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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준영의 성범죄, 개인의 일탈로 간주해서는 안 되는 이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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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3월15일 17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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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썬 게이트에 잇따라, 가수 정준영의 성관계 불법 촬영 및 유포 혐의로 떠들썩하다. 미국 LA 일정을 중단하고 12일 오후 귀국한 그를 취재하기 위해 많은 기자들이 인천공항으로 모였다. 이같이 유명 연예인들의 성범죄는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다.

 

정준영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다. 필자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건이 시사하는 본질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의 행위는 개인의 일탈로 간주돼서는 안된다. 정준영은 그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범죄는 그들의 사회 안에서 용인되었고 오히려 지지받았다. 바로 호모소셜(Homosocial, 남성 간 유대) 사회이다.

 

호모소셜 사회, 성적주체로 서로를 인정하는 남성들

 

사건의 시간은 10대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학생들이 모여 있는 공간은 어제 했던 게임 얘기, 축구 이야기 등으로 흥분된 분위기다. 그들은 공통된 흥미를 가진 이야기로 관계의 친밀감을 강화하고 결속력을 다진다. 그중 유대감을 형성하는 핵심은 어제 본 포르노 영상, 혹은 여학생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다. 여성을 성적 대상함으로써 진행되는 이야기는 누가 더 ‘남자다운가’를 결정한다. 하나의 기준이 되는 셈이다. 동시에 그들은 ‘여자’를 이야기하며, 그들에 관한 성적 발언을 쏟아냄으로써 같은 남성에게 ‘진짜 남자’로 인정받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이 있다. ‘여자’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 끊임없이 존재하지만, 결코 이야기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논하는 ‘여자’는 인격이 없으며, 성적 욕구를 풀 수 있는 대상에 불과하다. 재화로 여겨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별에 따라 상반되는 반응

 

작년 10월, 모 연예인이 남자친구에 의해 폭행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런데 조사결과 그 남성이 해당 연예인과 성관계한 영상을 촬영 후 “연예인 인생 끝나게 해주겠다”며 동영상 유출을 놓고 협박한 사실이 드러났다. 네티즌들은 그 여성 연예인이 유출을 막기 위해 남성에게 무릎까지 꿇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분명 둘이 함께 등장한 성관계 영상이 누군가에게는 무기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망칠 수 있는 덫이 된다는 사실이 기이하지 않은가? 이번 정준영 사건과 작년 여성 연예인의 행동을 비교해보자. 정준영은 영상을 찍고 적극적으로 단톡방에 공유한다. 불법촬영한 것을 들켜 더 이상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단톡방의 남성 연예인들은 공유된 영상을 품평하며 ‘재화’로 소비한다. 영상 유출이라는 동일한 사실에 대한 상반되는 반응이 성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호모소셜 사회와 연관되는 이야기다. 남성들은 성적 주체이고, 여성들을 대상화한다. 성관계 영상을 공유하고 원나잇을 인증하는 것은 그들에게 스스로의 남자다움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따라서 그들에게 이런 성관계 영상은 아무런 수치심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좋은 안주거리가 되어 동료들에게 인정받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성적 언어의 개혁이 필요하다

 

디스패치가 재구성한 그들의 단톡방 내용 중, 여성 연예인을 ‘맛집’이라고 지칭하는 내용이 있다. ‘맛집’, ‘걸레’ 이것들이 그들이 성을 논하기 위해 직접 선택한 단어이다.

여성과 성관계한다는 것을 속되게 표현한 ‘따먹는다’ 역시 주목해야 할 단어다.

이러한 단어들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남성들이 여성을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들에게 있어 여성의 인격은 중요하지 않다.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에서 ‘남자들은 성에 관해 무수히 떠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의 성적 경험에 관해 일인칭 시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나는 오랫동안 품어 왔다.’ 고 말한다.

자신의 신체와 성적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는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이야기들이 허용되지 못하고 음지로 내몰릴 때 부정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그러나 현재 남성들이 공유하고 있는 성적 말하기 방법은 스스로의 생각을 주체적으로 표현하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성을 대상화한 뒤 그것을 폄하, 언어적 능욕 대상으로 삼아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는 음담패설에 가깝다.

 

여성은 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모욕과 멸시로 가득한 언어 때문에 표현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다. 앞서 언급한 ‘XX 따먹는다’ 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여성이 대상화된 언어가 정착되어 있기에 스스로를 성적주체로 표현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 자신의 신체를 ‘일인칭의 신체’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재하다. 여성의 신체에 대한 언급 없이 성적인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상대를 대상화하지 않고 스스로의 신체와 감정에 충실한 성적 언어의 개혁이 필요한 이유이다.

 

대중이 정말 주목해야 할 본질들

 

디스패치는 ‘맛집’으로 지칭된 여성 Y의 신분을 굳이 표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예인들의 소식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보도해 조회수를 이끌어 내야 하는 연예 전문신문의 폐단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의 이러한 보도가 우려되는 것은, 대중이 여성 연예인을 추정하고 소문을 퍼뜨리도록 해 2차 피해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대중에게는 분명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 존재한다. 이런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날 때 피해자가 된 여성연예인을 임의로 추측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행동이다. 자극적인 사건 가운데서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호모소셜 사회에서 남성들은 어떻게 유대감을 형성하는지, 불법촬영 영상을 공유하는 것이 왜 공공연한 문화가 되었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 나아가 이들이 법의 처벌마저 무서워하지 않도록 ‘뒤를 봐준’ 세력, 즉 남성연예인과 경찰과의 유착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3월 12일 네이버 급상승 검색어 2위 ‘정준영 동영상’

이는 사건의 본질보다 그 성관계 영상을 보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구글에 ‘버’만 검색해도 ‘버닝썬 영상’이 연관 검색어로 등장하는 것 또한 피해 여성들이 받고 있는 2차 피해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여성을 상품으로 간주하는 ‘강간 문화’에서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하고,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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