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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출은 만능인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8년08월30일 10시07분
  • 최종수정 2018년08월31일 12시10분

작성자

  • 김상겸
  •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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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자리 관련 통계가 발표된 이후, 우리나라 경제정책과 관련된 일련의 변화가 혼란스럽다. 54조원이라는 재정을 일자리 확보예산에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연초 월33만 명이던 취업자 증가폭이 5천명 수준까지 떨어졌고, 6개월 이상 장기실업자 숫자도 최대에 이르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정책만 추진되면 이전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전보다 더 나빠지는 징후가 지속되고 있다. 

 

모든 것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때문’이라는 지적이 불만이었는지, 청와대 정책실장은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기자간담회를 개최해 가며,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당위성에 대해 강변 하였다. 주장의 핵심은 현재의 고용과 경기침체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며, 보다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전보다 더욱 강력한 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가계소득을 증대시켜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당초의 기조는 변화가 없으며, 보다 뚜렷한 성과를 위해 최저임금인상 뿐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재정투입을 통해 가계소득을 늘이겠다는 것이다. 일자리 안정자금, 근로장려금, 기초연금, 아동수당, 고용보험, 등을 더욱 확대하고, 한국형실업부조 등을 신설하여 가계에 전보다 더 많은 돈을 쥐어주겠다는 구체적 계획까지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장담대로, 8월28일 발표된 정부의 2019년 예산안은 청와대 정책실장의 의견이 대폭적으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무려 전년대비 10% 가까이 증가한 예산안을 선보인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3% 미만으로 정체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는 경제위기 시에나 편성되는, 가히 파격적인 증가폭인 것이다. 이번에 증액된 41.7조원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17.6조원(42%)이 기초연금과 아동수당 등의 복지분야에 투입될 계획이다. 소득주도 성장을 보다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표현된 것이다. 

 

나라살림을 공부하는 재정학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정책기조는 사실 불편하다. 그동안 나타난 미미한 정책효과에 대한 우려와 지적을 귀담아 듣기는커녕, 정책을 비판하는 의견에 밀리지 않겠다는 고집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현 정부는 나랏돈 쓰는 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쪽으로는 일자리를 없애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또 다른 한쪽으로는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나랏돈을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실업을 심화시킨다는 것은, 구태여 경제학의 원리를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현실 경제의 기초적인 원리이다. 이렇듯 명확한 이치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문제해결에 필요하다며 나랏돈을 더 많이 가져다 쓰겠다는 것이다.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애써 더 쓰는 듯한 느낌이다.  

 

재정은 사실, 국민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있는 돈을 정부가 가져다가 쓰는 것과 다름 아니다. 따라서 돈의 규모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정부가 쓴다고 하여 쓸 수 있는 돈이 더 커지는 것이 아닌, 그저 돈의 손바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번거롭게 민간의 돈을 정부가 가져다 쓰는 것인가? 민간을 대신하여 정부가 쓰면, 그 경제적 효과가 좋아지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이때 오해해서 안되는 점은, 정부가 돈을 가져다 쓰면 언제나 더 나은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장, 즉, 민간에만 맡겨두는 경우 성과가 좋지 않은 경우들(경제학에서는 이를 시장의 실패라고 한다)을 제외하면 대개의 경우는 정부지출이 민간지출에 비해 열등한 편이다. 현대경제학에서, 시장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거나, 민간의 효율성을 활용해야 한다는 결론들은 결국, 정부의 개입이 능사가 아님을 시사한다. 즉, 재정은 마구잡이로 처방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공익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재정확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방, 치안, 환경, 교육 등을 넘어서, 이제는 내 생활비도, 내 병원비도, 심지어 내가 쓴 교통비까지도 모두 정부가 내줘야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소위 재정만능주의인 것이다. 재정만능주의의 위험은 국가부채 측면에서 더욱 뚜렷하게 부각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급격히 진행되는 고령화의 영향으로 인해 가만히 두어도 재정적자의 빠른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재정적자의 누적은 국가부채의 증가를 의미하므로, 결국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나랏빚의 지속적인 증가는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부채를 관리가능한 범위 내에서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당히 거창한 목표라 할 수 있지만, 이의 달성을 위해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가급적 나랏돈을 아껴가며 쓰는 것이다. 

 

국가부채 증가를 경계해야하는 또 다른 이유는, 세대 간의 형평성 관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현재 세대의 복지는 고스란히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현재 세대의 절박함이나 편안함을 이유로, 미래세대의 고단함을 담보로 잡겠다는 것이다. 거창하게 세대 간 갈등까지 언급할 것 없이, 이는 윤리적으로도 옳은 선택이 아니다. 나 잘 살자고 자식들에게 빚더미를 안겨주는 것은, 책임있는 어른으로서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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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8월30일 10시07분
  • 최종수정 2018년08월31일 12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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