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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분리, 그렇게 요란스레 호들갑떨 이슈 아니다. 정작 중요한 건 4차 혁명을 저해하는 규제 완화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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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8월28일 17시47분
  • 최종수정 2018년08월28일 22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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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돌아, 삼돌아”

“… ”

상전에게 불려가서 이끗 있는 일이 별로 없기에 삼돌이는 상전이 불러도 모른 척하고 한적한 울밑에서 내처 낮잠을 즐겼다. 참다못해 찾아 나선 주인한테 들키고는 아차 했으나, 어깻죽지가 시큰하도록 내려치는 상전의 곰방대 타작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네 이놈,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느냐?”

“삼돌아 삼돌아 하시길래 육돌이를 찾는 줄 알고 그만…”

 

요즘 은산분리를 둘러싸고 정부와 진보진영이 벌이는 공방이 이렇지 싶다. 한 쪽은 삼돌이를 찾는데 다른 쪽은 못들은 척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다른 쪽은 삼돌이를 애타게 부르는데, 한 쪽은 콧방귀만 뀌고 있다.

 

정부의 목소리는 분명하다. 은행에 대한 산업자본의 소유권 한도는 손대지 않겠다는 거다. 다만 은행은 인터넷은행, 산업자본은 IT기업에 한정해서만 소유권 한도를 늘려주겠다는 거다(늘려줘도, 현재 분위기로 봐서는 50%를 넘지 못하겠지만). 물론 IT기업도 삼성전자나 SK텔레콤은 해당되지 않을 듯하다. 카카오나 KT, 네이버, 인터파크 등만 포함될 듯하다. 

 

어찌 보면 무릎을 탁 칠 수 있는 묘수일 수 있다. 은산분리는 진보진영 경제학자들이 늘 하는 주장이다. 게다가 지난 대선 당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그러니 원칙적으로는 은산분리의 틀을 허물어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진보진영은 규제완화에 대체로 반대다. 원격의료나 사교육,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규제 완화를 반대한다. 하지만 규제 완화 없이는 일자리 창출과 성장잠재력 제고 등이 쉽지 않다. 문 대통령이 ‘붉은 깃발’ 얘기를 꺼낸 까닭이다. 대통령은 19세기말 영국의 ‘붉은 깃발법’을 예로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증기자동차가 전성기를 맞고 있었는데 영국은 마차업자들을 보호하려고 이 법을 만들었다. 결국 영국이 시작한 자동차산업은 독일과 미국에 뒤처지고 말았다.”

 

왜 붉은 깃발인가? 자동차의 내연 기관을 가장 먼저 개발한 국가는 영국이다. 하지만 당시 영국은 마차사업자들이 상대적으로 득세하던 시절이었다. 이들은 자동차는 사람을 다치게 하는 위험한 도구라고 주장했고, 급기야 이들의 로비에 넘어간 빅토리아여왕은 1865년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을 제정했다. 법 내용은 이렇다. 1대의 자동차에 3인의 운전수가 있다. 그 중 한명은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가지고 55m 앞을 달리면서 자동차가 온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또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 6.4km로 제한됐다. 그나마 이는 농촌의 경우고, 도심지에서는 시속 3.2km로 더 줄여야했다. 당시 자동차는 이미 시속 30㎞ 이상으로 달릴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급기야 영국 자동차 기술자들은 빠른 속도를 내는 자동차를 개발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영국보다 훨씬 늦은 1823년, 다임러와 벤츠가 가솔린 엔진을 개발한 독일에서는 이런 규제를 하지 않았다. 자동차의 유용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 독일의 기술자들은 빨리 달리면서 안전한 자동차를 개발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독일에 속도 제한을 하지 않는 아우토반이라는 고속도로가 존재하는 배경이다. 

 

물론 빅토리아여왕의 명분이야 그럴 듯했다. 사양하는 마차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였다. 그래서 마차산업과 자동차산업의 균형 발전과 부의 균등한 분배를 위한다는 명분이었다. 어떤가? 지금 우리의 현실과 비슷하지 않은가? 

 

붉은 깃발법의 결과는 참으로 참담하다. 영국은 마차와 자동차산업 모두 잃었다. 급기야 1896년 붉은 깃발법을 폐지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독일과 프랑스 등 다른 국가들의 자동차 산업이 이미 본궤도에 오른 후였으니. 

 

얘기가 한참 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길게 늘어놓은 건 대통령의 속뜻에 대한 궁금증에서다.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의 부작용이 한 산업, 더 나아가 한 나라를 쇠락하게 한다는 걸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대통령이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이야말로 고여 있는 저수지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고 말한 건 이때문이 아닐까?

 

사실 인터넷은행의 은산분리를 IT기업에 한정해 완화한다는 건 ‘붉은 깃발법’에 빗댈 일 아니다.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당장 정부가 강조하는 고용창출효과가 특히 그렇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임직원 수를 모두 합쳐도 918명(2018년 3월 말)에 불과하다. 은산분리가 완화돼 설령 새로운 인터넷은행이 몇 개 더 생긴다고 한들 기껏 1000명 안팎의 일자리다. 하긴 비대면 거래 활성화와 무점포영업으로 얼마나 사람을 더 고용할 수 있겠는가? 핀테크 기업들의 플랫폼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 대출금리 10%대의 중금리 대출시장을 활성화하도록 하겠다는 기대도 그간의 실정을 볼 때 난망이다. 요컨대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겠다면서 정부가 강조한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이 과장됐다는 거다. 

 

이런 점에서 '별 큰 효과 없는데 왜 완화하느냐'라는 진보진영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분명히 일리 있다. 맞다. 규제를 풀어도 기대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게다. 하지만 틀린 것도 있다. 완화하면 엄청난 부작용이 생겨난다는 주장은 잘못됐다.  

 

단적인 예가 인터넷은행의 사금고화 우려다.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은 진보 학자들의 단골 메뉴다. 삼성이다 현대차 등이 은행을 소유하게 되면 특히 부실계열사들을 지원하고, 은행이 갖고 있는 정보를 활용해 그룹을 확장하는데 이용할 거라는 주장이다. 그 결과? 경제력이 더욱 집중된다는 주장이다.

 

진보 학자들은 이 논리를 인터넷은행에도 그대로 적용한다. 카카오와 네이버, 인터파크 등 IT기업이 부실 계열사들을 지원하고, 정보를 활용할 거라는 식이다. 맞다면 그 결과는 경제력 집중이 아니라 정반대다.  경제력집중의 완화다. 그렇다면 국민경제에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두 번째는 금융시스템 안정성을 해친다는 주장이다. 즉 대주주인 산업자본의 규모를 키우는데 인터넷은행돈이 지나치게 동원될 거라는 얘기다. 이로 인해 은행의 건전성이 악화되고, 금융시스템이 불안정해질 거라는 우려다. 첫 번째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과도한 비판이지 싶다.

 물론 IT기업이 인터넷은행의 대주주라고 해도 은행이 이들의 사금고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고, 기업의 부실이 은행으로 전가돼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지는 사태는 명백히 막아야 한다. 여기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산업자본이 설령 대주주가 아니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들은 무수히 많다. 우리나라의 금융감독장치는 기업이 자신들 맘대로 계열 은행을 주물럭거릴 정도로 만만치 않다. 이사회 제도 등 내부감시장치도 상당하다. 그래도 걱정된다면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더 엄격히 규제하면 된다. 요컨대 아예 처음부터 운동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이보다는 운동장에 들어오게 하되 변칙, 불법 플레이를 하지 못하도록 룰을 만들고 감시하는 게 더 낫다.

 

너무 에둘러왔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건 간단하다. IT기업과 인터넷은행과 관련한 은산분리는 그렇게 의미를 강조할 일이 아니다. 반면 정반대로 그렇게 결사반대를 외칠 일도 아니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다. 

 

그럼 왜 이 난리인가? 문 대통령의 ‘붉은 깃발법’에 해답이 있지 싶다. 사실 일자리나 혁신경제에 정작 중요한 건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첩첩산중 규제들이다. 의료, 교육, 융·복합 등을 둘러싼 규제다. 은산분리 문제는 상대적으로 사소한 이슈다. 하지만 은산분리는 이 문제에서 밀리면 정작 중요한 다른 규제에서 더 많이 밀릴 수 있는 전초전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주인이랍시고 삼돌이를 외쳐대지만, 또 서로 각자가 못들은 척하는 건 그래서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상생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까닭이다.<ifs P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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