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탈북민 모자는 무관심 속에 아사했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10월25일 18시05분
  • 최종수정 2019년10월25일 18시11분

작성자

메타정보

  • 20

본문

탈북민이 아니었다면 감히 이럴 수 있었을까? 북한이탈주민 모자 사망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제서야 성명을 냈다. 지난 7월 탈북민 한모 씨와 여섯살 난 아들이 굶어 죽은 지 석 달이 지났다.  그동안 국과수는 ‘사인 불명’이라고 어물쩍 결론을 냈고 대통령은 그 쉬운 페이스북에 글 한 자 적지 않았다. 국민들은 아직도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때 국민은 다 같이 분노했으며, 국회는 한 달 만에 관련 법을 발의했다. 반려동물 ‘먹방’ 영상이 인기를 끄는 한국에서 먹을 게 없어 사망한 국민이 5년 만에 또 나왔는데, 그 반응이 너무나 다르다. 국민은 무관심하고 국회는 주목하지 않으며, 정부는 책임지지 않는다. 온 나라가 탈북민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탈북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심지어 우리나라 국민이 되려고 많은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론은 탈북민을 국민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듯하다. 매일경제 설문에 따르면 대다수가 탈북민이 평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60%에 달하는 사람들이 정부 지원이나 세금 운용은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관련 기사에는 ‘탈북민이 무슨 감투라도 되나, 특별대우를 해줘야 하는건가.’, ‘탈북했는데 어쩌라고. 우리도 먹고살기 힘들어요.’ 등의 댓글이 상당수고, 심지어는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댓글도 종종 보인다. 너무 충격적이라 눈을 의심했다.

 

 탈북민은 사각지대에 놓일 위험이 크다. 복지 사각지대는 가난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생기는데, 이 과정이 그 어떤 국민보다 험난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이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김영수 교수는 『통일논쟁』에 실은 글에서 남북 언어의 차이를 꼬집는다. ‘아글타글’, ‘인차하다’ 등 우리가 전혀 모르는 단어가 있듯 남북 언어는 매우 달라졌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이질성을 무시하고 같은 한국어라고 교육에 소홀하니, 언어적 장벽이 생긴다. 복지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문화적 차이도 있다. 문희정, 손은령 교수는 논문에서, 탈북민에게는 “탈북과정과 제3국에서의 특수성으로 인한 신분 은폐와 타인을 믿지 않고, 혼자서 결정하는 자기해결성의 특성”이 있다고 한다. 친인척 한 명 없는 낯선 땅에서, 생판 남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나원 교육이나 복지제도는 이러한 사각지대까지 메워줄 정도로 유능하지 못하다. 사망한 모자의 집에서 주민센터까지는 400m에 불과했으나, 책임 공무원들은 “당시 업무가 바빴다”고 한다. 먹을 게 고춧가루밖에 없어 너무나 외롭게 죽은 국민을 돌보는 게 공무원의 ‘업무’가 아니면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지만, 아무튼 탈북민은 사각지대로 밀려날 위험이 매우 크다.

 

 대한민국은 헌법에도 명시했듯, 특수한 상황에 처한 어려운 국민을 돕는 복지국가다. 사회적 약자에게 예산을 배분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회적 약자인 탈북민에 세금을 운용하고 제도로 지원하는 것에는 왜 국민의 40%도 동의하지 못하나. 이들을 왜 도와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이토록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나.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이 온 탈북민일수록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이러한 부당함을 해소하는 것이 복지국가의 사명이고 이를 지지하는 것이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나는 시민의식이다. 여론이 무관심하니 정치권에서도 탈북민 문제를 깊이 다루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아예 입 싹 씻고 무시하거나 둘 중 하나다. 무시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주로 대북정책의 일환으로 탈북민 문제를 다룰 뿐 근본적인 고찰은 부족하다. 그러니 탈북민 정착지원에 쓰이는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가장 많은 복지사업을 펼치며 청년수당으로 300억을 쓰는 서울시의 탈북자 지원 예산은 수년째 5억 수준에서 동결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탈북민 문제에 관해 입 싹 씻고 무시하는 편에 가깝다. 광화문에 마련되었던 모자의 분향소에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고, 성명도 내지 않았다. 남북협력기금은 3배 가까이 늘어난 가운데 탈북민 적응 지원 사업은 절반으로 줄었다. 숫자가 무대응, 무관심을 설명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싫어하는 탈북민 문제를 건드려 남북관계에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통일에 가까워지려는 것은 착각이다. 통일은 김정은과 하는 게 아니라 북한 주민과 하는 것이다. 민주적 평화통일은 북한 주민이 체제 변화의 가능성을 인지할 때 시작된다. 독재자 김정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방법으로는 어렵다. 그런 식으로 이뤄지는 통일이라면 과연 그게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민주적 평화통일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탈북민은 북한 주민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 “탈북민 모자의 아사 소식을 듣고 김정은이 미소를 지을 것”이란 태영호 전 공사의 말처럼, 북한 주민들은 탈북민을 보고 대한민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가늠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깊이 뿌리박힌 지도자 중심 대북관을 수정한다면 으리으리한 대통령기록관 없이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면서 북한의 주체사상이나 교육제도를 줄줄 외우기는 했어도, 정작 같은 국민인 탈북민에는 무지했고 무관심했다. 탈북민 정착 과정을 담은 강연극 <북출이의 좌충우돌>을 지원하는 등 탈북민 정착을 위해 여러모로 애쓰시는 김영수 교수님께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내가 편하게 공부할 동안 지독하게 굶주리고 외로웠을 그들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 탈북민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가 있음을 국민도, 정치인들도, 대통령도 잊지 않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뒤늦게라도 모자가 행복하고 배부르길 바라며,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도한다. 

20
  • 기사입력 2019년10월25일 18시05분
  • 최종수정 2019년10월25일 18시11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