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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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매운동 없는 미래를 위하여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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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7월12일 17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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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국내에선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이다. 연예인을 비롯한 다수가 일본행 비행기 표를 취소했다는 인증사진을 SNS에 올리고, 실제 일본 맥주 매출은 감소하고 있다. 한국인의 저력일까. 그러나 불매운동 동참을 강요하는 행태는 선뜻 옹호하기 힘들다. 일본행 특가 표를 힘들게 얻어서도, 아사히 맥주 마니아여서도 아니다. 불매를 일본의 조처에 대한 최대의 대응으로 삼고 싶지 않아서다. 한편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맹공을 퍼붓는 이들은 더욱 이해가지 않는다. 불매는 언론이 앞길을 제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움직임일 터. 어떤 행동조차 하지 않는 자에게 비판의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불매운동을 하는 것도, 거기 동참하지 않는 것도 자유다. 

 

문제는 불매운동이 아니다. 정부의 대응이다. 이번 조처로 한국 반도체 주력 기업들을 비롯한 재계는 비상이 걸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직접 일본으로 건너갔다. 문재인 대통령도 30대 주요 기업 총수들과 간담회를 열어 정부-기업 간 협력을 당부했다. 더불어 WTO 무역이사회에 일본의 조처를 긴급 의제로 상정 건의해 우리 측 의견을 피력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무역보복 문제를 국제 사회에 공식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는 23일과 24일로 예정된 WTO 일반이사회에서도 일본의 보복 조치에 대해 설명할 계획이다. 민관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리기 위해선 정확한 진단이 우선이다. 일본의 동기를 살펴야 한다. 처음 일본은 한국 대법원이 작년 강제 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내린 판결에 불만을 표시하며 수출규제를 단행했다. 그러나 이는 명분일 뿐, 아베가 오는 21일 예정된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보수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그 끝엔 ‘평화헌법’ 개정이 있다. 이른바 ‘개헌파’가 3분의 2를 차지하는 대승을 거둬 자신의 평생 과업을 이루려는 것이다. 물론 선거 전략에서 나아가 한일 관계의 ‘새판 짜기’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자신들도 강제 징용 판결을 규제의 근거로 사용하는 논리가 빈약하다고 느꼈는지 이번에는 북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국 정부의 북한에 대한 불화수소 유출, 사린가스 전용 등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자신들이 판매한 반도체 소재가 북한으로 유출되면서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치졸하다. 고작 생각한 게 이거다. 주장만 있지 유출의 근거조차 없다. 그렇지만 어떡할 건가. 우리의 선택은 대응뿐이다.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 수출규제 조처로 인한 경제 충격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기 위한 임시방편이다. 이번만큼은 여야의 문제가 아니다. 내부 정치가 아닌 국제 위상의 문제다. 보복을 정부가 자초했다는 일부 언론과 야당의 공세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시에 장기적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 몸집을 키울 수 없다면 맷집이라도 길러야 한다. 핵심 기술, 핵심부품, 소재, 장비 국산화 비율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산업 구조에서 탈피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무역보복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경제의 맹점을 실감케 한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래 지난해까지 한국은 한번도 흑자를 거두지 못했다. 누적 적자는 6046억 달러(약 708조원)에 이른다. 특히 소재·부품 분야에서 일본에 크게 의존한다. 이번에 규제된 불화수소 역시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한다. 우리 정부가 이번 사건에서 가장 뼈아파해야 할 대목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정부의 적극적 지원 아래 기업들이 세심하게 구축해야할 시스템이다.  WTO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조차 무역보복을 일삼고 있는 마당에, 무역전쟁은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 심지어 일본은 규제 발표 이틀 전 G20 정상회의에서 의장국으로서 “자유롭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이고 투명하며, 예측가능하고 안정적인” 무역환경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강대국들의 국내 정치 변동에 의해 국가 간 경제적 이해관계가 틀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이번은 일본이지만 다음엔 어느 국가가 될지 모른다. 그때도 국민들에게 불매운동 해달라고만 할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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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7월12일 17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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