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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이후 원전 수출 협력 방향과 과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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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7월08일 15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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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1-7월호-제24호](2021.7.2.)에 실린 것으로 연구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한미 정상의 원전 수출 협력 합의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처음 직접 대면한 한미 정상회담은 지난 5월 21일 워싱턴에서 열렸다. 이 한미 정상회담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이후 백악관에서 마스크 없이 치른 첫 정상회담으로 기록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경쟁이라는 전대미문의 국제환경 속에서 열린 정상회담은 한미 간 전통적인 외교안보 의제인 대북정책에 더해 백신·반도체·배터리, 인도태평양전략 등 미중 경쟁에 대비한 새로운 의제도 협의했다. 그런데 막상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원전 수출이 양국 간 주요 협력 사안으로 포함되어 관심을 끌었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양국 정상은 “전 세계적 비확산과 원자력안전, 핵안보, 안전조치가 보장된 원자력기술 사용과 관련된 제반 사안에 대해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동맹의 핵심적 징표임을 재확인”하고, “국제 원자력안전, 핵안보, 비확산에 대한 가장 높은 기준을 보장하는 가운데, 원전사업 공동 참여를 포함한 해외 원전시장 내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약속”했다. 또한 공동성명의 부속문서인 ‘한미 파트너십 설명자료(Fact Sheet)’에서는 ‘한미 파트너십’을 위한 협력사업의 하나로 아래와 같이 원전 수출의 협력 방법을 제시했다. 

 

“양 정상은 해외 원전시장에서 민간 원자력산업 협력을 확대하고, 이와 같은 협력 과정에서 비확산 분야의 협력을 강화한다. 원자력 공급을 보장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미는 공급망에서 공조(coordination)를 촉진함으로써 해외 원전시장에 공동 진출하기로 약속하였으며, 한국은 미국과 함께 원전 공급 조건으로 수입국에게 IAEA 안전조치협정 추가의정서(Additional Protocol)를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공동 정책을 채택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상호 합의된 시점에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한다.” 

 

다시 말해 한미 정상은 양국을 대표하여 △원전 수출을 위한 원자력산업 협력 확대와 원전시장 공동 참여, △원전 수출을 위한 공급망 공조 추진, △원전 수출 조건으로서 수입국의 IAEA 안전조치 ‘추가의정서’ 참가 요구, △한미 원자력고위급 위원회 개최 등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한미의 원자력전문가들은 양 정상의 원자력 수출을 위한 협력 원칙을 크게 환영했다.

 

그렇다면 한미 공동성명과 설명자료에 나타난 이 원전 수출 협력 관련 조항들은 왜 정상들의 관심사가 되었으며, 어떤 정치외교적 의미가 있는가? 동 합의는 한국의 원전 수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원전 수출의 조건으로 수입국에 ‘추가의정서’ 수용을 요구키로 한 것이 눈에 띄는데, 왜 이 조건이 포함되었고 이는 한국의 원전 수출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근래 한미 원자력협력의 성공 사례는2009년 한국의 UAE 원전 수출 성사와 2015년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개정을 꼽을 수 있다. 이번 한미 정상 간 원자력협력 합의로 인해 근래 정체되었던 한미 원자력협력을 다시 활성화하고 원자력협력의 새로운 기원을 열수 있을까? 

 

강대국 지정학적 경쟁 시대 한미 원전 수출 협력 필요성 제기

 

원전 수출문제가 백신이나 반도체와 같이 양국의 초긴급 현안이거나, 대북정책과 같이 전통적인 주요 외교안보 과제도 아닌데 왜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 포함되었을까? 그 해답은 무엇보다 최근 원전 수출이 미국이 러시아 및 중국과 벌이는 지정학적 경쟁의 한 축이 되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원자력은 한때 미래의 에너지로서 크게 각광받았지만 체르노빌·스리마일아일랜드·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사용후 핵연료 처리문제로 인해 관심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원자력은 에너지안보 차원에서 탁월하고 기후변화 시대에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강점을 갖고 있어 여전히 원전에 대한 요구는 크다. 오늘 전 세계에는 440개 원전이 32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 원전은 총 전기생산량의 약10%를 감당하며 많은 나라에서 산업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다. 

 

21세기 들어 원전의 부흥을 예고했던 ‘원자력 르네상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현재 16개국에서 50개 원전이 건설 중이다. 중국(18기), 인도(5기), UAE(3기), 영국, 프랑스, 미국, 방글라데시, 터키, 아르헨티나 등 지역과 선진국 여부를 막론하여 원전에 대한 관심은 높다. 그 외에 건설 계획 중인 원전은 109기, 검토 중인 원전도 329기에 달한다. 일부 원전 보유국들은 신규 원전의 건설보다는 운영 연장을 적극 추진한다. 과거 원전의 수명은 최대 40년이었으나, 부품 대체와 수리를 통해 60년까지 운영을 연장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대형 원전 대신에 안전성·운용성·핵비확산성이 강화된 소형 원전(SMR)을 공급하기 위한 연구개발도 활발하다. 

 

그런데 원전 건설의 규모, 원자력의 이중용도 성격, 핵연료 공급과 유지보수의 장기성 등으로 원전의 수출입은 일반 상품이나 플랜트 수출과 크게 다르다. 원전 수출입은 수출국과 수입국 간 장기간에 걸쳐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적 협력을 포함하고, UAE에서 보았듯이 심지어 정치·외교·군사적 협력을 동반하기도 한다. 원전 수출은 핵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원자력 기술의 이전을 동반하므로, 수출국은 아무에게나 팔 수 없다. 수입국은 원자력 기술 이전에 더해 수십 년에 걸쳐 원전 핵연료와 유지보수를 공급받아야 하므로 수출국을 정치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상호 신뢰하지 않거나, 정치외교적 관계가 돈독하지 않다면 원전을 수출하기도 수입하기도 어렵다. 원자력안전도 원전 수출입에서 핵심 고려사항이다. 원전 사고는 드물게 발생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사람과 환경에 광범위하고 거의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남기기 때문이다. 심지어 원전 수출국에 원자력사고에 대한 배상 책임을 물릴 수도 있어 수출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2010년대 들어 강대국 간 지정학적 경쟁, 특히 미중 경쟁이 치열해지자, 미국은 원전 수출시장에서 러시아의 급속한 팽창과 중국의 새로운 진입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게 되었다. 21세기 들어 러시아와 중국은 국영기업의 자금력과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점차 원전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로사톰은 중국·인도·터키·방글라데시·핀란드 등 12국에서 원전 36기를 건설 중인데, 향후 10년에 걸쳐 1,300억 달러를 상회하는 계약고를 갖고 있다. 

 

중국은 파키스탄 원전 4기를 건설한데 이어, 급속히 원전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미국은 중동, 아프리카, 동중유럽, 남미 등 지역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원전 수출이 가속화되면, 해당 국가와 지역이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간다고 본다. 그렇다고 미국이 수출경쟁력을 상실한 자국산 원전을 사라고 윽박지를 수도 없다. 

 

미국은 원전 95기를 보유하여 아직 세계 최대의 원전 보유국 지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1979년 스리마일 원전사고 이후 40년 간 원전 건설을 중단한 결과, 원전 산업이 완전히 붕괴하고 말았다. 한때 세계 원전 건설을 거의 독점했던 웨스팅하우스도 그동안 주인도 수차례 바뀌었고 독자적인 원전건설 역량을 잃은 지 오래다. 

 

자유진영국가 중에서 원전 수출이 가능한 나라는 미국, 프랑스, 일본, 한국 등 4개국인데, 그나마 한국만이 원전의 지속적인 건설 실적과 가격경쟁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게 최선의 대안은 동맹국이자 가치 공유국 중에서 원전 건설역량이 가장 뛰어난 한국과 원전 수출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은 비록 원전 수출 경쟁력이 있다고 하나, 러시아와 중국에게 뒤떨어진다. 특히 원전 수출을 위한 재정적·핵비확산적·지정학적 리스크를 홀로 감당하기에는 힘이 크게 부친다. 미국은 원전 시공 능력은 부족하지만, 원천기술과 정치외교력, 그리고 각종 리스크에 대한 대응역량이 뛰어나다.

 

 오늘의 한국은 선도적 중견국으로서 세계평화와 공영을 위한 책임을 다하려고 한다. 또한 원자력 선진국이자 원전 수출국으로서 지속적인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가능하도록 최고 수준의 핵비확산·핵안보·원자력안전을 요구하고 보장하는 것도 국익에 해당된다. 결국 한미동맹이 ‘자연동맹’이듯이, 원전 수출에서도 한미는 합하면 경쟁력이 더욱 커지는 ‘자연 동반자관계’이다.

 

원전 수출을 위한 한미 협력 과제와 방향

 

2015년 한미 원자력협력 개정협정에서 한미 양국은 원전 수출을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사실 2009년 한국이 UAE에 원전을 수출할 때만 하더라도 원전 수출은 강대국 간 지정학적 경쟁의 대상도, 한미 정상 간 정치외교적 협의 사안도 아니었다. 따라서 한미 양국도 서로 자국 기업을 밀어주며 경쟁했고, 결국 원전의 가격경쟁력이 수주 여부를 결정했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 러시아의 원전 수출이 급증하고, 강대국 세력경쟁이 본격화되자, 한미는 원전 수출을 위한 협력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국내 원전 건설을 가속화한 데 이어 수출을 본격적으로 모색하자, 한미는 더 이상 원전 수출을 위한 협력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미 양국은 원전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어떻게 협력해야 할 것인가?

 

첫째, 한미 정부는 양국의 기업이 원전 수주를 두고 과도히 경합할 경우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 현재 한미는 원전 발주가 임박한 사우디아라비아, 체코, 폴란드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미 기업 간 경쟁이 상호 보완성을 해치면서 오히려 수주 가능성이 낮아지거나, 수주가 지연되는 경우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2기 원전 발주를 두고 한국의 한전과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이미 수년 째 사운을 걸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발주 결정이 크게 지체되었다. 

급기야 원전 원천기술의 지적재산권을 둘러싸고 법률 논쟁과 외교 갈등까지 초래했다. 일반적으로 사기업의 활동영역에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되지만, 원자력의 이중성과 원전 수주의 지정학적, 정치외교적 의미를 감안할 때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한미 기업이 정부의 도움을 얻어 각각 수출을 집중할 국가를 나누고, 비주력 국가에 대해서는 서로 상대를 지원한다면, 양국 모두에게 윈윈 해법이 될 것이다.

 

둘째, 한미는 모든 원자력 수출국과 수입국이 높은 수준의 핵비확산, 핵안보, 원자력안전 기준을 준수하도록 협력한다. 사실 서방국가들은 핵비확산과 원자력안전을 원자력 이용에서 가장 중요한 잣대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다수 개도국과 비동맹 국가들은 경제적 비용과 효율성을 중시한 나머지 이에 대한 비용 투입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한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높은 수준의 핵투명성을 보장하는 ‘추가의정서’ 참가를 수출 조건화하기로 합의했는데, 모든 국가가 동 기준을 채택하도록 외교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셋째, 안전성과 핵비확산성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어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소형 모듈원자로(SMR)의 연구개발을 위한 한미 협력이 긴요하다. SMR 개발은 미국이 주도하여 이미 크게 진전되었다. 한국도 SMR의 연구개발에 기술적·재정적으로 참여하고, 특히 우수한 시공제작능력을 보탠다면 SMR 시대를 앞당기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미 정부 간 원전 수출 협력을 위해 2015년 한미원자력 개정협정에 따라 설치된 차관급의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윈회’를 적극 활용하도록 한다. 동 위원회는 그 밑에 4개 실무그룹의 하나로 ‘원자력 수출 진흥 및 수출통제 협력’을 두었는데, 지금이야말로 원자력수출 실무그룹 회의를 개최하여, 양국의 개별적 또는 공동 수주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증진키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각자 원전 수주를 위해 집중할 국가를 나누고, 원천기술의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논쟁을 완전히 해소하며, 원전 건설의 자금 동원과 보증방안도 협력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 차원의 협력을 보완하기 위해 한미 전문가협의체도 가동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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