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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종말, 노동의 좌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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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9월29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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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사라지는 ‘노동의 종말’을 우려해왔다. 이제 우리는 그보다 먼저 ‘노동의 좌절’을 걱정해야할 듯하다.

 

요즘 배우 윤여정 씨가 나오는 TV광고에는 인공지능(AI)이 고객의 예약전화를 받아 일을 처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AI가 고객의 전화문의 응대를 담당하는 인간 직원을 대신해주는 시대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식당, 카페에는 이미 무인 주문 키오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은행 지점들도 모바일 앱에 그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오래전인 1996년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이라는 책에서 첨단기술이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드는 디스토피아를 묘사했다. 이후 실제로 기술 발달을 목도하면서 머지않아 사라질 많은 인간의 일자리들을 떠올리며 걱정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노동의 종말’에 앞서 ‘노동의 좌절’을 우선 걱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의 좌절‘은 특히 최근 몇 년의 부동산 가격 폭등이 만들었다. 노동 소득과 그 소득을 기반으로 한 대출로 집을 마련하고 저축해 원리금을 상환한 뒤 원하는 동네로 한 단계 한 단계 옮겨가는 과거 ’중산층의 꿈‘이 근래의 부동산 가격 급등과 공급위축, 대출규제로 인해 ’불가능한 환상’으로 느껴지는 사회 분위기가 됐다.

 

급기야 '국민 평형'이라는 34평형(전용면적 84㎡) 아파트 매매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40억 원을 넘어섰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아크로리버파크’ 34평형이 얼마 전 42억 원에 거래된 거다. 이 42억 원이라는 가격은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건물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문제는 이 아파트만 그런 게 아니라는 데 있다. 강남의 주요 신축, 준신축 아파트들은 30평 형 대가 이미 30억 원 대 중후반을 넘어섰고, 마용성(마포,용산,성동) 아파트들도 20억 원 대에 거래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전만 해도 강남 주요 아파트들이 10억 원 대였고 마용성은 10억 원 미만으로 살 수 있었다. 서울의 다른 지역에는 4~5억 원대도 많았다.

 

현기증 나는, 살인적인 부동산 가격 폭등이다. 내 집 마련도, 출산도 포기하고 싶다는 청년들의 말이 이해가 갈 정도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해 연봉 2000만 원~4000만 원을 받아 저축하면서 대출을 보태 집을 마련하려던 계획은 불가능해진 듯 보인다. 요즘은 일반 직장인들은 물론이고 변호사, 의사 같은 일부 고소득 전문직 젊은이들까지도 금수저가 아닌 이상 월급만 가지고는 원하는 아파트를 사는 게 불가능해졌다고 체념할 정도다. 대출까지 막아 놓았고 공급도 요원하니 상황은 악화일로다. 그러니 열심히 일하고 저축할 의욕이 나기 힘들다.

 

이 부동산 가격 발 ‘노동의 좌절’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또 터졌다. ‘대장동 게이트’다. 

 

곽상도 의원(전 국민의힘)의 아들이 경기 성남 분당구 대장동 개발사업을 주도한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에서 6년간 근무한 후 퇴직하며 50억 원을 받은 것이 밝혀졌다.

화천대유에서 퇴직절차를 밟고 있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의 딸도 회사 보유분인 대장동 아파트를 최근 경쟁 없이 분양받아 수 억 원의 차익을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퇴직금도 조만간 받을 모양이다. 

앞서 화천대유의 자회사 천화동인 1~7호 주주들은 100억 원~ 1000억 원이라는 거액의 배당금을 수령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특히 천화동인 4호 대표인 남모 변호사는 1000억 원이 넘는 배당을 받고 부인인 전 MBC기자와 함께 미국 샌디에이고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MBC노조(제3노조)가 성명을 발표하고 “남 변호사의 부인 J모 전 MBC기자가 위례신도시 개발회사와 투자회사에 임원으로 등재된 사실이 확인됐다. 회사 업무를 하면서 위례신도시 개발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자산관리나 개발이익 수령을 위해 임원으로 활동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1억 원만 해도 노동을 통해 저축하려면 큰돈인 국민들로서는 뭔가 정당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방법을 통해 50억 원, 100억 원, 1000억 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단기간 내에 벌었다는 ‘대장동 게이트’의 몇몇 인물들의 뉴스를 들으면 허탈할 수밖에 없다. ‘노동의 좌절’이다.

 

자신의 일자리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국민들의 의욕을 꺾는 일들이 요즘 속출하고 있다. 

개인의 불행이자 사회의 불행, 국가의 불행이다.

 

‘노동의 좌절’은 ‘노동의욕의 종말’이고, 이는 경제와 사회 전반의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경제의 활력과 역동성을 시급히 되살려야 하는 대한민국은 ‘노동의 종말’을 걱정하기에 앞서 지금 당장 ‘노동의 좌절’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해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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