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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냉장고, 현 시대의 양심을 묻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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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10월28일 17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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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96년 4월에 우리나라 예능 방송의 한 획을 긋는 프로그램이 탄생한다. 그것은 바로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이하 일밤) 코너인 ‘이경규가 간다’이다.

 

  당시 일밤은 폐지위기에 처해있었다. 방송3사의 시청률만 비교하여 계산하는 방법에서 일요일 프라임 시간대에 시청률 2%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정도 시청률이라면, 현재로 비교하였을 때 약 0.5%의 시청률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모든 방송이 끝나고 방영되는 애국가의 시청률과도 같다.

 

  당시 경쟁상대는 KBS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슈퍼 선데이’의 코너인 ‘금촌댁네 사람들’이었다. 경쟁상대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던 것이, 그때 당시 ‘슈퍼 선데이’는 40%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일밤 제작진은 3달여간 회의를 진행하였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새벽에 귀가하던 김영희PD는 평소와 다르게(?) 아무도 없고, 차도 지나지 않는 횡단보도에서 녹색등을 기다린 후 건넜고,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고 한다. 이것은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우리나라 예능방송의 역사를 쓰게 된 법규준수 공익 예능 프로그램이 탄생한 계기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교통단속이 없고, 신호에 무관심할만한 새벽 시간대를 골라 도로에 잠복하고 있다가 안전선 지키기, 안전 속도 주행 등 기본적인 교통안전 규칙을 지키는 차량에 대해서 상품으로 냉장고를 주는 기획이었다.

 상품으로 냉장고가 기획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당시 진행자였던 ‘이경규’의 말로는 우리시대의 양심이 썩지 말라는 의미로 선택했다는 일화가 있다.

 

  첫 방송 이전만 해도 PD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고, 예상처럼 인적이 뜸한 새벽 도로에서 대부분의 차들이 적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촬영 중에 김영희PD가 자리를 비운사이 MC들끼리는 자체적으로 클로징 멘트를 녹화하며 판을 접으려고까지 했다.

  그러던 중 새벽 4시 13분에 조그마한 경차 한 대가 다른 차들과 다르게 횡단보도 앞에 일단 정지해 정지신호와 정지선을 지켰다. 이에 촬영진은 곧바로 그 차를 찾아갔다.


  후에 김영희PD의 인터뷰 내용에서는 이 순간에 창문이 내려지고 나서 ‘망했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창문 안에 있는 운전자의 얼굴이 매우 일그러져 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음주운전자로 착각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운전자는 지체장애인이었다.

  이때 ‘이경규’는 운전자에게 대한민국 방송역사에 영원히 기록 될 만한 질문을 날렸다.


 “왜 신호를 지키셨나요?”

 

이 질문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체장애인 운전자는 단 한마디로 우리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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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늘..지켜요”
  
  이 첫 방송 직후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면서 각종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다.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공중도덕과 질서, 법규에 대한 무관심을 일깨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다시 보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빗발치는 요구로 바로 다음 주 일밤 정규방송 시간에 방송 역사상 전무후무한 前주 방송이 그대로 재방송 되었다.

 

  이후 양심냉장고라는 별칭으로 큰 호응을 얻었고, 지금도 이 코너는 공익적인 예능의 전설로 기억되고 있다. 사회의 기본적인 공중도덕과 질서, 법규를 지키는 것, 그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상호간 최소한의 약속이 아닐까?

 

  우리가 약속한 사항을 서로 지키고,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내 자녀, 우리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갖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 자신에게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는 것. 이거야 말로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이러한 당연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 어디에서라도, 우리 사회 구성원이 함께하는 모든 공동체에는 상호간의 약속과, 최소한의 예의, 그리고 정도가 있다 사소한 약속에서부터 한 국가의 안위가 달린 약속까지, 이 모든 일의 출발은 우리 자신들의 양심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방송역사에 한 획을 긋는 질문인 “왜 신호를 지키셨나요?” 그리고 그에 따른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마음을 울렸던 지체장애인 운전자의 대답 “내..가...늘..지켜요”


  아마도 그 운전자께서는 몸은 불편했을지라도, 마음까지는 그렇지 않았나보다.


  신체만 멀쩡하다면, 장애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양심을 잃은 시커먼 속을 지닌 사람은 껍데기와도 같다.
 

  지금 현 시대의 진정한 장애인은 누구인지 묻고 싶다.


* 위 글을 통해서 장애인 분들을 폄하하거나 잘못된 편견으로 보고자하는 의도는 일체 없음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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