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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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국회의 데이터 3법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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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7월19일 17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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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산업은 제4차산업혁명 시대의 원유라고 불린다. 빅데이터는 우리 삶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하는 디지털 데이터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며 웹상에 남기는 다양한 디지털 기록들을 ‘디지털 발자국’(Digital Footprint)이라고 불렀다. 최근에는 ‘디지털 빵 부스러기’(Digital Breadcrumbs)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전자상거래, 포털 사이트 검색, 교통카드 이용 등 우리의 생활 전반이 마치 우리가 흘리고 다닌 빵 부스러기처럼 전자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대해진 데이터 집합으로부터 패턴을 읽어내어 가치를 창출하고 분석하는 기술력이 바로 빅데이터 산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빅데이터 기술은 사회 현상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예측력을 바탕으로 금융, 자율 주행 자동차, 의료, 보건, 통신 등의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다줄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빅데이터 산업이 아직 제자리걸음 상태라는 것이다.

 

빅데이터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 가장 근본적인 이슈는 개인정보보호다. 사람들이 흘리고 다닌 디지털 빵 부스러기에는 아주 민감한 개인정보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를 기존의 법제가 포섭할 수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제4차산업혁명 시대에 기술 발전은 혁신적인 속도로 이뤄질 것이다. 기술 발전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그에 수반되는 여러 사회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법제가 마련되었는가의 여부가 결국엔 그 나라의 혁신 수준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빅데이터 산업에 렉이 걸린 이유


빅데이터 산업과 관련된 개인정보보호 방식은 크게 미국식 모델과 유럽식 모델로 나뉜다. 미국식 모델은 산업 발전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입장이라면 유럽식 모델은 시민의 개인정보 보호에 더 중점을 두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난해 유럽연합(EU)은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시행하며 EU 시민의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동시에 개인정보를 '가명정보'와 '익명정보'로 분리해 상업적 목적을 포함한 과학적 연구에는 가명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담은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에 대한 개정안)이 2018년 11월 국회에 발의되었지만, 여전히 계류 상태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개인정보보호 이슈는 산재한 세 가지 법이 제각기 규제하고 있다. 온라인상의 개인정보는 정보통신망법의 적용을 받는다. 신용거래에서의 개인정보는 신용정보법에 따른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 전반에 대한 사항을 다룬다. 이중 규제나 삼중 규제 문제가 빈번하기 때문에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한 기업이 시장에 진출하려고 해도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 3법은 기술발전과 개인정보보호의 균형을 추구하고자 하는 개정안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과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개인정보의 폭을 넓히는 것을 골자로 하되 여기저기 흩어진 개인정보보호 규제를 하나로 모아 명확히 하는 것이 데이터 3법의 핵심 내용이다. 데이터 3법에서는 ‘가명정보’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되었다. 식별성이 있는 개인정보와 식별성이 없는 익명정보의 중간 개념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다른 표현으로 바꾸거나 가려서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처리한 정보이므로, 가명 정보를 활용하면 빅데이터 산업 분야에서 더욱 용이하게 데이터를 수집•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 ‘개점휴업상태’가 이어지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강조하는 시민단체의 반발까지 가세해 데이터 3법은 아직 국회에 잠들어 있다.

 

규제 시스템의 정비와 법제 개선이 가장 시급


2017년 11월 한 시민단체가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에 따라 빅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한 20개 기업과 비식별화 조치 전문기관 4곳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하면서 비식별 정보의 활용이 오랜 기간 중단되었다. 그러나 올해 3월 22일 검찰이 비식별 개인정보 활용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뒤이어 6월 27일 서울고등검찰청이 시민단체의 항고를 기각하여 법적 논쟁이 마무리 지어졌다. 3년째 중단되었던 개인정보 활용의 길이 다시 열린 것이다.

 

앞으로 세계 빅데이터 시장은 연평균 약 35%~40%에 달하는 지속적인 성장률을 보일 것이다. 혁신성이 강조되는 산업 분야에서 선점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정비되지 않은 규제 방식이 시장 경제 질서에 왜곡을 낳아서는 안 된다. 개인정보의 보호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개인정보의 활용과 보호를 아우르는 규제 시스템의 정비와 법제 개선이 시급하다. 우리나라의 규제 시스템은 현재 ‘포지티브 방식’을 따른다. 허용되는 몇 가지만을 열거해두고 나머지는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규제 체계이다.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허용되지 않는 몇 가지만을 열거하고, 자유롭게 혁신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식별성’, ‘개인정보’와 같은 개념에 대한 법제의 정의와 규제 방식을 통합하고 개인정보보호 이슈에 유연하게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에 잠자고 있는 데이터 3법의 조속한 통과로 그 물꼬가 트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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