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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혁신특별법은 첫걸음일 뿐이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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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2월03일 18시03분
  • 최종수정 2018년12월03일 18시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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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대세인 4차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지난 9월20일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융합법, 산업융합촉진법, 지역특구법 등 규제혁신특별법들이 마침내 공포되어 발효되었다. 이들 법률은 조만간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이 마련되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규제 샌드박스’란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혁신적인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 주는 제도다. 시장에서 제품과 서비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기존의 규제에 구애받지 않고 선보일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제도다. 일단 신상품을 빠르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하고 문제가 있으면 사후에 규율하는 일종의 네거티브시스템이다. 일찍이 영국에서 핀테크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이를 시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도입된 게 그 유례다. 

 

  규제혁신특별법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정부는 일단 한시름을 덜었다. 앞으로 효과적인 법 집행과 적용을 위해 시행령 마련 등 만반의 준비에 박차를 가할 태세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게 있다.  이것은 첫걸음일 뿐이고 완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의 큰 흐름을 대비할 때 세 개의 규제혁신특별법은 만병통치약이 되지 못한다. 특히 피규제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러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규제혁신특별법을 일반법과 연계시키는 일이 긴요하다. 산업융합촉진법과 정보통신융합법은 각각 2011년과 2013년에 제정되었지만, 그동안 실제 법 적용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이번에 법 개정 내용에는 새로운 융합 신제품·서비스의 신속한 시장출시를 지원하기 위해 규제의 신속한 확인, 실증을 위한 규제특례 적용, 임시허가 제도 신설 등이 추가로 포함되었다. 그러나 내용의 추가가 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법률들이 왜 무기력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이들은 개별법의 관련 조항을 무력화하거나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슈퍼 특별법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특정 기능을 발휘하도록 입안된 단순 특별법일 뿐이어서 4차 산업혁명을 제도로서 뒷받침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특별법이 새로운 시대를 맞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새로운 ‘일반법’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단계이며 가교(架橋)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차제에 개별법을 대상으로 융합 시대에 걸맞도록 정비하는 일이 긴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특별법의 제정이나 개정이 전혀 무의미한 일은 아니지만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으므로, 개별법 상 장애요소들의 개선 노력이 병행되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다. 규제 샌드박스를 운영하는 부처에서는 특별법과 별도로 소관 하는 법률 전체를 우선적으로 재검토하여 일반법 체계가 특별법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재정비할 태세를 갖추어 나가도록 해야 한다. 

 

  둘째, 특별법에서 규정한 예외적 조치를 장차 일반적 조치로 환원해 나갈 태세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일반법의 정비가 긴요하다. 특별법들에서 규정하고 있는 규제 특례 인정기간은 2년 원칙으로 되어 있고 1회에 한해 연장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최장 4년간 비즈니스가 가능한 셈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사업기간인 4년 이내에 법령이 제정되지 않으면 폐업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된다. 사업의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 불확실성 속에서 어느 누가 신규로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겠는가.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단지 신기술의 진입을 위한 시범사업이 아니라, 미래를 대비한 각별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되어 운영되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초기 신청 → 시범사업 허용 → 모니터링 → 제도화 등과 같은 일련의 과정을 염두에 두고 운용되는 게 바람직하다. 

 

  셋째, 임시 허용된 사업을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련 통계를 수집하는 일이 중요하다. 산업융합촉진법과 정보통신융합법 등의 내용을 보면 규제특례를 적용하고, 임시허가 제도를 운영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시장 출시 이후에 대해서는 관리가 소홀한 측면이 있다. 네거티브 시스템의 도입으로 사전 규제를 푸는 것 못지않게 시장에서의 사후 감독과 규율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품과 서비스가 원활하게 시장에 출시되도록 애로와 장벽을 제거해 주는 일과 함께 시장 출시 이후 각종 비즈니스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관련 통계를 수집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특별법에서 규정한 예외적 조치를 일반적 조치로 환원해 나갈 태세를 갖추려면 해당 시장에 대한 모니터링과 관련 통계의 체계적인 수집은 필수불가결한 과업이다. 네거티브 규제시스템에 익숙한 나라들은 통상 사전 규제보다 사후 관리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시장의 모니터링과 관련 통계의 수집이 자연스럽게 병행되곤 한다. 우리나라도 필요하다면 이를 위해 행정력을 갖추고 추가 비용의 투자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넷째, 손해배상과 관련된 규정에 이슈에 대해서도 제도적으로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하면서 사업자가 불의의 사고로 인한 인적·물적 손해를 입혔을 때 원칙적으로 배상의무를 지우고 있다. 물론 이 경우 손해의 입증 책임은 배상 요구자에게 있지만, 사고에 있어 고의나 과실이 없다는 입증 책임은 사업자에게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배상 책임의 부담을 상당히 느낄 수밖에 없고, 자칫 도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규제 특례 사업을 위해 사전에 책임보험에 가입하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해당되는 보험 상품이 없을뿐더러 신규로 출시될 가능성도 커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도입 취지를 감안하여, 무과실 배상책임을 분담할 사회적 기금을 설정하여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즉, 신기술 도전에 나서는 기업이 직접 부담하기보다 기업과 중앙정부, 지역 특구에 참여하는 지자체 등이 공동으로 출연하여 사회적 기금을 설정하여 해결하자는 방안이다. 말하자면 사회적 보험의 개념을 도입해 보자는 것이다. 지역특구에서는 분야를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도록 하되, 무과실 배상책임을 위한 지자체의 일정한 출연 분담뿐 아니라 모니터링 및 사후관리 의무를 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시범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의의 사고가 과실인지 무과실인지, 배상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를 가리는 부담을 덜고, 근본적으로는 실험 실패의 두려움을 완화함으로써 과감한 신기술 도전을 독려할 수 있을 것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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