한 등으로 손실이 늘어난 영세사업자나 소상공인들의 손실을 정부가 보상해주는 것은 일면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보상 방법이나 수단에 있어서는 시장경제의 큰 틀을 무너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점에서, 아무리 ‘재난 시’ 라고 해도 은행 대출이나 이자 탕감을 법으로 정해 제도화하는 것은 자칫 국가 경제의 기본 틀을 무너뜨리는 악법이라는 점에서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특히, 이런 법률들이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 표(票)를 의식한 것이라면 이는 결국 매표(買票) 행위이자 사회 파괴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아래에, 이런 무모하기 짝이 없는 선심성 법률을 무리하게 제정하는 것이 어떤 문제를 잉태하는 것이고, 왜 악법(惡法)이 되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첫째; 은행들은 국가경제 시스템에서 무슨 역할을 담당하는가?  

 

우선, 은행 혹은 금융 사업자들이란 우리 경제 내에서 대관절 무슨 역할을 담당하는 기구들인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현재 주어진 상황, 기호(嗜好), 능력 등에 따라 소득과 지출의 시기 및 규모 면에서 다양한 차이가 있다. 이에 따라, 한 사회 내에는 자금 ‘잉여’ 부문과 ‘부족’ 부문이 생겨나고, 서로 자금을 ‘융통’하는 거래를 통해 장래에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이는 현재 소비를 희생해 생기는 잉여 자금을 운용해서 장래에 더 큰 보상을 기대하는 반면, 탁월한 사업 구상을 가진 기업가(起業家)들은 장래 예상되는 수익으로 적절히 보상할 것을 상정하고 사업 수행에 소요되는 자금을 조달한다.

 

그러나, 이들 두 주체 간에는 자금 거래를 위한 정보 비대칭, 지식 및 기술의 차이 등으로 직접 거래가 이루어지기 어렵고, 그러다 보니, 중간에 매개(媒介) 기능이 필요하게 된다. 이런 자본 융통 거래의 ‘중개’ 역할을 전문적,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생겨나 진화된 기구가 바로 ‘은행’ 이다. 따라서, 은행제도란 나라 경제가 순환하는 과정에서 경제 주체들의 일상 활동에 필수 불가결한 제도인 것이다. 

 

이런 은행들의 ‘중개’ 역할 수행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금전 소비대차(貸借)’ 계약을 통한 ‘리스크’ 고리의 단절 기능이다. 즉, 은행들의 일상 업무는 잉여 자금을 예치하는 예금주들과는 ‘차입’ 형태로, 그리고, 사업에 소요되는 자금이 필요한 수요자들과는 ‘공여’하는 형태의 대차(貸借) 계약의 연속이다. 은행들은 이들 단절된 서로 다른 계약을 통해, 자금 ‘잉여’ 및 ‘부족’ 주체 간에 직접 거래함으로써 생기는 신용 및 시장 리스크 등을 떠맡아 줌으로써 한 경제 내에 자금의 흐름이 원활히 순환되도록 조장하는 것이 기본이다. 

 

통상, 은행들이 엄격한 보수적 영업 자세를 견지하고, 때로는 몰인정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이런 ‘리스크’ 부담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확보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존립 기반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 사회적 역할도 수행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은행 혹은 은행(금융)제도(banking system)란, 다른 주체들이 엄청난 고난을 겪고 있는 중에도 독야청청 ‘불로소득’을 향유하고 있으니, 그들의 이익을 강제적으로 공유해야 하는 시기(猜忌)의 대상이 아니라, 다른 경제 주체들이 안정된 경제 활동을 영위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하는 ‘공기(公器)’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은행 시스템은 한 나라 경제가 재난 등으로 위기에 처할 시에는 더욱 견고하게 유지되어야 할 경제 흐름의 근간이고, 그럴수록 최대한 원활하게 작동될 것이 긴요하다고 할 것이다. 

 

■ 둘째; 지금 우리 은행들은 실제로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 은행들은 물론이고, 우리 은행들도 거의 모두가 상법 상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 운용되고 있고, 거의 모든 경우에 증시(證市)에 상장된 공개된 기업들이다. 역사적으로는 우리 은행들은 초기에는 개인 전주(錢主)나 사(私)기업들이 다수 지분을 보유했으나, 그 후 일시 정부 소유로 넘어갔던 시기를 거쳐 바로 민영화됐다. 이후, 우리 경제가 고도 성장을 이루는 동안에 은행들도 양적으로 급격히 성장했고, 이 과정에서, 다른 부문 기업들과 달리 지분 구성이 비교적 널리 분산되어 일반 주주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 은행에 대한 정부의 지분은 거의 없다. 

 

그리고, 우리 은행들은 겉으로는 ‘국내 토종’ 은행이라고 하지만, 좀 솔직하게 따져 보면, 대부분의 주요 시중은행들 지분에서 외국인 주주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를 넘나든다. 사실상 ‘외국은행’들을 제외해도 시중은행들의 외국인 지분은 평균은 50%를 크게 웃돌고 있다. 그러니, ‘무늬만 국내 은행’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도 하다. 매년 외국인 주주들에게 배당금 형태로 흘러 나가는 금액만도 수 조원을 훌쩍 넘는다. 혹자는 내국인 고객을 상대로 ‘돈(이자) 장사’를 해서 외국인 배만 불린다며 볼멘 소리도 한다. 이렇게 우리 은행들의 외국인 지분율이 높아진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에 국내 금융시장을 개방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한편, 최근 들어 우리나라 은행들은 국내 기업들의 자본 축적이 풍부해지고 국내 금융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영업 신장세가 둔화 내지 정체되자, 은행들의 영업망이 이제 국경을 넘어 글로벌 금융 중심지를 포함한 전세계로 뻗어 나가 해외 시장에서 적극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 은행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규준 및 제도에 대한 변동 조짐은 거의 실시간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전파되는 현실이다. 실제로, 현업에 종사한 경험을 가진 이들은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일이지만, 우리 은행들이 진출해 있는 현지 금융 당국 및 신용 한도 공여 등 금융 거래 관계에 있는 글로벌 대형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우리 은행들의 신용 수준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소한 움직임에도 지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 셋째; 우리 은행들의 경영 환경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일반적으로 은행들은 영업 수익의 대종을 예금/대출 서비스의 가격(금리) 차이에서 얻는다. 이를 나타내는 정성적 지표가 ‘순이자 마진(‘NIM; Net Interest Margin)’이다. 이 지표는 대출 업무에서 얻은 수익에서 자금 조달에 소요된 비용을 차감한 값을 운용 자산 총액으로 나누어 얻는 것으로, 일반 제조업 기업의 ‘영업 이익’에 상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은행 경영의 전형적인 수익성 지표이자 장기적 생존 확률을 나타내는 이 ‘NIM’ 지표가 급감하는 추세다. 이 지표가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글로벌 불경기가 장기화되어 기업들 대출 수요가 감소하는 한편, 금리 수준이 기록적으로 낮게 유지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주요 3대 금융 그룹들의 경우, 2018년 4/4분기에 ‘NIM’이 2.08%~1.85% 수준이던 것이 2019년 3/4분기에는 1.99%~1.72%로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주요 3대 은행들만 떼어놓고 보면, 같은 기간에 1.70%~1.56%에서 1.67%~1.47%로 더욱 가파르게 하락했다. 현재와 같은 영업 환경이 지속하는 한, 향후 이런 하락 추세는 더욱 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역시 국내외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어 대출 수요가 감퇴하는 동시에 제로 금리에 가까운 초(超)저금리 상황이 지속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은행들은 지금 비(非)금리 부문 수익원(源) 발굴을 놓고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이런 시장 요인과는 별개로, 금융시장의 구조적인 판도 자체가 바뀌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할 양상이다. 즉, 근년 들어, 기업 및 개인들의 신용 수준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고, ‘대체(代替)’ 금융 수단을 제공하는 핀테크(Fintech) 금융 혁신 채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다 보니, 은행들이 종전의 독과점 시장에서 누리던 수익 기회는 점차 쇠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SNS 네트워크를 활용한 새로운 지급 결제 채널도 속속 등장하고 있어, 은행들은 전방위의 경쟁 세력들과 필적해야 하는 사면초가인 환경에서 그야말로 생존을 건 악전고투를 벌이는 중이다. 

 

이렇게, 우리 은행들은 ‘초(超)박빙 마진(razor-thin margin)’ 구조를 가지고 있고, 장기적인 수익 구조는 나날이 취약해지는 현실이다. 결과적으로, 4대 금융지주들은 2019년, 2020년에 각각 11조원 전후의 당기순이익을 올려 그나마 선전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그 배경은, 코로나 사태로 기업들의 대출 수요가 급증했고 이에 따른 이자 수익이 늘어난 것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올해는 국내 은행들은 도합 약 10조원 전후의 당기순이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되고(한국금융연구원), 전년대비 17.9% 감소되는 것으로 그야 말로, 악천후 속 험로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 넷째; 은행자산 부실화 뇌관은 바로 자영업자들의 ‘신용 대출’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2020.12)’에 따르면 2020년 3 사분기 기준으로 가계대출 총액은 1,586조원이고, 이 가운데 은행 대출은 821조원, 비(非)은행권 대출은 589조원에 이른다. 이 보고서는, 이는 전년동기 대비 9.4% 증가한 규모이고 증가 추세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최근 현저한 특징은, 청년층 대출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점이다. 이는 최근 주택 가격 상승 국면에서 청년들이 주택 구입을 위해 은행 대출로 몰린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청년들의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 열기가 고조되어 주로, 주식 투자용 자금 확보를 위한 고금리 조건의 단기성 ‘신용’ 대출이 증가한 점이 비상한 관심을 끈다. 

 

이런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빌려간 대출 잔액은 2020년 9월 말 현재 777조원을 넘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동기 대비 16%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업종별로는 도소매, 여가(餘暇) 서비스업 등의 대출이 크게 증가해서 최근 코로나 사태 여파로 매출이 격감해 추가 운전자금에 충당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한국은행이, 향후 예상되는 코로나 사태 시나리오별로 자영업자들의 수지(收支) 변화를 테스트한 결과로는, 2021년 말까지 전 업종의 자영업자들 가운데 ‘흑자’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구는 79% 정도인 반면, 계속해서 ‘적자’ 상태를 유지하는 가구는 약 19%로 추정되고, 흑자에서 새로이 ‘적자’로 전환되는 가구는 1.5%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을 합하면 전체 자영업자들 가운데 약 20%가 넘는 가구가 금년 말 이내에 적자 상태가 된다는 추산이 된다.

 

게다가, 지금 정부의 코로나 사태로 인한 긴급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로 상당 부분의 부실 요인이 억제되고 있어 정확한 추정이 어려우나, 향후, 이들 가운데 실제로 ‘상환불능(자산이 부채를 하회하는 상태)’ 상태가 될 가구가 급증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추정할 수가 있다. 여기에, 전체 자영업자 중에서 약 50%가 금융 자산을 활용하여 적자에 대응할 수 없는 ‘유동성 위험’ 가구로 분류되고 있어, 향후, 언젠가 정부의 긴급 지원 조치가 종료되는 시점에서는 이들 중 상당 수 가구의 재무 상황이 급격히 적자로 반전되거나 악화될 개연성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긴급 조치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들의 기존 대출금의 만기 연장 및 이자 상환 유예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 원리금 상환이 어려운 차주들이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정은 더욱 어려워지게 되고, 따라서 은행 부실을 더욱 키울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자영업자들 대출 가운데, 은행 부실화 ‘폭탄’이 될 위험성이 가장 높은 부분이 바로 담보나 신용보증기관의 보증이 없이 차주 신용 만으로 실행된 ‘신용 대출’ 이다. 이 대출 규모는 약 5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에서는 현재 은행들의 부실채권비율(NPL; 고정 이하 여신/대출금)이 0.65% 수준으로 사상 최저인 점을 들어 은행들이 손실을 흡수할 여력에 아직 여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모양이나, 이는 최근 코로나 사태로 신규 대출이 급증하고, 만기 연장 혹은 이자 상환을 유예하는 등 긴급 지원 대출이 급증해 대출금 규모가 늘어나서 생기는 일시적인 착시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은행들은 오히려 만기 연장 및 이자 유예 조치가 종료되면 부실요인들이 한꺼번에 드러날 ‘깜깜이 부실’로 불안이 커지고 있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나,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나 연구기관들은 한국의 가계 부채 수준이 이미 임계(臨界) 상황에 도달한 것으로 보고 비상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여기에, 만일, 코로나 사태가 예상 외로 장기화하는 경우에는, 이들 자영업자 및 개인 대출, 특히 ‘신용 대출’ 부분이 은행들 자산 부실화 사태를 촉발할 도화선(導火線)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 심각한 점은, 이들 차주들 상당 수가 기업 대출 혹은 주택담보 대출을 받고 있고, 은행뿐 아니라 다른 금융권에서도 대출을 받은 ‘다중(多重) 채무자’ 라는 점이다. 향후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실물 경제 타격이 지속될 경우, 엄청난 파국을 불러올 위험성은 날로 커지는 상황이다.

 

■ 은행이 자영업자들 빚(대출)을 탕감해 주면 예상되는 상황들


정부 당국 및 의료인들이 헌신적인 노력을 쏟으며 사투를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코로나 재앙의 여파로, 소규모 사업자들의 사업 철수 및 도산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은행 대출금 ‘연체(延滯)’ 사태가 본격화할 것이 임박했다는 것은 예견할 수 있다. 이런 위중 형국에, 은행들이 지극히 일부라도, 예를 들어 자영업자 및 개인 대출 총액의 단 몇 퍼센트라도 탕감해 주면 은행들의 연간 당기순이익은 일거에 허공으로 사라지고 모두 적자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가정하고 우리 금융 시스템에 일어날 일들을 상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금 인출 러시(rush); 은행들의 예금 계약은 100% ‘신용’ 거래다. 예금주들은 은행에 10억, 100억을 맡겨도 담보나 보증을 요구하지 않고 오롯이 은행의 신용만을 믿고 예치한다 (단, 예금보험공사의 1인 당 5천만원 한도 지급 보증은 예외).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이 일거에 적자로 전락한다면, 예금주들은 은행 파탄을 우려하여 예금 인출을 위해 폭주(輻輳)할 것이다. 소위 ‘뱅크 런(bank-run)’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경우, 중앙은행 혹은 정부는 “최후의 지급자”로서 발권력 혹은 재정을 동원해 예금 인출에 응하거나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우면 ‘지불 거절’ 사태를 선포하는 것이 유일한 방도다. 그러면, 곧바로 금융 시스템은 파탄되는 것이다.

 

둘째; 채무자들의 ‘모럴 헤저드(Moral Hazard)’; 자영업자 혹은 개인들을 대상으로 은행 대출금을 탕감해 준다고는 하나, 실제로 은행들이 채권을 포기하는 작업을 가정해 볼 때, 어디에다 선을 그어 대상자들을 선정할 지도 지극히 어려울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설령, 어렵사리 일정 기준을 만들어 대상을 선정한다 해도, 신용도가 상위인 차주들도 대출 상환을 해태(懈怠)할 것은 불을 보듯 빤하다. 가뜩이나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조금만 더 신용이 악화되면 대출을 탕감 받을 수 있다면 누가 힘들여 벌어들인 수익으로 대출을 상환하려고 애써 노력할 것인가? 은행 종사자들은 종종 ‘최상의 담보는 차주들 마음 속’ 이라는 말을 한다. 대출을 받아가는 차주들의 열성과 진심이 없다면 은행들은 존립 자체가 불가한 것이다. 

 

셋째; '은행간 거래(Inter-Bank)' 중단; 만일, 거의 모든 국내 은행들이 적자 경영으로 전락하고 대출 자산이 급격히 부실화되는 경우에는, 우리 은행들이 참여하는 도매시장 격인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해외 주요 은행들이 우리 은행들과 자금 및 지급 결제 거래를 즉각 중단할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해외에 산재한 모든 영업점들의 일상 영업 자금을 본국에서 조달해 공급해야 할 것이나, 각 은행 본점인들 일거에 거대한 규모의 영업 자금을 조달할 방도가 없을 것은 뻔한 노릇이고, 당연히 정부는 부랴부랴 외환보유고를 투입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국가 신용도는 급전직하로 추락할 것이고, 모든 대외 거래가 순간적으로 파탄이 날 것이다. 

 

넷째; 해외 자금들의 ‘탈(脫) 한국’ 러시; 우리 은행들 지분의 과반을 넘는 외국인 주주들은, 은행 부실화 징후가 조금만 감지되어도 지분을 유지할지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할 것은 당연하다. 결국, 이들이 투자를 철회하는 날이면 이들 외국 자본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고, 이럴 경우, 은행 주가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폭락할 것이다. 정부의 외환보유고 사정은 이들의 ‘자금 유출’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 투입되는 심각한 국면을 맞을 것이다. 그나마, 이런 상황이 은행 지분 철수에 그친다면 천만 다행이다. 우리가 이전에 겪어본 것처럼 해외 투자자들의 ‘군집(群集)행동’은 주식시장 전반으로 확산되고 외환보유고는 순식간에 바닥이 나 국가 경제는 회복하기 어려운 파탄에 빠질 것은 정해진 순서다. 이는 과거 IMF 경제 위기 때 우리가 몸소 겪었던 바이고, 남미 등 다른 나라들의 금융 위기 사례에서 수없이 반복됐던 사실이다. 

 

■ 사기업 재산 포기를 강제하는 것은 헌법 정신을 거스르는 것 


이런 금융, 경제적 측면 혹은 글로벌 시장의 예상되는 반향(反響) 등과는 별도로, 근본적인 법적 측면을 잠시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할 수도 있다. 가령, 정부가 법률을 제정해서 ‘재난 시’ 자영업자 및 개인 채무자들이 은행에 가진 대출을 탕감(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채권 포기)해 준다고 가정하면, 앞서 여러 경우의 예를 들어 설명한 바와 같이 국내외 금융 시장에서 일어날 엄청난 상황들 외에도, 정부의 이런 강제적 조치가 우리나라 헌법을 위시한 법률 체계나 근본 정신에 비추어 보아 과연 합당한 것인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 혹은 기업들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고 정하고 있어, 자유 시장경제가 우리 경제의 기본 이념 내지 방향임을 천명하고 있다. 아울러, 국가의 각종 제도 및 정책은 사유 재산권의 보장, 기업 활동의 자유, 계약의 자유라는 근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명백하게 규정해 놓고 있다 (헌법학자 이석연). 

 

따라서, 아무리 재난 시라고 해도, 당사자 간에 이미 유효하게 합의해서 성립된 계약에 따라 형성된 은행의 대출 채권을, 계약 당사자도 아닌 정부가 나서서 일방의 권리를 포기하게 하거나 당사자 일방의 이익을 위해 처분할 것을 강제하는 법률은 엄연히 우리 헌법의 기본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임이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은행들이 대규모 대손금(貸損金)을 계상하게 되면, 경영책임자들은 주주들에 대한 배임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고, 정부는 이를 강제한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한편, 최근 금융 당국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것에 대비해서 은행 내부에 위기 시에 손실을 흡수할 능력을 확보하라는 취지에서 선제적인 자본 확충 노력의 일환으로 각 은행들에 '자본관리권고안'을 내보냈다. 이 권고안은, 우선, 당기순이익 중에서 주주들에 배당할 수 있는 상한을 두고 한시적으로 순이익의 20% 이내로 제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래 놓고 나서, 각 은행들에 대출 자산을 포기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일 뿐 아니라, 실제로, 은행들이 주주 자본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면서까지 금융 당국의 배당 억제 권고를 그대로 순응할 수 있을지도 지극히 의문시된다. 

 

여기서, 금융 선진국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Covid-19 사태로 어느 나라보다 훨씬 피해가 크고 경제적 타격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미국 정부는 전례 없는 대규모 재정을 출동해가며 방역 및 경제 회생에 전력 투구하고 있다. 물론 그 나라에도 자영업자들의 도산이 속출하고 있고, 실업 상황도 가히 기록적 수준으로 악화되어 있음은 자주 보도되는 바다. 

 

이에 대처해서 미국 정부가 실행하는 Covid-19 지원 프로그램은 대체로 세 가지 큰 줄기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 폭증하는 실업 근로자들을 위한 실업 급여 추가 지급, 둘째; 소기업 자영업자들을 위한 고용유지보조프로그램(PPP), 셋째; 중기업들을 위한 대출프로그램(MSLP) 등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십 수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 자금을 출동해서 대응하면서도 이를 온전히 정부 재정이나 중앙은행의 발권력으로 충당하고 있지, 일반 상업은행 등에 자영업자나 개인 대출을 이래라저래라 하거나, 대기업들의 이익을 공유하자는 발상 등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참고할 것은, 아직까지 이들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들이 의외로 극히 일부만 소진되고 있어 취급 기관들마저 놀라고 있다고 전해진다. 오히려, 신임 옐런(Janet Yellen) 재무장관은 더 많은 대상자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2008/9년 ‘리먼(Lehman)’ 사태 때에도, 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대형 상업은행들이 신용이 열등한 차주들에 ‘주택 모기지 론(Housing Mortgage Loans)’을 무분별하게 취급했던 것이었음이 분명했음에도, 피해 구제 책임을 은행들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당시, 미국 정부는 오히려 재무 상황이 핍박해진 은행에 긴급 자금을 투입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라고, 감정대로 하자면 왜 원망스러운 이들 상업은행들에게 혹독한 형벌이라도 내리고 싶지 않았겠는가? 마는, 우선, 경제가 돌아가려면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 사정이 이러함에도 은행들에게 개인 빚을 탕감하라고 할 셈인가? 


우리나라 경제는 지금 집값 폭등에 더해 주식시장 열풍이 더해져 가히 투기 광풍에 휘말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개인들은 폭등하는 전세 값을 벌충하려고, 아니면 남들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주식 붐에 편승할 투자 자금을 조달하느라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마침 초(超)저금리가 계속되니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얻어내느라고 갖은 애를 쓰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신용 공급의 과도한 확대가 자산 거품을 만들어 낼 것이라며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으나, 금융 당국이나 전문가들도 이제는 거의 만성이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나 국제금융협회(IIF) 등 국제 금융기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7.9%에 달해(작년 1/4분기 기준), 임계점으로 여겨지는 ‘85%’ 수준을 넘어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며 경고를 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서 사기업인 은행 등 금융 사업자들에게 대출 채권을 포기하라는 등 일방적으로 손실을 강요하는 제도를 법률로 제정한다면 이는 틀림없이 글로벌 사회에서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활동하는 우리 은행들은 일거에 시장에서 배척될 것은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IMF 위기 등 과거의 위기 때마다, 우리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현지 은행들이 자금 거래를 즉각 중단해서 영업이 중단되는 수모를 겪었던 것을 기억해 보면 이로 인한 비참한 상황은 쉽게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도외시하고, 일부 집권 여당 의원들이 나서서 비록 ‘재난 시’ 라고는 해도, 자영업자 및 개인 대출을 탕감하는 것을 법률로 제도화하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도 글로벌 사회의 예기치 못한 엄청난 반향을 불러올 가능성이 농후한 위험한 발상일 뿐이다. 잠재적 위험 상황의 발단은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격으로 모든 자영업자들의 채무이행 의지를 약화시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부추기는 것이고, 이는 당연히, 은행권의 총체적 부실화를 촉발하는 일이다. 

 

이런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지극히 감성적이고 무정견한 선심 정책 공세는, 비유하자면 홍수가 났다고 그나마 들어가 재난을 피하고 있는 집채의 대들보를 뽑아내 방천에 말뚝으로 쓰자는 심보와 다를 게 없다. 국가 경제가 위난(危難) 국면에 처하면 그럴수록 정부는 앞장서서 무엇보다 우선해서 은행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을 동원하던가 하는 선제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당연할 진데, 이들은 거꾸로, 은행 자산을 강제로 동원해 선심을 베풀겠다는 발상이고, 실은, 망동(妄動)에 가까운 행태여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상의 여러 가지 정황들을 감안해 보면, 결국, 아무리 ‘재난 시’ 라고 해도, 정부가 나서서 은행의 대출 채권을 강제적으로 포기하게 함으로써, 은행 파탄의 불을 당길 수 있는 제도를 논하는 것 그 자체가 백해(百害)는 있으나 일익(一益)도 없는 지극히 위험한 불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한번, 전후 사정을 되돌아보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상궤를 벗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현실을 도외시하며 단순한 감성에 휩쓸려 우리 금융 시스템을 통째로 파탄내고, 국가 경제를 망치는 ‘경국(傾國)의 우(愚)’를 범하지 말길 바랄 뿐이다.

 

 

0
  • 기사입력 2021년02월15일 17시10분
  • 검색어 태그 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